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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뮤 Dec 28. 2020

친자 확인법

가르치다 화가 나면 내 자식임이 분명하다

나는 5살에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당시 오빠가 피아노 학원을 다니고 있었는데, 자주 레슨에 따라가 아무 건반이나 눌러대며 수업을 방해하던 것이 어렴풋이 기억에 남아 있다. 그런 나를 보고 엄마가 물으셨단다.

"피아노 배우고 싶니?"

나는 단번에 그러겠노라 덥석 달려들었고, 뭐든 둘째는 빠르다고 그렇게 나는 피아노와 연을 맺었다.


오빠와 둘이 다 레슨을 받으려다 보니 아무래도 레슨비도 부담이 됐겠다 짐작은 가는데, 그래서였는지는 몰라도 나의 첫 번째 피아노 선생님은 우리 고모였었다. 아무래도 생소한 남보다는 다소 만만한(?) 고모였기에 우리 오빠는 하기 싫어 죽겠는 몸부림으로 건반을 겨우 눌러댔고, 하고 싶어 시작한 나는 비교적 싫다 않고 잘 배웠던 것 같다.

그러다 학교에 들어간 후 나는 동네 피아노 선생님으로부터 배우게 되었는데, 당시 내가 살던 아파트 1층에서 개인 레슨을 해주시던 분이었다. 그다지 친절하지는 않으셨으나 어린 마음에 조금은 무서웠던 선생님 말씀대로 꽤나 잘 따라갔던 것 같다. 그렇게 피아노를 곧잘 쳐서 1학년 때 처음으로 콩쿠르에 나가 최우수상도 받았더랬다. 중간에 드라마는 좀 있었지만 그렇게 시작이 연결되어 나는 피아노 전공자가 되었다.




조기 음악 교육이 어린아이들의 두뇌 발달에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많은 연구들이 있다. 특히나 5세 정도부터 음악을 접하게 되면 정서나 지능 발달에 아주 좋다는 이야기들을 일찍이 접해 듣고, 우리 딸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음악 태교에 힘쓴 것은 물론이고, 아이가 다섯 살이 되면 반드시 피아노를 가르치겠노라 벼르고 별렀다. 나도 그렇게 했으니 내 딸이면 당연히 그즈음엔 피아노에 관심을 보일 거란 너무도 확고한 믿음이 있었던 것이다.


내 피아노는 아직도 친정에 있는지라, 아이를 데리고 갈 때마다 좋아하는 동요도 쳐주고 뭔가 아이에게 듣기 좋은 잔잔한 곡들을 조금씩 연주해주곤 했는데, 아이는 엄마가 피아노 쳐주는 걸 즐기기보다는 본인이 건반을 '때리는 일에' 더 관심이 크고 열심이었다. 심지어 엄마가 연주하는 건 못하게 막기까지 했다.

"왜 그러는 거야~ 엄마 피아노 치는 거 싫어?"

이렇게 물어봤자 당시 몇 마디 말을 겨우 배우기 시작한 아이는 뭐라는 건지 저만 아는 말로 뭐라 해대며 피아노 뚜껑을 닫아버리기 일쑤였다. 




아이의 다섯 살은 생각보다 빨리 다가왔다. 이제 피아노를 가르치겠노라 다짐하던 그때가 온 것이다. 일단 아이를 어디 학원에 보내겠단 생각은 '못'하고, 내가 가르쳐야겠다는 앙큼하기 짝이 없는 생각을 했더랬다. 아무리 운전은 남편한테 배우는 게 아니고 수학은 아빠한테 배우는 게 아니라고들 하지만, 그건 남들 얘기일 뿐 나는 내 자식을 너무나도 잘 가르칠 '자신'이 있었다.


내가 어릴 적에는 솔직히 싫든 좋든 엄마가 하라고 등록해주면 배우는 게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둘째인 나는 비교적 내 주관이 많이 반영되었는데, 오빠를 보면 사실 엄마가 등 떠밀어 배우러 다닌 게 상당히 많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우리는 지금 그때와는 다른 시대를 살아가고 있고, 이만큼 살고 보니 무엇을 배우든 본인이 즐겁고 관심이 가야 제대로 잘 배우고 또 얻는 게 많다는 데에 내 영혼을 바쳐 동의하는 바이기 때문에, 아이가 원하지 않는다면 굳이 등 떠밀지 말아야겠다 늘 생각해왔다.


나는 아이를 최대한 존중하는 배운 사람이니까, 당시 우리 엄마처럼 딸아이에게 물었다.

"이제부터 엄마한테 피아노 배워볼까?"

아이는 망설임 없이 싫다고 했다. 나는 아이와 진지한 대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다섯 살짜리와 그런 대화가 무슨 소용. 아이는 그냥 싫단다. 그런데, 다섯 살 아이의 선택과 판단을 전적으로 믿고 존중해줘야 맞는 건가? 아니면 피아노 건반에 사탕이라도 발라놓고 아이를 꼬드겨야 맞는 건가. 그도 아니면 나는 엄마고 너는 딸이니까 그냥 해!라고 해야 하나. 나는 엄청난 딜레마에 빠졌다.

'그래... 뭐든 흥미가 생겨야지... 스스로 해보겠단 말이 나오는 날이 있지 않을까...'

그러나 이렇게 아이를 '존중'만 해주다 그야말로 조기 교육이란 걸 다 날려 보내는 건 아닌지 내심 불안한 마음도 생겼다. , 생각해보 다섯 살 아이한테 조기 교육은 무슨 교육인가 싶어 그냥 열심히 놀라며 마음을 내려놓았다.




딸아이는 정말 흥이 많다. 그야말로 '흥부자'이다. 음악이 나오면 몸이 들썩이는 걸 주체하지 못하고, 꽤나 리듬감이 맞아떨어지게 춤도 잘 춘다. 게다가 무슨 노래든 들으면 바로 멜로디를 캐치하고 상당히 빨리 노래를 익힌다. 나 역시 도치맘이긴 하나, 최대한 객관적으로 봐도 아이가 음악성이 좋은 편이다. 그러니 피아노 가르치는 일에 욕심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시작점으로 목표하던 다섯 살은 속절없이 지나가 버렸고, 역시 내 자식을 가르치는 건 득도하기 전엔 불가능하다는 걸 인정하고 여섯 살을 맞이한 올해에는 반드시 내 너의 등을 마구 떠밀어 피아노 학원에 등록하고야 말겠다 맘을 먹었건만, 코로나 세상이 와버렸다. 집콕의 나날들이니 이제는 그야말로 싫든 좋든 '엄마표'가 등장해야 할 타이밍이었던 것이다. 나는 아이가 흥미롭게 접할 수 있는 악보를 검색해내는데 공을 들였다. 대한민국에서 피아노를 배웠다면 모두가 알고 있는 그 '바이엘'로 아이를 괴롭히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이거다 싶은 악보를 주문해 받아 들고, 아이에게 나름 진지하고 단호하게 얘기했다.

"이제는 엄마하고 피아노 배워보자!"

웬일인지 아이가 너무 쉽게 오케이를 날린다. 매사가 까다로운 초예민 베이비였던 딸아이와는 뭔가가 너무 쉽게 돼버리면 이상하다. 무엇을 하든 구비구비 산 넘어가듯 숨이 꼴깍 넘어갈 때까지 애를 써봐야 겨우 하나가 넘어가는 까탈녀가 이번엔 웬일인 건지....




"자 봐봐... 손가락을......."

내 이야기가 채 끝내기도 전에 아이의 관심은 이미 안드로메다로 가버린다. 참을 인 백개에 상승하는 혈압을 부여잡으며 어금니 꽉 고이 다물고 아이 이름을 다시 불러보지만, 이 정도로 생각이 전혀 없다는 사실에 그저 속으로 혀를 찰뿐이다. 이건 그냥 내 인내심 테스트에 불과하다. 사실 참을 인 백개도 몇 분 안가 결국은 '빽~~~!' 소리 지름으로 마무리가 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원래 자식은 맘대로 안 되는 게 세상사 진리 이건만 대부분의 부모는 자식이 맘대로 되어줄 거라 기대하기 때문에, 내 자식을 향한 '참을 인'은 어차피 그리 오래가지 않는 듯하다. 가장 좋은 친자확인법은 뭔가를 가르쳐 보는 것이라 하지 않던가. 가르치다 화가 나면 100% 내 자식이란다. 이 아이는 내 자식임이 너무나도 분했다.


겨우 대여섯 살 먹은 아이들이라도 분명 관심이 있고 하고 싶은 아이들은 배우겠다는 의사표현을 한다고 한다. (나도 그런 아이중 하나였고) 게다가 단순히 피아노뿐만이 아니라 무엇을 하든 본인이 관심 가는 일이 아닌 것에는 일절 스위치를 켜지 않는 고집스러운 딸아이에게는, 더 가보나 마나 결론은 뻔한 일이었다.


마지막 희망으로 아이에게 조성진 피아니스트의 연주하는 모습을 찾아 보여주었다. 누군가 멋지게 연주하는 걸 보면 배워보겠다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딸아이는 미적미적 내게 이야기한다.


"엄마... 나 피아노 배우기 싫어.... 왜냐하면, 피아노는 이렇게 잠시도 쉬지 않고 손가락을 움직여야 해서 귀찮아..."

순간 머리가 댕~ 했다. 언제나 피아노는 재미있고 즐거운 것으로만 생각해온 나에게 손가락을 움직이는 게 귀찮아서 배우기 싫다는 관점은 너무도 지나치게 신선했기 때문이다. 내가 나무늘보를 키우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게 귀.찮.다.고? 세상에....

역시 피아노를 가르쳐야 되겠다는 건 '나의 계획'일 뿐이고, 내 속에서 나온 내 딸은 피아노가 하기 싫은 아이인 것을 어쩌란 말인가.


'그래.. 너는 내가 아니니까... 이제 그만하자... 나중에 네가 배우고 싶어 지면 그때 하지 뭐...'


이렇게 혼자 생각만 한다. 아직은 아이에게 안 배워도 된다고 맘을 놓아버리게 하고 싶지 않은 내 욕심이 남아서일 게다. 아이를 키워가는데 덜어내야 할 욕심들이 너무도 많은 것 같다. 마음은 그렇게 알고 있는데 행동은 그리 따라가질 못하니 나란 엄마 아직도 갈길이 멀다 싶지만, 오늘도 이렇게 한 가지를 깨달으며 나는 또 엄마로 사는 법을 배워간다.

'나중에 왜 피아노 안 가르쳐 줬냐고 엄마 탓하기만 해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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