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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뮤 Jan 11. 2022

혹시 아직도 이메일에 소설 쓰시나요..

경영 무지렁이 음악도가 비즈니스 스쿨에 다니던 시절, 이런 걸 도대체 왜 배워야 하지 라며 의아해 마지않던 것이 있으니 바로 비즈니스 메일 쓰기와 효과적인 파워포인트 프레젠테이션(PPT) 파일 만드는 법이었다. 그야말로 실전 업무 환경에서 일을 해본 경험이 없었으니 그게 왜 중요하고 왜 필요한지에 대해 전혀 공감할 길이 없었던 탓이다. 어쨌든 그 시절 내 기준에서 정말 '별걸 다' 가르쳐 주는 학교에서 배웠던 것이 실제 필드에서 참으로 유용하게 쓰였으니 이제부터 그 얘기를 조금 나눠보겠다.




요즘 업무 처리라는 게 그야말로 죄다 '글'을 통하지 않고서는 되는 게 없을 것이다. 그나마 얼굴 마주 보고 하염없는 '회의질'을 하던 코로나 이전보다도 아마 지금은 더더욱 이메일과 메신저가 업무 처리의 주요 툴tool이 되었으리라. 타 부서와의 업무 협의이든, 바로 옆 그룹과의 업무 조율이든, 진행 상황에 대한 내용 공유이든, 하루 종일 수도 없이 많은 이메일을 쓰고 또 써야 했다. 그런 이메일을 나만 쓰고 있지 않으니 쏟아져 들어오는 메일함을 확인하고 할 일을 쳐내고 피드백을 보내는 것이 그야말로 하루 종일 해야 할 일이었던 것이다.


우리 그룹장은 여자분이셨다.

사실상 리더십이라는 것은 그저 남 얘기인 듯한 분인지라 그야말로 아랫사람을 어떻게 이끌어야 하는지, 언제 당근을 꺼내고 언제 채찍을 휘둘러야 할지에 대한 아무런 생각이 없으신 분이었는데, 우리 그룹 내에서도 업무상 나눠야 할 내용이 있다면 결코 얼굴을 마주 보고 이야기 나누는 법이 없었다. 그녀는 언제나 이메일을 보냈다. 그것도 상상을 초월하는 분량의 아주아주 긴 이메일을...



나와 함께 일하던 K과장은 그날도 여지없이 여러 장의 출력물을 들고 온다.

"또야?"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이는 K.

"그럼 나도 프린트해야겠네...(한숨)"

출력을 누르고 프린터 앞에 가서 기다린다. 오늘은 몇 장이나 나올라나...


족히 5~6장은 될법한 출력물을 들고 오니 K과장은 벌써 형광펜을 들고 하이라이트를 시작했다. 나도 고개를 푹 숙이고 한 글자 한 글자 읽어 내리기 시작하며 나름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에 밑줄을 긋는다. 문제는 줄을 그어도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가 파악이 안 된다는 점이다.



그야말로 할 일이 넘쳐나는 판국에 이메일로 소설을 매번 보내주시는 윗분은 민폐다. 게다가 논리 정연하게 기승전결이라도 있다면 그다지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을 텐데, 읽기 시작함과 동시에 느껴지는 피로감은 바로 그거였다.

그냥 입에서 나오는 구구절절의 말을 있는 그대로 글자 상태로 옮겼다는 사실 말이다.


'그러니까 예를 들어 말이지...  어쩌고 저쩌고인거 같아... 그거 OO까지 하면 좋겠는데... 임 과장이 한번 얘기 나눠보면 좋겠고... 왜 지난번에 얘기했던 거 있잖아.... 그쪽에서 연락 왔나? 팀장님한테 물어봤더니 그건 어쩌구고 저건 어쩌고라는데... 내 생각에는 이걸 이렇게 저렇게 하면 좋을 거 같거든.... 기한내에 그게 가능할라나 모르겠네... blah blah blah..'


대충 이런 식이다. 마침표를 찍어 깔끔하게 정리되는 문장이란 단 한 가지도 없고, 그래서 그런데 등으로 이어지는 네버엔딩 문장은 정말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이었다. 지금 업무 이야기 나누자는 건가 아니면 업무가 주제인 수다를 떨자는 건가..



어떻게 하면 효율적인 업무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초등학교 때 '6하 원칙'이란 것을 배웠다. 글의 전체 구성을 봐야 하는 기, 승, 전, 결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왜, 어떻게 했나 이것만 기억해도 중간은 간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좋다.

이 기본 틀을 바탕으로 유의해야 할 점들은 다음과 같다.


1) 전달해야 할 가장 중요한 '주제'가 뭔지 한 가지만 정하고 이메일 제목에 명시한다.

- 한 가지 건에 관해 작성하는 것이 좋다. 여러 건의 내용이 혼재되어 어떤 일에 관한 내용이었는지 이해가 분산되지 않도록 해야 효율적으로 전달이 될 뿐만 아니라, 추후 내용을 재확인하거나 업무 팔로우업을 할 때 헷갈리는 일을 방지할 수 있다.


2) 정중하게 자신의 소속과 이름을 밝힌다.

- 메일을 쓸 땐 그게 어떤 메일이든 가장 기본 중의 기본이다. 다짜고짜 내 할 말만 적으면 들어줘야 할 내용도 안 들어주고 싶게 되는 수가 있다. 메일 끝무렵에 상대의 협조에 미리 감사 인사도 잊지 않는 것이 좋다. 나의 공손함으로 인해, 상대방이 바쁜 와중에도 처리 우선순위 상단에 놓아줄 누가 알겠는가. 결국 뭐든 사람이 하는 일임을 기억해야 한다.


3) 메일의 서두에 핵심 내용을 요약한다.

- 내가 메일을 쓰는 목적이 무엇이고, 전달 및 요청하고 싶은 내용은 무엇인지 2~3줄로 요약정리한다.


4) 요약 내용의 하단에 상세 내용을 붙인다.

- 현재 글에서 번호를 매겨 써내리듯 포인트 폼으로 적으면 좋다. 문장이 구구절절 이어지면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지 초점이 흐려질 수가 있기 때문에 최대한 간략한 문장으로 한 줄씩 순차적으로 내용을 적는다.


5) 중요한 내용은 눈에 띄게 한다.

- 마감 기한이나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항은 볼드(Bold), 밑줄, 하이라이트 등을 이용하여 잘 보이게 해 준다.




업무 이메일을 잘 쓴다고 특별히 칭찬을 받는 건 아니지만 이 기본적인 걸 잘 못하면 욕을 먹는다.(본인만 모를뿐) 사실 모두가 바쁜 상황이고, 내 메일을 토시 하나 빼지 않고 꼼꼼히 읽을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러게 라떼 상사들 중엔 무조건 '세 줄 요약'을 외치는 분들도 계시지 않던가. 정말 바쁠 때 쓰윽 훑어 내리더라도 중요 내용이 대략적으로라도 파악이 될 수 있게끔 해주는 것이 그야말로 효율적인 업무 메일 쓰는 방법이다.


아무리 '글'이 소통의 주요 매개체가 된 세상이라지만 내가 입으로 해야 할 말을 그저 손가락이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나의 '생각'을 통해 한번 걸러내 '논리적으로' 적어 내리는 것이 바로 글로 하는 '소통'인 것이다.


그때 그렇게 소설 메일로 업무를 논하시던 그분은 여전히 회사에서 롱런하고 계시지만, 나보다 연장자요 위의 직급이셨단 이유로 사실상 이런 지적질은 감히 생각도 할 수 없었으니, 이제야 브런치를 만나 속 시원히 내뱉어본다. 아직도 이메일에 소설 쓰고 계시나요? 지금쯤이면 좀 나아지셨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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