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글에서 이메일을 길게 써서 난감하기 짝이 없던 직장 선배에 대해 늘어놓았다. 이번엔 '글'로 소통하다 보니 생겼던 다소 어이없었던 에피소드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그야말로 '90년생이 온다'로 화제가 되었던 그 90년생들이 신입사원으로 속속 발을 들여놓던 즈음의 일이었다.
상품 기획 쪽에서 실무를 담당하고 있을 때는 그만큼 더 실무자들끼리의 연대도 돈독했을 뿐만 아니라 서로 간에 주서 듣고 옮겨주는 정보도 더 다양하며 얻기도 손쉬웠다. 그러나 지원부서로 이동을 하고 나니, 아무리 회사 시스템에 브랜드별 매출, 손익 정보가 모두 조회 가능하다 해도 실질적으로 제품 입고 시기나 생산 스케줄 등 정말 실무에 있어야 알법한 상세한 내용들은 그야말로 실무 담당들에게 일일이 컨텍하여 알아보지 않으면 알 길이 없었다. 그렇다 보니 비교적 신참인 입사 1~2년 차들과 연락할 일이 자주 생기곤 했었는데, 그럴 때마다 가장 손쉽게 이용하는 게 사내 메신저였다.
♠ OOO 씨, 안녕하세요~ OO 브랜드 어쩌고 저쩌고 정보가 필요해서 문의드려요~
♣ 아~ 그거요.. 그건 이러쿵저러쿵이에요..
♠ 그렇군요.. 그럼 OO는 다음 주 말까지는 다 준비가 된다고 보면 되겠네요?
♣ 네~ 맞습니다. 계획은 이번 주였는데 조금 늦어져서 다음 주가 됐어요..
♠ 아 그럼 말이죠, 미안한데 지금 메신저로 말해준 내용을 메일로 정리해서 좀 보내줄 수 있겠어요?
♣ 네 알겠습니다 과장님~
여기까지는 좋았다. 편의상 대략적으로 줄여봤지만 사실 메신저에서 상당히 긴 대화가 오갔었다. 나는 빠르면 몇 십분, 늦으면 몇 시간이나 후에 정리된 메일 내용이 오려니 생각 중이었는데 갑자기 울리는 메일 수신 알림에 보니 조금 전 대화를 나눴던 그 사원이다.
'어매 전광석화와 같은 것.. 요즘 애들은 일처리도 빠르구나...'
나야 보고서 정리를 빨리 할 수 있으니 빠르면 그저 감사할 따름.
메일을 열어보는 순간 동공은 커지고 턱은 밑으로 떨어졌다. crtl C + crtl V 복. 붙.!!
메신저의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주르르 긁어서 메일에 발랐다. 내가 설마 내 손가락으로 스스로 '복붙'을 할 줄 몰라서 그걸 메일에 보내달라고 했을까. 이 사원은 정말 어느 별에서 온 걸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나는 메일 내용을 '정리해서' 보내달라고 요청했는데 정리의 개념이 사람마다 달라도 이렇게 다를 수가 있나?
내가 기대한 내용은 너무 당연하게도 다음과 같았다.
문의하신 내용에 관해 답변드립니다.
해당 건은 OOO까지 마무리될 예정에 있었으나, 다음과 같은 이유로 지연되었음을 알려 드립니다.
[지연사유]
- 어쩌고 저쩌고
- 이러쿵저러쿵
[수정된 일정]
- xx년 x월 x일
일은 둘째치고 그 메일을 바라보며 수많은 생각에 빠졌다. 얘네 팀장님은 이런 거 아시나? 애들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예 모르는 거 같은데, 내가 가르쳐줘야 하나? 아님 그쪽팀 사수한테 넘겨야 하나.. 이런 걸 지적하면 그쪽에서 자존심 상해하려나? 아니 뜬금없이 왜 난 남의 팀 사원의 상태에 대해 고민해야 하나.. 아니다. 인력은 돌고 도는 건데 방치하면 나중에 같은 팀 될지 알게 뭐란 말인가. 입사할 때 이런 건 모르고 뽑나? 하긴 면접에서 업무 처리 어떻게 하나 물어보진 않지.. 심지어 그 친구 S대 출신이라던데.. 진짜 공부만 했구나.. 역시 대학이 이런 거 배우는 데는 아니니까... 그나저나 악~요즘애들 왜 이래!!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지 않고자 그 어떤 경우에도 '요즘애들' 이란 한 마디로 모두를 같은 부류로 치부하는 건 되도록 지양하는 바이지만, 실상 그즈음 여기저기서 들려오던 요즘애들 스토리는 참으로 흥미로웠다. 실컷 고민 끝에 뽑아 놓으면 1년 후에 사표 내는 직원은 뭐 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 보편적 이야기였고, 어떤 부장님은 사원 어머니로부터 전화도 받아보셨다는 절대 웃을 수 없는 웃긴 얘기도 들었었다. 본인이 할 얘기를 엄마가 대신해드렸다는 것이다. 그렇게 일찍 그만둘 거라면 도대체 왜들 그렇게 취업난을 운운하며 피 터지는 경쟁을 뚫고 들어오는 거지? 의아할 따름이었다.
세대가 변하면 다른 성향의 뉴 제너래이션이 등장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세월을 거듭해오며 우리는 언제나 어른들에게 '요즘 것들'이라는 말을 들으며 살아왔고 그것은 세기를 거듭해도 변치 않는 사실이다. 10여 년 전 당시 갓 입사한 사원들을 보면서도 상당한 이질감을 느꼈었는데, 지금은 아마 그 차이가 더 커졌음은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최근 들려오는 요즘 아이들의 성향은 좀 더 진화한 정말 특이한 부류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이미 세대에 대한 분석은 넘쳐나고 있으니 나까지 나서서 더할 말은 없지만, 내가 경험한 특이점이라면 이런 것이었다. 매일 운동하러 다니던 센터에 아르바이트생이 있었는데, 이 알바 자리가 한 달을 못가 자꾸 다른 사람으로 채워지는 것이다. 주인이 푸념을 늘어놓는데 알바를 뽑아 놓으면 어느 날 갑자기 연락도 없이 안 나온단다. 전화를 해보면 전화기도 꺼져 있기 일쑤란다. 어떤 사유로든 일을 그만두겠습니다라는 말을 제대로 하는 경우가 가뭄에 콩 나듯 한다는 것이다.
집 앞 편의점은 또 어떠한가. 그곳 역시 아르바이트생이 하루가 멀다 하고 바뀐다. 자주 가는 만큼 편하게 인사를 건네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돌아오는 반응은 싸늘하다. 내가 괜히 아는 척을 했나 하는 머쓱함은 덤이다. 사실 트렌드 코리아 2022에서도 등장했던 내용인데, 자주 가는 카페 주인이 아는 척을 해서 그곳에 더는 안 간다는 얘기가 한 커뮤니티에 올라왔었다고 한다.
뭔가 나의 세대가 상식이라고 생각해온 것들이 더 이상 상식이 아닌 시대가 온 것만은 분명한데, 그 변화가 사뭇 당황스럽고 이해가 안 가는 것은 나뿐만이 아닐 게다. 아마도 누군가는 이런 나를 두고 '라떼'라는 표현을 하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사람 간의 관계 맺음이 본능인 우리 인간들이 관계를 맺는 방법에 있어 이렇게 이해하기 어려운 간극을 나타내고 있으니 실로 어느 장단에 발을 맞추고 살아야 할지 난감할 따름이다. 사람은 시대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지만, 그저 내 아이만큼은 이런 사람으로 성장하지 않아 주길 간절히 바랄 뿐.
그때 그 시절 사원의 이야기로 출발해 요즘 아이들 이야기로 이어졌지만, 여하 간에 요즘 직장 상사 노릇하기 정말 어렵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결국 이 상황에 절실한 건 서로 간의 '소통'과 '이해'라고 하겠지만, 어떤 방향으로든 우리 사회 전반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길 바랄 따름이다. 그때 메신저 내용 긁어 보내줬던 그 독특한 사원은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을지 사뭇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