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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리 Dec 23. 2020

『보통의 언어들』

모든 단어는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다

한동안은 자기 개발서에 빠져 있다가, 그 이후로 한동안은 시집에 빠져있다가, 그리고 요즘은 소설에 빠져 있었다. 사실 요즘은 빠져 있다고 말하기엔 민망할 정도로 뜨문 뜨문 읽고 있지만 말이다.


얼마 전, 친구가 책을 한 권 보내줬다.


김이나 작가의 『보통의 언어들』


생각해 보면 예전에는 에세이 집도 엄청 즐겨 읽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거리를 뒀다. 왠지 모르게 고개를 돌리는 순간 책 속 글들이 곧바로 휘발돼버리는 게 아닌가. 나를 토닥여주는가 싶다가도 나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기도 했다. 그렇게 에세이와는 이별 아닌 이별을 했던 것 같다.


단어의 힘을 알고, 미묘한 차이를 생각하고 느끼는 너와 이야기 나눌 때면 나는 정말 즐겁고 기분이 싱싱해지거든? 도서관에서 이 책을 빌려서 봤는데 읽으면서 네 생각이 나서 보내주고 싶었어!

오랜만에 에세이 집을 읽으려니 손이 잘 안 갔다. 그렇게 책상 한 구석에 올려두고 지낸 지 2주쯤 지났을까. 오늘은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 드디어 첫 페이지를 펼쳤다.




하나의 단어에서 깊은 세상을 보는 작가. 여기서 중요한 건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쓰는 평범한 단어들이라는 점이다. 이 단어 하나하나가 갖고 있는 의미를 아주아주 섬세하게 표현해 풀고 있다. 김이나 작가의 단어를 보는 눈은 남달랐다. 그리고 그 점이 내 마음을 흔들었다.


너는 너무 단어 하나하나에 집착해.


내가 이 책을 읽기 전 들은 말이었다.


간단히 상황설명을 하면 이렇다. 사소한 일로 말다툼이 생기다 못해 커졌다. 그 와중에 나는 오해를 정확히 짚고 넘어가고 싶어서 반박을 했다. 그러자 '너는 너무 단어 하나하나에 집착해'라는 말만 돌아왔다. 그 말 하나로 나의 말은 한순간에 무의미하게 무너져 내렸다.


그래, 인정할 건 인정하자. 나는 뉘앙스에 민감한 편이다. 나 스스로는 민감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남들보다 기준이 살짝 높은 건 사실이니까. 단어가 주는 미묘함이 느껴지는데 나보고 어떡하란 말이냐.


문제는 이 기준을 남들에게도 적용하려는 데서 발생한다. (이 부분에 대한 것도 할 말이 많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면 너무 길어질 것 같아, 다음 브런치 글에서 더 자세히 하는 걸로 하고.)


나도 이런 나의 문제를 깨닫고, 다른 사람이 쓰는 단어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부단히도 애썼지만, 말다툼으로 인해 그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다.


아니, 그런데 나한테는 그렇게 들리는 걸 어떡해! 휴, 어렵다.


안 그래도 평소에 노력을 하는 내게 저렇게 말하니 억울했다. 그리고 난 온전히 오해를 풀기 위해 말했던 건데, 나를 무슨 말꼬리 물고 늘어지는 애, 단어 하나에 꽂혀서 그것만 들고 따지는 애, 로 만들다니.


그렇게 서로 형식적인 사과를 하고 헤어졌다.


분이 풀리지 않았다. 서운하기도 했다. 억울하기도 했고, 답답하기도 했다. 어느 한 감정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는 복합적인 감정이 내 마음과 몸을 지배했다. 평소의 나라면 바로바로 풀렸을 화가 이번에는 왜인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상대가 사과한 만큼 나도 빨리 풀어야 되는데... 마음은 조급해졌지만 이번만큼은 쉽게 풀리지 않는 내가 그래서 더 잘 이해되지 않았다.



사과하다

상대가 '미안하다'라고 말하는 순간은 마치 끓는 냄비가 올라간 가스레인지의 불을 끄는 것과도 같다. 더 끓일 의지는 없지만, 그렇다고 바로 식지는 못한다. 내 의지로 되는 일이 아니다·······사과를 하는 입장에서 사과를 받는 태도에 점수를 매길 권한은 없다.

사과를 받는 쪽에서 필요한 겸연쩍은 시간이란 게 있다·······이 무거운 발걸음을 기다려주는 것까지가, 진짜 사과다.

김이나, 보통의 언어들, (주)위즈덤하우스, 2020, p.36-37, 


그때 마주한 문장. 쉽사리 풀리지 않는 마음에 답답함을 넘어서 죄책감이 느껴지려던 찰나,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사과를 하는 쪽도 사과를 받는 쪽도 모두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이 시간을 충분히 주고 기다려줘야 한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의 나는 그 어느 쪽의 입장에 있었건 조급했다. 나에게도 상대에게도 시간을 주지 않았다. 그래서 몰랐던 것이다.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덕분에 나는 인생을 살면서 했던 그 어느 싸움에도 주지 않았던 시간을 이번 싸움만큼은 주었다. '미안하다' 한마디에서 싸움이 끝나진 않는다는 것도 절실히 알게 되었다. 그렇게 마음이 서서히 풀렸다.



가끔 그럴 때가 있는가.


고민이 생겨 일기장에 조심스럽게 털어놨는데, 그다음 날 우연히 어떤 책을 읽다가 그 해답을 발견한 적이.

무언가를 깨닫고 일기장에 적어놨는데, 그다음 날 우연히 어떤 책을 읽다가 나의 생각과 똑 닮은 문장을 발견한 적이.


그건 바로 운명이다. 운명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이번 책이 내게 그랬다. 운명처럼 내게 해답을 줬고, 운명처럼 나와 공감을 해줬다.


누군가에게는 내가 단어에 집착하는 사람일 수 있다.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내가 단어가 주는 힘과 그 미묘함을 섬세히 알고 표현하는 사람일 수 있다.


나 자신을 자책하며 원망하고 있었는데, 원망을 멈췄다.


나는 그저 조금 더 섬세할 뿐.

나는 그저 말을 조금 더 예쁘게 전달하고 싶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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