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좋아 남편과 양평으로 산책을 다녀왔다. 드라이브를 하며 남한강도 바라보고 예쁜 카페에 가서 글도 쓰고 책도 볼 참이었다. 근데 너무 일찍 출발했나 보다. 가려던 카페가 문을 열기엔 이른 시간이었다. 그래서 잠시 세미원을 들렀다. 연꽃이 피는 시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잠시 산책하기 딱 좋은 장소니까.
"자갸, 난 아무래도 자기랑 있는 게 제일 편한 거 같아. 다른 사람들이랑 있으면 온전한 내가 될 수가 없어. 심지어 애들조차도 말이야" "응 그건 자기가 나랑 있으면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으니까 그런 걸 꺼야 ㅎㅎ" "아니야~~ ^^" "근데 나도 자기랑 있을 때 유일하게 내 마음대로 하긴 하지."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는 온전한 내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을 의식하게 되어 자신의 개성과 성격을 전부 드러내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상대방에 맞추기 때문이다. -사이토 다카시-
그랬다... 내 옆에 있는 반쪽은 지극히 내향적인 사람이라 평생을 살아오며 누군가와 있을 때 온전히 자신이 돼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부모님이 하라는 대로 친구가 하자는 대로 남들이 가자고 하고 먹자고 하는 대로 '네, 괜찮아요." "어. 그래" "그래 맘대로 해" 하며 그냥 그렇게 무던하게 살아온 사람이었다.
나 또한 별반 다르지 않았다. 친구들 사이에서 지인들 사이에서 "어 다 좋아~어디서 그런 걸 찾았대. 우와 진짜 좋네!"호응하며 대부분 상대방의 의견을 들어왔다. 남들과 있을 땐 그렇게 하는 게 편했다. 굳이 내가 좋아하는 걸 하는 것보다 상대방이 괜찮다는 걸 하는 게 맘 편했다.
그런 내가 일을 할 땐 너무 많은 사람들 속에 있어야 했다. 어느 정도는 가면 아닌 가면을 쓰고 사람들 앞에 설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그 모습들이 내가 아니었던 건 아니다. 그런 모습도 내게 분명 있긴 하니까. 다만, 가끔은 내 안에 꺼낼 에너지가 별로 없던 그런 날조차도 굉장히 에너지가 넘치는 척, 매우 활기찬 사람인 척, 매우 씩씩한 척.. 그랬던 날들도 꽤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집에 오면 말할 기운조차 남질 않았다. 난 원래 어떤 사람인지 알 수가 없었다.
지나고 보니 우린 잔잔함을 좋아하는 사람들인 것 같다.
남들이 보기엔 술도 못 마시고 세상 별 흥도 없는 재미없는 사람들일 수 있지만, 둘이 있는 게 세상 제일 편안한 사람들이다.
두 손을 맞잡고 먼 산을 바라보며 가만히 멍을 때리는 게 행복이고,하늘하늘 흔들리는 나뭇잎을 가만히 바라보는 게 최고의 힐링이고,흐르는 물소리를 듣기 위해 개울가를 건너고 또 건너는 게 이해가 되는..
오늘의 산책은 그랬다.
함께 산책을 하다 각자 사색을 하고 각자 좋을 대로 책을 보다가 생각한 바를 나누고.. 그냥 이렇게 가만히 있어도 좋을 수 있는. 함께 있어 외롭지 않지만, 각자에게 충실한 혼자의 시간을 보내도 이상하지 않은 그런 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