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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형 Aug 06. 2023

연둣빛 여름, 나는 다시 걷는다.

울진군 죽변항~오산항

동해바다 도보여행길인 해파랑길을 여행하고 있습니다. 직장 때문에 한 달에 2~3일씩 나눠서 여행하고 있습니다. '해파랑 일기'라는 제목으로 도보여행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해파랑길 26코스(울진군 죽변항) ~ 25코스 (울진군 오산항)


6월 3일 맑음(죽변항, 망양정, 오산항)


연휴의 시작, 나는 다시 걷는다.


          강변역에서 울진 죽변으로 가는 버스에 오른다. 연휴의 시작, 출발부터 길이 막힌다. 1시간이 늦어졌지만 이제 곧 울진군의 바다가 보이는 죽변의 간이정류장에 도착한다. 힘들었던 버스여정은 어느덧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새길을 걷는다는 두근거림이 가슴 가득이다. 새로운 길을 걷는다는 것은 미지의 도전이며 희망의 시작이다. 희망은 설레임이며 내 삶을 이어가는 동력이다. 두려움은 나를 옥죄고 희망은 나를 자유롭게 하니까 말이다.(영화 '쇼생크탈출'에서 레드의 대사)


물회 한 그릇이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길이 막혀서 1시간이나 늦게 도착한 덕분에 맘이 급하지만 점심을 놓칠 수는 없다. '뭘 먹으면 좋을까' 거리를 두리번거리다가 물회집을 발견했다. 여름에는 그저 물회만 한 것이 없다. 동해 바다가 바라보이는 식탁에 자리를 잡고 물회를 주문한다. 얼음 눈 수북한 물회가 등장하고 정갈하면서도 강원도스러운 밑반찬이 몇 가지 준비되었다. 물회 한 그릇을 밥에 썩썩 비비며 끝없이 펼쳐진 동해바다를 바라본다. 세상 부러울 게 없는 것이란 이런 맘새인가 보다. 창밖으로 보이는 동해바다와 시원한 물회가 기분 좋은 여행의 시작을 알린다. 그렇게 기분 좋은 점심식사가 끝나갈 즈음 아내의 전화가 오고 수화기 속에서는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린다.

  

울진 죽변의 두레회식당


입대한 아들 녀석의 첫 소식


          지난주 화요일 공군으로 입대한 아들 녀석이 첫 소식을 알렸단다. '효전화'라는 이름으로 입대 첫 번째 주말에 부모님께 소식을 전한다. 공중전화를 통해 수신자부담 전화로 걸려왔기 때문에 집사람은 조금 당황하기는 했지만 아이의 전화라는 것을 직감했다고 한다. 전화 속에서 아이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아내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아이는 건강하고 식사도 잘하고 있다고 전했다. 아내는 많은 것을 묻고 또 물어보고 싶었지만 자신의 눈물과 제한된 시간으로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몹시 아쉬운 모양이다. 짧은 5분이 지나고 아이의 등너머에서 전화를 빨리 끊으라는 빨간모자의 매서운 목소리가 들리더란다. 아쉽기만 한 아이와의 통화를 마치고 나에게 전화를 한 것이다. 여전히 목소리는 걱정과 기쁨으로 흔들리고 있었고 나의 공감을 바라며 전화를 했을 것이다. 한동안 아내의 이야기를 들어줬다. 5분 동안 통화를 20분쯤 전달하고 내 안부를 간단히 묻고는 전화를 끊는다.


          식당을 나와서 길을 걷는다. 아내의 목소리가 어느덧 아들 녀석의 목소리로 변하여 마치 내가 직접 통화한 양, 환청이 들린다. 나 역시 울컥하는 마음으로 한참 녀석을 생각한다. 걱정을 하자면 천가지도 넘지만 언제나처럼 나의 걱정보다는 더 잘 해낼 것이라는 것을 믿기로 했다. 건강하게 훈련을 받고 자랑스러운 군인이 되어주길 응원하며 아빠의 길을 재촉한다. (글을 쓰는 시점에는 훈련소와 후반기 교육을 마치고 자대를 배치받아 근무 중이다. - 아들아!!! 감사한다. 네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감동이며 축복이란다.)


초여름 아름다운 길, 울진 연호에서 어다리교


          계절마다 어울리는 길이 있다. 6월, 여름으로 가는 초입. 초여름 아름다운 길은 이런 길이 아닐까 싶다. 울진 연호, 짙은 녹음이 만들어지기 전, 연둣빛 생기가 뿜어지고 호수를 통해 불어오는 살랑바람이 상쾌하다. 때 이른 햇볕의 질투에 색색의 양산이 나타나고 양산 속 중년의 미소가 소녀를 닮아 보인다. 소녀의 미소를 가진 아주머니들은 돌아가며 사진을 찍고 삼삼오오 모여 연두색 수다를 쏟아낸다. 연두색 미소와 수다가 초여름 호수와 잘 어울려 멍하니 쳐다보다 아주머니의 눈짓을 의식하고 정신을 수습하여 다시 길에 선다.

울진 연호

          연호를 지나 이정표를 따라 걸어가다 보니 남대천이 보인다. 남대천 줄기에 설치된 보행데크를 따라 해파랑길이 이어진다. 숲길사이로 이어진 보행데크는 데크 중간에 나무를 자르지 않고 설치하는 수고로움을 기꺼이 받아들였던 모양이다. 그 덕에 강변의 보행로는 그늘을 따라 걸으며 남대천을 즐길 수 있는 멋진 길로 재탄생했다. 남대천의 끝자락은 어다리교로 이어진다. 어다리교의 물고기 형상은 공학적으로 구조적 기능이 없는 쓸데없이 사하중의 증가를 만드는 요소로 보인다. 하지만, 점점 가까이 보이는 어다리교의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미소를 지으며 셔터를 눌러대곤 한다. 나 역시 단순하게 남대천을 횡단하는 것 이상으로 은색 물고기 뱃속을 지나는 만화적 풍경으로 남대천을 기억할 것이다. 이 정도면 쓸모없는 사하중 증가의 역할은 충분할 것이다.

남대천 보행데크 / 어다리교


갯바위, 행복한 정자와 초로의 가수


          남대천에서 망양정을 지나 숙소를 예약해 둔 오산항으로 걸음을 재촉한다. 울진군 산포리 해변길을 지나다 동해를 조망할 수 있는 멋들어진 정자가 하나 보인다. 바닷가 길의 정자는 일반적으로 마을 쪽에 만들어지데 산포리의 정자는 바다가 보이는 갯바위에 만들어졌다. 멀리 보이는 정자를 바라보며 정자에 앉아 시원한 막걸리 한 잔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정자 가까이에 올 때까지 정자에 아무도 없는 줄 알았다. 막상 정자가 가까워졌을 때 구성진 노랫가락이 들려왔다. 60대-70대로 보이는 초로의 남자분이 딸들로 보이는 여자분들과 함께 노래방 마이크를 들고 조용조용 노래를 부르고 계셨다. 노랫소리에 고개를 돌린 나와 눈빛이 마주치고 잠시 노랫가락이 멈춰지게 되었다. 한 순간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다가 두 손을 들어 박수를 쳐드렸더니 정자에는 박장대소의 웃음소리로 가득 찼고 노랫소리 대신 꾸벅, 초로의 인사가 돌아왔다. 서로 웃음으로 인사를 나누고 방해가 되지 않게 아름다운 해변으로 시선을 돌리며 길을 재촉한다. 아마도 이 가수분의 정자 공연은 이후에도 계속되었으리라. 언젠가는 아내를 대동하고 이 행복한 정자에서 막걸리를 한잔하고 싶다. 얼큰해지면 못 부르는 노래지만 나도 가수가 되어 보고 싶기도 하다.


울진군 산포리 해변 정자

          연휴 덕분에 3박 4일로 출발한 첫 번째 날의 여정은 오산항까지이다. 첫날의 여정은 오산항 인근의 게스트하우스 '하품'에서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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