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에게 보내는 여행 이야기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 2020년 1월 재희(딸)와 시안(西安)여행을 계획했었는데 5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중국여행을 떠나게 되네. 재희도 당신도 이번 여행에 함께하지 못해서 아쉽고, 올해 벌써 두 번째 혼자만의 여행을 가게 돼서 미안하고 아쉬운 마음이야!
당신도 내가 중국 고전이나 역사와 관련된 책들을 즐겨 읽는다는 것을 잘 알거야. 특히, 낙양(洛阳)과 시안(西安)은 중국 천년 고도일뿐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읽었던 삼국지, 서유기, 초한지의 실제 무대여서 소설 속 혹은 역사 속 주인공의 발자취를 따라 여행한다는 기대에 부풀어 있어.
동탁이 원소 등 연합군에게 쫓겨 낙양을 불태우고 시안으로 천도했던 그 도시. 당나라 삼장(현장)이 손오공과 저팔계, 사오정을 이끌고 서역에서 불경을 가지고 온 실크로드의 시발점(시안), 한나라 태조 유방과 사면초가 항우의 운명이 결정된 홍문의 연(시안), 춘추전국시대 분열을 마감한 중국 최초 통일국가 진나라 시황제의 무덤과 그의 지하군대 병마용(시안). 당나라시대와 위진남북조 시대에 조성되었다는 불교문화의 정수 용문석굴(뤄양), 책에서만 볼 수 있었던 중국 고대국가인 주나라의 유물과 하나라의 유적지(뤄양).
하지만, 기대만큼이나 큰 우려가 언어 문제인 것 같아. 5년 전 HSK 4급을 따고 나서 중국어를 전혀 들여다보지를 않아서 그나마 알던 것도 잘 될지 의문이야. 비행기 티켓을 예매하고 2달 동안 속성으로 복습을 하기는 했지만 어쩌면 번역기를 사용하는 것이 의사소통에는 더 좋을 수도 있을 것 같아. 그렇다 하더라도 가능한 범위에서 내 중국어를 사용해보고 싶어.
이제 곧 시안(西安)에 도착해. 여행은 언제나 설렘과 두려움이 병존하지. 이번 중국여행이 나에게는 더욱더 그런 여행인 것 같아. 중국 소설과 역사를 따라가는 설레는 여행이기도 하고 언어가 통하지 않는 나라에 홀로 떠나는 두려움의 여행이기도 해. 서두르지 않고, 즐겁고, 건강한 여행이 되었으면 좋겠네.
ㅇ 중국이 두렵지 않은가 - 유광종
ㅇ 여섯 도읍지의 이야기 - 이유진
ㅇ 이야기 중국사- 조관희
ㅇ 누들로드 - 이욱정
ㅇ lonely planet( china)
5권의 책이 모두 도움이 되었지만, 이유진의 여섯 도읍지의 이야기는 시안과 뤄양의 유적과 역사를 이해하는데 가장 큰 도움을 준 책이었다. e-book으로 구입해서 핸드폰을 이용하여 가이드북처럼 이용할 수 있어서 실제 가이드북인 lonely planet보다 이번 여행에 큰 도움이 되었다.
시안 션양(西安咸阳) 공항에 도착했어. 일정상 바로 뤄양(洛阳)으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시안북역(西安北站)으로 갔어. 10년 전, 당신과 함께 윈난성(云南省) 쿤밍(昆明)에서 리장(丽江)으로 가는 야간열차 이후에 중국에서 기차를 타는 것은 처음이네. 기차역에 들어가서 역사 규모에 깜짝 놀랐어. 사진을 찍고 보니 공항의 대합실이라고 해도 믿겠더라고.
중국인들의 질서의식도 이전보다는 많이 개선되어서 줄을 서는 것이나 실내에서 흡연을 하는 것 등은 완벽하지는 않지만 많이 좋아진 것 같아. 이전에 쿤밍이나 리장의 기차역에서는 흡연과 무질서로 혼돈의 카오스였던걸 생각해 보면 의식과 제도가 많이 개선되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는 것 같아. 최소한 역사 내 흡연은 완전히 없어진 것 같아. 담배 냄새 때문에 화장실에 들어가는 것이 고역이었던 10년 전 윈난의 역사와 비교하면 일취월장!
시안북역의 모습뿐 아니라, 시안과 뤄양의 지하철역에서도 이전과는 다른 모습들이 보였어. 내리는 사람 먼저, 타는 사람이 후에 타는 문화를 위한 노력, 지하철 내에 장애인이나 노인, 임산부를 위한 자리들이 우리나라처럼 별도의 색으로 채색이 되어 있었어. 어쩌면, 당연한 것이지만 10년 전 우리가 봤던 모습과는 많이 달라진 모습이 보였어. 올림픽 이후에 중국이 변하고 있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아. 최소한 질서측면에서는 이전과 많은 변화가 있다는 것을 금방 실감할 수 있었어.
고속열차를 타고 1시간 30분 만에 산시성(陕西省) 시안에서 후난성(湖南省) 뤄양에 도착했어. 시속 300km/h 우리나라의 고속철도와 비슷한 속도이고 실내도 쾌적하고 역무원들도 친절했어(물론, 영어가 통하지는 않았어) 인터넷 예매(trip.com)한 표에 기차번호와 차량번호, 좌석번호가 잘 나와있고, 역사의 sign board가 잘 운영되고 있어서 기차를 이용하는 데는 특별한 어려움이 없더라고. 무엇보다도 색다른 점은 기차를 타는 시스템이야. 모든 사람들이 기차표가 아닌 신분증을 인식시키고 게이트를 통과하고 있었어. 나 같은 외국인은 여권을 인식시키고 통과하는 시스템이었어. 아마도 인터넷 예약을 할 때, 여권정보를 모두 입력했고, 입국시 얼굴 사진을 찍었는데 그런 정보들이 연계되어 티켓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으로 보이더라고. 편리한 시스템이라고 생각이 되면서도 모든 국민과 입국 외국인의 일거수 일투족을 통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는 생각에 빅브라더의 세상이 만들어지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했어.
뤄양(洛阳)의 숙소에 도착했어. 1박에 3만원도 안 되는 객잔(客栈)이고, 한국인이 남긴 후기도 없어서 걱정을 좀 했는데 너무 맘에 드네. 주인이 두꺼운 안경을 쓴 착해보이는 중년의 남자분인데 영어는 전혀 못하지만 객실까지 들어와서 에어컨, 전등, 정문 키 사용방법을 설명해 줬어. 그리고, 외국인 손님에 대해 특별히 배려하려는 모습에 감사하고 기분이 좋아지더라. 이후에도 더듬거리는 중국어로 인사를 하면 방청소를 원하는지, 불편한 점은 없는지 물으면서 배려해 줘서 절로 기분 좋아지는 숙소였어.
뤄양에서 가장 유명한 음식은 줴이스(水席, 수석)이라는 음식이래. 흐르는 물과 같은 음식이라는 뜻의 음식인데 24가지 코스의 국물요리들이야. 요즘은 코스보다는 개별로 음식들을 파는 식당들이 많다고 해. 나는 숙소 근처를 지나다가 뤄양수석이라는 간판을 발견하고 책에서 봤던 수석집이구나 싶어 들어가 보게 됐어.
서툰 중국어로 가장 유명한 뤄양의 수석음식이 뭐냐고 물었더니, 뤄양옌차이(洛阳燕菜, 낙양연채)와 쟈오쟈완즈(焦炸丸子, 초작환자)라는 음식을 추천받았어. 뤄양옌차이는 여러 가지 채소를 이용해 끓인 탕요리인데 약간 신맛이 나고 여러 가지 채소들의 조화가 좋은 음식으로 뤄양수석 중 가장 유명한 요리야. 쟈오쟈완즈는 보이는 그대로 간장베이스의 국물에 조금은 바삭한 고기완자가 들어가 있는 음식이야. 두 가지 음식 모두 밥과 잘 어울려서 공깃밥을 시켜서 같이 먹으니 너무 맛있더라고. 당신이나 아이들이 있었으면 몇 가지 더 시켜서 맛볼 수 있었을 텐데 24가지 중에 겨우 두 가지라니, 너무 아쉽더라.
자리가 없어서 내 또래의 중국남자와 합석을 하게 됐어. 운전하는 것이 직업이라는 이 사람은 처음에는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과 한 식탁에서 식사하는 어색함에 냉랭한 분위기였지만,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씩 나누며 나중에는 50대의 두 중년이 기념사진을 찍고 헤어지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하게 됐어. 이 사람 말에 따르면 뤄양 옌차이가 뤄양 수석 가운데 가장 유명한 요리이고 이곳 사람들은 밥(米饭)보다는 바오즈(包子)와 함께 먹는다네. 이후에도 뤄양과 시안을 여행하면서 밥을 먹는 사람들을 못 본걸 보면 중국 내륙 사람들은 밥보다는 밀로 만든 국수나 빵(莫 or 包子) 종류를 주로 먹는 것 같아. 이외에도 처음 들어간 중국의 식당에서 엉터리 성조의 중국말을 사용하는 한국인을 옆자리 손님들이 도와주는 과정에서 퀴즈쇼 같은 분위기가 조성돼서 작은 식당 전체가 웃음바다가 되기도 했었어. 조금 바보가 된 기분이기도 했지만, 사람들이 모두 호의를 가지고 도와주려고 해서 미소로 답해주고 맛있게 음식을 먹을 수 있었어. 이렇게 중국에서의 첫 끼니를 보내.
새벽 5시에 집에서 나와 인천공항에서 시안을 거쳐 이곳 후난 성 뤄양에 도착해 있네. 늦은 저녁을 먹고 당신과 전화통화를 하고 누웠어. 생각보다 이곳 날씨가 더워서 조심해야 할 것 같아. 남은 7일 동안 건강하고 즐겁게 보내길 기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