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하기 위하여 수박씨가 / 김치감자수제비

by 김키친

출발하기 위하여 수박씨가)

발코니에 대충 던져놓는 수박씨가 싹을 틔었다. 볕과 바람을 받아 들며 홀로 무럭무럭 자라났다. 나의 여름은 어떠한가. 고이고이 흘렀는가. 부분의 부분을 되새겨본다.

자분자분 담가 먹는 오이피클, 윤이련님을 참고한 열무김치, 뒤셀의 라우겐, 토마토와 토마토, 균열과 선율 그리고 의미 있는 타인들까지. 8월을 자주 되새긴 문구가 있다. 내내 전혜린의 입을 떠나지 않았다는 누군가의 시구. ‘출발하기 위하여 출발하는 것이다.’ 출발하기 위하여 출발하는 것이다.


김치감자수제비)

이런저런 사진을 찍고 루틴을 지키고자 일기를 쓰다가도 살아낸다는 의식을 조금만 잊어버리면 시간은 냉큼 지나쳐 버리는 것만 같다. 그 잠깐의 일시정지 동안 나는 김치감자수제비를 먹고 또 먹고 홍상수의 ‘당신 얼굴 앞에서’를 보았다. 좋아하는 배우와 홍상수. 처음부터 실소가 터지는 게 이번에도 웃기고 아주 웃기고 자빠져서 보는 동안 자주 기뻤다. 초반에 나오는 ‘2억이 올랐어’를 시작으로 ‘지가 뭔데 내가 옷까지’부터 내도록 어긋나는 감정의 결들을 보아 내는 것이 참으로 즐거웠다.

보아 내는 기쁨과 마음의 환기, 갈급이 생략된 오늘. 그럼 또 어떤가, 어떠한가. 열심히 살고 싶고 열심히 살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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