싼 게 비지떡인데 그냥 먹어요
소위 '미니멀리스트'로 잘 살기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꼭 필요한 것만 사는 분별력과 필요 없는 것은 사지 않는 절제력이다. 그리고 필요한 것을 살 때는 쉽게 버리지 않을 '괜찮은' 물건을 골라야 한다. 비싼 것과 좋은 것이 항상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돈이 쉽게 가치를 배신하는 일 또한 흔치 않다. 그래서 뭔가를 살 때는 만만히 버리기 어렵게 많이 예쁘거나 조금 가격이 있는 것들로만 구입하려고 한다.(앞서 3만 원짜리 젤리 슈즈를 세 켤레나 산건 안 비밀이다.)
하지만 치앙마이에서의 소비는 조금 다르다. 내년이면 돌아가기 때문에 여기서 쓰던 물건은 한국으로 돌아갈 때 가져가기엔 짐이 된다. 따라서 미련 없이 버리고 가도 될만한 물건으로 잘 골라야 한다. 여기라고 모든 것이 한국보다 싼 것은 아니다. 특히 대부분의 공산품은 한국보다 질이 떨어지고 비싼 편이라 생각하면 된다. 가장 놀랐던 것은 '수건' 가격인데 코스트코에서 6개 한 묶음에 1만 4천 원이면 살 정도의 퀄리티 수건을 여기서는 개당 6천 원 정도는 줘야 구입할 수 있다. 그리고 물티슈. 요즘 쿠팡에서 개당 천원도 안 되는 가격에 집으로 배달까지 해주지만 여기서 그 정도 퀄리티 물티슈는 개당 4천 원은 줘야 살 수 있다. 물건 하나를 살 때마다 매번 이 마트 저 마트 가격 비교를 하다가 우연히 일명 동남아의 제왕, 'Lazada'라는 인터넷 쇼핑몰을 알게 되었다.
라자다는 알리바바가 인수한 인터넷 쇼핑몰로 우리나라의 11번가 정도 되는 곳이라 생각하면 된다. 접속해 보니 없는 물건이 거의 없고 쿠폰을 사용하면 대부분 무료로 배송을 받을 수 있는 쇼핑 천국이었다.
처음 시킨 물건은 바로 마늘을 다지기 위한 채소 다지기. 핸들을 잡아당기면 칼날이 회전을 하면서 채소를 잘게 다져준다. 주문한 지 하루 만에 도착했는데 우선 색깔부터 내가 시킨 게 아니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2천 원짜리니까. 마늘을 넣어보니 제법 잘 다져졌다. 덕분에 일일이 칼날로 다지는 수고를 덜게 되었다. 두 번째 다지려고 뚜껑을 여니 바닥에 붙어 있어야 할 회전 칼날이 거꾸로 뚜껑 안쪽에 딸려 오는 것이 아닌가. 진득한 마늘액까지 더해져 칼날이 빠지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뚜껑에 마늘 몇 개를 올리고 거꾸로 몸체를 뒤집어 끼웠다. 몇 번 반복하니 제법 요령이 생겨 마늘 한 봉지를 전부 다질 수 있었다. 지퍼백에 납작하게 넣어 냉동고에 쟁이니 마음까지 푸근해졌다.
다음 주문한 것은 카펫. 거실에 집주인이 깔아 놓은 카펫은 장모라 덥게 느껴지는 데다 덜 마른빨래처럼 쿰쿰한 냄새가 나 그 위를 다니는 것도 조금 찝찝할 정도였다. 게다가 알고 보니 거실 곳곳에 타일이 깨져 있었는데 때문에 카펫을 아예 걷어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이 집의 하자는 과연 어디까지인가! 나 울어~) 그렇다고 10만 원 넘게 주고 새 카펫을 사서 그냥 두고 갈 생각을 하니 돈이 너무 아까웠다. 라자다의 바다를 헤매다 드디어 깨진 타일을 모두 커버해 줄 수 있는 커다란 사이즈의 단돈 2만 원짜리 카펫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것 또한 주문 하루 만에 도착했는데, 비닐 포장된 것만 보고선 비슷한 시기에 주문한 물티슈가 온 줄 알았다. 가로세로 2*3미터 크기의 카펫이 들어 있다고 보기엔 아주 옹색한 모양새였기 때문이었다. 뜯어보니 두께가 두꺼운 종이보다 조금 두꺼운 정도였다. 게다가 사진에서는 고급스러운 아이보리 컬러였는데 실제로는 칙칙한 연핑크에 가까웠다. 그래도 괜찮았다. 2만 원 짜리니까. 그리고 뭐니 뭐니 해도 크기 하나는 기가 막히게 정확했다!
그리고 다음으로 물티슈를 주문했다. 1팩당 80장이 들어 있고 10팩 세트로 오는 구성이 단돈 2천5백 원이라니! 이틀정도 걸려 도착한 물티슈는 어떻게 저렇게 '콤팩트'할까 싶었는데 비닐을 뜯고 나서 알게 되었다. 물티슈 1장은 손바닥보다 작고 1팩은 휴대용 물티슈 크기였던 것이다. 일반적인 물티슈 크기와는 다소 차이가 있었지만 나름 수분기는 충분해서 창틀에 죽은 벌레나 게코 도마뱀 똥 치우는데 아주 요긴하게 쓰고 있다.
그 뒤로도 똥차를 위한 9천 원짜리 차 시트 커버, 신선한 오렌지 주스를 먹기 위한 8천 원짜리 착즙 주서기, 산뜻한 수면을 위한 단돈 1만 원짜리 매트리스 커버 등을 모두 라자다에서 주문했다. 차 시트는 탈 때마다 울었지만 내구성은 좋은 편이고 착즙 주서기는 즙은 잘 안 나오지만 무적의 스테인리스 소재였다. 그리고 매트리스 커버는 몇 번 빨았더니 보풀이 좀 생겼지만 금세 건조돼 요즘 같은 우기에 세탁하기에 좋았다. 다행히 텐트를 시켰는데 머리만 들어가는 미니어처가 왔다던가 원피스를 시켰는데 강아지 사이즈라던가 하는 일은 없었다. 단지 저렴하고 디자인이나 기능상으로 뭔가 좀 부족한 물건들일 뿐이었을 뿐. 앗! 그러고 보니 사람들은 이런 것을 두고 이렇게 부르기로 하지 않았나.
앞서 게재했던 글에서 소싯적에 명품과 좀 친했다며 조금 허세를 부린 적도 있는데 알고 보니 싸구려도 꽤 잘 맞는 스타일이었던가. 그간 거들먹거렸던 좋은 '안목'은 허상이었나. 아니다. 나는 싸구려 취향으로 변한 것이 아니라 그저 사소한 것에 만족하는 것뿐이다. '싼 게 비지떡'이라고 하지만 비지에 식이섬유가 많아 건강에 좋다 하고 생각하면 그만인 것처럼. 조금 부족해도 이만하면 충분하다 생각하면 또 그럭저럭 보아지게 되는 법이다. 물건도 사람도.
남편이 똥차의 핸들이 햇볕에 너무 뜨거워져 패브릭 커버가 필요하다고 한다. 보자 보자. 라자다에 또 어떤 '싸구려' 핸들 커버가 있나 보자. 고심 끝에 도라에몽이 달린 4천5백 원짜리 핸들 커버를 주문한다. 이번에는 또 얼마나 어설픈 물건이 올지 은근히 기대가 된다.
Photo: Matias Re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