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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떠보니 스토리 크리에이터

비인기 작가이자 라이프 크리에이터입니다만...

by Jane C

오늘 메일을 열어보니 어제 브런치스토리에서 보낸 '스토리 크리에이터'가 되었다는 축하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습니다. 스토리 크리에이터란 '브런치스토리에서 뚜렷한 주제를 가지고 우수한 창작 활동을 펼치며, 전문성・영향력・활동성・공신력을 두루 갖춘 창작자'라는 친절한 설명과 함께 말이죠.(그게 저인지는 아직도 의문입니다...)그리곤 제 브런치에 가보니 프로필 아래 '라이프 분야 크리에이터'라는 배지가 떡하니 달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눈 떠보니 치앙마이'라는 브런치북을 연재한 지 어느덧 3개월이 넘어갑니다. 아이들이 방학 때 너무 빈둥대며 놀까 봐 책상에 붙잡아두며 옆에서 뭐라도 하는 척하려고 시작했던 글쓰기가 용케 아직도 이어오고 있네요. 얼마 전 독자 100명 달성 자축글을 올렸는데 이번엔 크리에이터 선정 자축글을 올리다니, 참으로 면이 두꺼운 작가가 아닐 수 없습니다.



크리에이터는 창작자이고,

창작創作은 새로운 것을 처음으로 만들어 내는 것을 뜻합니다.


애초에 저의 인생은 창작과는 다소 거리가 멀었습니다. 제가 세상에 처음으로 선보였던 시가 100% 표절이었음을 브런치 매거진에 게시한 <글은 뭐 아무나 쓰나>에서 실토한 적이 있습니다. '낮에 놀다 두고 온 나의 종이배'는 이라니요!!

https://brunch.co.kr/@happyfinder/12


그리고 초등학교 때 교내 미술대회에서 처음으로 수상했던 작품은 엄마의 스카프 패턴을 그대로 따라 그린 것이었습니다. 앞서 집안 형편이 썩 넉넉하지 않아 미술학원을 다니지 못했다고 했지만 사실 미술의 길에 들어섰어도 이런 얕은 수작으로는 장성하지 못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패션 에디터가 될 수 있었던 건 참 운이 좋았지만 예술성과 창조성이 부족한 저에게는 다소 버거운 일이었다 고백합니다. 요즘은 패션 에디터도 비주얼과 피처 분야가 확실히 나뉘어 있지만 '라떼는' 과도기여서 화보도 찍고 글도 쓰는 작업을 함께 병행해야 했죠. 화보를 찍기 위해서는 주제와 콘셉트를 정하고 그것을 비슷하게 구연할 시안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에 맞는 옷과 액세서리를 구해 스타일링하고 작업에 적합한 모델과 포토그래퍼, 헤어와 메이크업 아티스트, 세트 스타일리스트 등 촬영 스태프를 세팅하는 일까지 마쳐야 비로소 화보를 찍을 수 있는 모든 '요소'가 충족됩니다. 이렇게 글로만 풀어도 화보 하나를 찍는 일이 얼마나 창의적인 프로젝트인지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창작의 첫 발을 '표절'로 뗀 저에게 과연 샘솟는 상상력이 충만했을까요. 게다 늘 '질려병'을 달고 사니 모자란 재능을 커버할 뜨거운 열정이 있기도 만무했지요. 과거 촬영했던 화보들을 지금 다시 꺼내본다면 아마 쥐구멍 안에서도 차마 두 눈을 뜨고 있지 못할 듯합니다. 꾸역꾸역 없는 생각을 쥐어짜서 근근이 촬영을 하면 차라리 다행입니다. 도무지 기획도 섭외도 되지 않아 기사를 통째 펑크낸 적도 여러 번이니 지금 생각해도 땀구멍이 모두 입이라도 할 말이 없네요.(돌이켜보니 편집장님이 상욕을 날리셨대도 근로법 위반이 아니었을 듯합니다. 글을 보진 않으시겠지만 제 한마음 편하자고 이 자리를 빌려 사과의 말씀드립니다.)


이렇듯 다소 장황했던 비창조적, 비창의적 연대기를 지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나니 뭔가를 만들어내는 일은 더 이상 필요치 않았습니다. 매일매일 눈앞에 건사해야 하고 치러내야 하는 일들만 가득했죠. 그러다 마음의 병이 생기고 나를 뒤돌아 보고자 이 먼 곳까지 왔을 때 결국 찾아낸 치료 중 하나는 다시 뭔가를 지어내는 일이었습니다.

'짓다'라는 말은 참으로 멋진 단어입니다. 밥부터 시작해서 옷, 집, 시나 소설도 모두 '짓다'는 말로 수렴됩니다. 어쩌면 사람을 둘러싼 모든 세계는 '짓다'라는 단어로 만들어낼 수 있을 듯합니다. 태초에 이름 지어진 인간은 표정도 짓고 말도 짓고 관계도 짓고 죄도 지을 수 있으니까요. 앞으로도 저는 글을 '짓는' 일을 통해 스스로와 진동하며 저만의 세계에 보다 가까워지려 합니다. 어쩌면 '라이프 분야 크리에이터'는 하나의 배지가 아니라 저의 '삶'을 보다 잘 지어내고 싶은 노력을 모두에게 표명하는 일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에게 창조나 창작은 아직도 거창하고 어려운 일입니다. 한낱 비인기 브런치 작가인 주제에 크리에이터라는 명색으로 거들먹거리는 일도 다소 우습고요. 저는 그저 짓겠습니다. 제가 벽돌을 하나하나 쌓아 올리고 투명한 창문을 내어 빛을 들이고 그 위에 지붕을 이어 추위를 피하고 온기를 나누는 '삶'의 집을 지어내는 일을 다만 평화로히 지켜봐 주시길.




저번 자축글에 이어, 이번에도 작은 바람이 하나 있다면

부디 남의 집을 똑같이 따라 짓는 일이 없기를. (그리고 배지 줬다 뺏는 일도 없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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