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를 못 치는 이유
나는 운동 실력이 없다. 게다가 지구력과 인내심까지 없으니 시간의 힘을 빌려 능력치가 레벨업 될 가능성도 아예 없다. 어려서부터 엉덩이를 붙이고 꼬물꼬물 대는 것을 좋아했기에 운동을 못하는게 살면서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두뇌 운동에 우세한 점수를 주던 인생 1라운드를 마치면 오롯이 내 몸으로 평가받아야 하는 인생 2라운드가 온다. 대학교 때 간지 나는 운동 동아리? 당연히 못했다. 회사 다니면서 돈 벌 체력을 상승시켜 줄 취미 운동? 당연히 없었다. 젊었을 땐 많이 먹어도 군살 하나 붙지 않았지만 아이를 낳으면서 긴 세월 게으름의 대가가 오롯이 '몸빵'으로 왔다.
제왕절개 수술 후유증으로 한동안 목이 돌아가지 않았는데 이후에도 컨디션이 안 좋으면 목과 어깨 근육 수축이 왔다. 그래서 목석같은 내 몸에 기름칠 좀 해보자 싶어 요가 클래스를 등록했는데 도무지 동작에 진전이 없었다. 선생님은 처음엔 꾸준히 하면 다 된다고 격려해 주셨지만 8개월이 지난 후에도 허리를 구부려 제 발등조차 못 잡는 모습을 보고 '가끔 유난히 유연하지 않으신 분들도 있어요'라는 말로 백기를 대신하셨다. 또 한 번은 골프 연습장에 나가 보기도 했는데 세 달 정도 요령 없이 레슨을 받다가 견갑골 근육에 염증이 생겼다. 마침 '질려병'이 도지려던 차여서 옳거니 하고 관둬 버렸다.
그 후에 시작한 운동이 바로 테니스. 친한 언니가 공짜 라켓을 하사하며 강추했고 운명처럼 집 근처 5분 거리에 실내 테니스장이 오픈했다. 한국에서 8개월 정도 레슨을 받고 치앙마이에 왔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만 가볍게 치려고 했는데 30년 만에 라켓을 다시 잡은 남편이 갑자기 테니스에 대한 사랑으로 충만해져 버렸다. 그래서 옆에 있는 나 또한 '부득이하고 과도하게' 열심히 테니스를 치게 되었다.
문제는 나의 '질려병'. 병이 도지고 말았으니 실력이 늘 리가 없다. 벌써 마스터하고 남았어야 할 포핸드 스윙을 아직도 하고 앉아 있다. 더 잘 치기 위해 교정받는다는 얘기가 아니라 그냥 기본 스윙이 안 된다. 테니스를 배운 지 거의 1년이 되어 가지만 새로 옮긴 코트에서 친지 3개월 됐다고 하니 그대로 믿는 수준이다.
그러다 오늘 아침 레슨을 하면서 깨달았다. 내가 테니스를 못 치는 진짜 이유를.
나는 오는 공을 보고 생각했다.
'공에 집중을 해야 해. 인생도 목표에 집중해야 하니 공이랑 똑같네.'
'공은 생각보다 천천히 와. 그냥 나만 급한 거야. 인생에서도 여유를 가져야 하는데 나만 급하네.'
'공을 맞추는 타이밍이 중요해. 인생도 타이밍이 중요한데...'
'힘을 빼고 쳐야 해. 아니면 오래 못 쳐. 인생에서도 힘을 빼야 뭐든 오래 할 수 있지.'
그렇다. 바삐 움직이며 공을 쳐야 할 시간에 혼자 개똥철학을 하고 있는 거다. 그러니 공이 잘 맞을 턱이 있나.
우리 오빠는 어릴 때 나랑 같이 놀면서 늘 같은 얘기를 반복 했었다.
"공을 좀 봐! 공을!"
어릴 때부터도 나는 공을 보면 공보다 생각이 더 둥둥 떠다녔었다 보다. 그래서 언제나 내가 차거나 친 공은 전형적인 '똥볼'로 나의 잡생각보다 더 훨훨 날아갔었다.
내일 또 테니스 레슨이 있다. 오늘 날카로운 '선수 분석'을 끝냈으니 내일은 좀 더 나아질까. 내일은 인생 말고 공을 잘 칠 수 있을까. 심기일전해서 공이 정타로 '땅'맞고 쭉 뻗어 나가는 순간 나는 또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공처럼 인생도 정타 한방이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