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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body Dec 01. 2020

비행기를 탈 때는 마음대로지만, 내릴 때는 아니란다.

가끔 공황장애나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비행기에서 내리려고 하는 승객들이 있다. 지하철이나 버스, 고속버스, KTX, 고속열차에서 그런 분들은 그냥 내리면 된다. 그러나 비행기는 다르다. 비행기를 탈 때는 마음대로 탈 수 있지만, 내릴 때는 마음대로 내릴 수 없다. 자리에 폭탄을 설치하고 그 자리를 벗어나는 테러범일 수도 있기 때문에 보안 규정이 빡빡한 편이다. 공항 보안 요원들이 와서 기내 등을 확인하고, 내리려는 사람을 인터뷰하는 등 쉽지 않다.




하루는 내가 서브로서 도어 클로즈(승객들이 모두 탑승한 후 항공기가 주기장으로 나가기 전에 ‘L2’라는 비행기 왼쪽 뒤편에 있는 문을 닫는 것을 의미함)를 하기 위해 필요 서류와 워키를 들고 내려갔을 때다. 안절부절못하는 승무원과 불안한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는 한 승객이 함께 발을 동동거리며 서계셨다.




‘뭘까? 핸드폰을 두고 오셨나? 하… 안 되는데. 문 닫고 가야 되는데’


나는 불안한 마음을 억누르며,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무슨 일이에요?”


“고객님께서 공황장애로 너무 떨리셔서… 비행기에 못 앉아 계시겠다고…”




머리가 띵했다. 여행에 대한 설렘이 공황장애를 이겼는데, 다시 불안 증세가 강해지셨구나. 싶었다. 혹은 치료의 일종으로 여행을 떠나시는 건가, 그 짧은 사이에 머릿속으로 드는 쓸데없는 오만 가지 생각들을 뒤로하고 고객님에게 침착하게 눈을 맞추며 말했다.




“고객님, 일행 분은 없으세요-?”


“안에 있어요. 아휴, 그런데 내가 심장이 너무 떨려. 우황청심환을 먹었는데도 떨려.”


나는 괜찮다는 듯 승객에게 가볍게 웃어 보이며 승무원을 향해 말했다.


“안에 가셔서 고객님 일행 몇 분만 데리고 나와 주시겠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승무원이 또래로 보이는 여성분들 2분을 데리고 나왔다.


“아이구, 이 사람이 왜 이랴. 한두 번 여행하는 것도 아니고.”


“그러게, 자, 자, 심호흡해봐 봐.”




비행기 문이 닫히고, 승무원이 우리 비행기는 곧 이륙한다는 말을 하고, 주기장으로 비행기가 빠져나가고, 이륙을 위해서 전속력으로 앞으로 나아갈 때, 그때 그 압박감은 누구나 느껴보았을 것이다. 그 순간이 좋으면서도 무섭다. 혹시나 영화에서처럼 갑자기 터져버리면 어떡하나 하는 그런 밑도 끝도 없는 불안감에서 나오는 상상 때문에

아마 이 승객도 말로 표현은 못하지만 이런 상상들로 마음이 괴로우실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객님, 자, 이렇게 한번 해볼까요? 여행이 처음 아니시고, 친구분들이랑 여행 많이 다녀보셨으니까. 이번에도 같이 가시고, 대신 민망하지만 손을 좀 잡아보는 거예요. 어때요?”




손을 잡아보라는 나의 말에 일행 두 분은 민망하고 멋쩍어하시면서도 불안해하는 승객의 손을 잡아주었다. 나는 이 불안이 심리적인 것에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옆에 있는 누군가의 체온을 느낄 수 있다면 훨씬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타인의 체온은 생각보다 크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기 느끼기 때문이다. 다행히 성격이 무척 밝으신 일행 두 분은 양 쪽에서 그 승객의 손을 잡고 나랑 승무원이 말하기도 전에 불안해하는 승객을 잘 달래며 함께 비행기로 다시 들어갔다. 승무원과 나는 같은 생각을 하며 안도의 한숨과 함께 가볍게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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