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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hara Apr 18. 2024

사랑의 언어: 밥상에서 배우는 사랑

성장일기 _ 일상

아이들에게 아침을 먹이고 등교시키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다. 어제저녁에 준비해 놓은 국을 데우고, 장조림, 명란젓, 구운 김과 양념장을 차린다.


나의 분주함과는 달리 아이들은 느긋하다. 늦게 일어난 아이들은 정해진 등교 시간과는 상관없이 너무 여유로워 내 속은 타들어 간다.


'아침부터 화를 내지 말아야지. 기분 좋게 보내야지.' 혼잣말로 나를 다스린다.


나는 아이들이 밥을 못 먹고 등교할까 봐 발을 동동 구르며 재촉하고, 시간 체크를 하고, 아이들 상태를 확인한다. 혼자서 동동거리는 모습이 마치 임금을 모시는 하녀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급하게 동동거리는 나의 모습이 불안했는지 아이들이 말한다.


"엄마, 늦어도 괜찮아. 여기는 아무도 상관 안 해! 캐나다라고!"

"알아. 그래도 사람이 약속된 시간은 지켜야지."

"지각해도 상관없다고!"

"누가 그러는데? 늦게 들어가면 다른 친구들한테 피해 주는 거잖아!"

"나 빼고 전부 다 그래. 휴..."


나의 생각과 아이들의 상황은 늘 대립하고 협의점이 없다. 결국 내 생각을 접게 된다. 내는 40년 넘게 한국에서 살아온 집단주의, 가족주의, 관계주의를 강요받으며 자라 온 꼰대였고, 아이들은 캐나다 공립학교에서 개인의 감정과 개성을 존중받으며 교육받고 자란 세대이다. 그러니 이곳에서 의견 충돌이 발생하였을 때 내 의견을 내세워 대립하다가 결국 아이들의 결정을 따르게 된다. 


여하튼 나와 아이들은 이 부분에서 많은 의견 충돌이 있지만, 타향살이에서 아이들의 생각이 더 옳은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내 생각은 이제 낡아빠진 헌 옷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등교 시간 20분 전. 지각하면 안 된다는 내 자동반사신경은 발을 동동 구른다. 초단위로 시계를 바라본다.


아침을 먹고 학교를 가야 하는데 식탁에 오지 않고, 옷도 천천히 입고, 머리도 만지고, 그 사이사이 핸드폰도 놓지 않는다.  슬슬 나는 화가 난다.


"아침밥을 먹고 학교를 가야지!"


내 커지는 목소리에 아들이 먼저 준비를 마치고 식탁에 앉는다. 휴대폰을 보며 밥을 먹는 모습이 거슬린다. 아침부터 식사 예절에 대해 구구절절 말하고 싶지 않아 꾹 참는다.


딸은 여전히 식탁으로 오지 않는다. 구운 김에 양념장과 참기름에 푹 잠긴 명란젓을 올린 김밥을 들고 딸의 방으로 들어가니 핸드폰을 만지고 있다.


"늦었다. 늦었는데 왜 그러고 있니? 지금 핸드폰 볼 시간이 아니야."

"어떤 옷 입고 갈지 몰라서 검색해보고 있는 거야!"

"전날 준비했으면 됐잖아?"

"전날은 바빴어."

"휴... 내가 할 말이 없다."


말문이 막힌다.


내가 아이들의 아침식사에 집착하기 시작한 이유는 캐나다 공립학교는 한국의 급식 문화가 없다. 대부분 도시락을 싸가는데, 개인의 머무는 특정반이 없기에 책상에 앉아서 편하게 먹는 것이 아니라 교실 밖에 나가 복도에 앉아서 먹거나, 운이 좋으면 카페테리아 자리에 앉아서 밥을 먹는다고 하였다. 점심시간도 40분 밖에 되지 않은데 이마저도 점심시간에 특별활동들이 많아서 넓은 학교의 건물을 이동해야 하니 차분히 앉아서 밥을 먹을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아이들의 점심을 남겨오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다. 


이유는 밥을 먹을 시간이 없었다였다.


그래서 내가 아침식사에 집착하는 이유가 되었다. 왜냐하면 오후 3시까지 학교에서 밥을 굶는 시간이 너무 오래되기 때문에 


등교 시간 5분 전.


"늦었다. 5분 전이야. 출발하자."


정신없이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집에 돌아오면 아침 준비 분주했던 주방과 식탁은 그 흔적들로 가득하다. 고, 아이들이 남기고 간 밥과 반찬을 아침으로 대신하며 문득 엄마와 아버지가 떠올랐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압력밥솥에 밥을 안치시고,  엄마를 깨우셨던 아버지. 엄마는 그 새벽에 도시락 6개를 싸고 우리들의 아침을 준비하셨다. 아버지 본인은 정작 아침을 드시지 않고 냉동실에서 전날 꺼내 놓으신 떡을 드시고 출근하셨다. 엄마가 준비하신 아침은 늘 마른 김에 양념장을 얹고 송송 썰은 김치를 올린 김치김밥이었다.


교복을 입고 순서대로 학교 가는 우리들 손에 한 줄씩 들려주셨다. 


"아침 먹고 가야지!"


입에 넣어주신 김밥은 정말 맛있었다.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그 맛. 문득 엄마가 입안에 넣어주셨던 김밥을 먹고 등교하던 내 모습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난다.


그것이 엄마의 사랑표현이었다.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지만 사랑이었다. 그것이 사랑인지 몰랐는데 내가 자식을 낳아서 키우다 보니 사랑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지금 엄마에게 물려받은 사랑 그대로 행동하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부모에게는 각자만의 사랑의 언어가 존재하는 것 같다. 아버지는 자식에게 말보다는 주로 행동으로 보여주셨고, 어머니는 음식으로 표현해 주셨던 것 같다. 맛있는 음식을 차려서 가족들과 맛있게 식사하는 순간을 좋아하셨다. 


가족들이 맛있게 먹는 것을 바라보며, "니들이 먹는 것만 보고 있어도 배부르다."라는 말이 이제야 무슨 의미인지 제대로 알 것 같다. 


내 부모님이 주신 사랑의 언어를 그대로 물려받아 나도 음식으로 내 사람을 표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몰랐던 부모님의 사랑의 언어들. 엄마를 떠올리면 8할 이상이 주방에서 서 있던 뒷모습이다. 내가 엄마에게 받은 사랑의 언어는 음식이어서 나도 그 사랑의 언어를 실천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부모가 되고 나서 아이들 식사를 준비하며 감히 그 마음을 헤아려 본다. 


그리고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깊은 사랑의 마음을 알아차리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럼 나는 이제부터 아이들에게 음식을 내어주면서 말해봐야겠다.


"엄마의 사랑이야! 사랑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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