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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hara Apr 18. 2024

#22. 사랑의 언어

성장일기 _ 일상

아이들에게 아침을 먹여 등교 시키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다.

어제저녁부터 준비해 놓은 국을 데우고 장조림, 명란젓, 구운 김과 양념장.


나의 분주함과 상관없이 아이들은 너무 느긋하다.

늦게 일어난 아이들은 정해져 있는 등교시간과 상관없이 너무 여유로워 내 속은 타들어간다.


'아침부터 화를 내지 말아야지. 좋은 기분 좋게 보내야지.'

혼잣말로 나를 다스린다.


나는 아이들이 밥을 못 먹고 등교할까 봐 발을 동동 구르고 재촉하고 시간 체크하고 아이들 상태를 확인하고

혼자서 동동거리는 모습이 임금의 시중을 드는 하녀와 같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렇게 급하게 동동거리는 나의 모습이 아이들은 불안했는지


"엄마. 늦어도 괜찮아. 여기는 아무도 상관 안 해! 캐나다라고!"

"알아.  그래도 사람이 약속된 시간은 지키라고 있는 거잖아?"

"지각해도 상관없다고!"

"누가 그러는데. 늦게 들어가면 다른 친구들한테 피해 주는 거잖아!"

"나 빼고 전부 다 그래. 휴...."


나의 생각과 아이들의 상황은 늘 대립되고 협의점이 없지만 결국 내 생각을 접게 된다. 캐나다에서는 내가 40년 이상 살아왔던 한국의 집단주의를 강요하는 사람이 없을뿐더러 개인의사는 어떠한 이유에서도 존중되는  분위기이며 많은 부분을 함께 다 같이 가자고 말하는 것보다 아이들이 스스로 결정하게 기다려주거나 내버려 두는 시간이 많은 것 같다.


내가 나고 자란 대한민국은 태어나서 성인이 될 때까지 가족 간에 혹은 학교, 직장에서 하는 모든 사회생활에서 교육받는 방식들은 집단이 함께 하는 데 있어서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거나 혼자만의 생각을  지나치게 표현하거나 튀는 행동을 하는 것은 정말 나쁜 생각과 행동이라고 무언중에 배워나가는 것 같다.  사회 전체 분위기가 강요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자란 자라온 나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정해진 등교시간에 약속을 지키는 게 정답이고 익숙함이기 때이다. 나


여하튼 나와 아이들은 늘 이 부분에서 많은 의견충돌이 있지만 결국 타향살이의 생활에서 아이들의 생각이 더 옳은 경우가 많기에 내 생각을 많이 접으려고 노력한다.  내 생각은 이제 낡아빠진 헌 옷과 같은 생각들이 주를 이룬다.


등교시간 20분 전...


지각하면 안 된다는 내 자의식이 발동하여 초단위로 시계를 바라본다.


밥은 먹고 학교를 가야 하는데 식탁에 오지는 않고 세월아 네월아 옷도 천천히 입고, 머리도 만지고, 그 사이사이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않으며 딸아이는 화장까지 한다.


슬슬 나는 화가 난다.


"밥을 먹고 학교를 가야지!!!"


내 커지는 목소리에 아들이 먼저 준비를 마치고 식탁에 앉았다.


휴대폰을 보며 밥을 먹고 있는 모습이 거슬린다.


아침부터 식사예절에 대해서 구구절절 얘기하고 싶지 않아서 그냥 꾹 참는다.


딸은 여전히 식탁으로 오지 않는다.


구운 김에 양념장과 참기름에 푹 잠긴 명란젓을 올려서 딸의 방으로 들어가니 핸드폰을 만지고 있다.


"늦었다. 늦었는데 왜 그러고 있니? 지금 핸드폰 볼 시간이 아니야."

"어떤 옷 입고 갈지 몰라서 검색해보고 있는 거야!"

"전날 준비했으면 됐잖아?"

"전날은 바빴어."

"휴.. 내가 할 말이 없다."


말문이 막히는 이야기다.


나의 화는 두 번째고 일단 딸아이의 입안으로 준비해 간 밥을 넣어 주고는 아들이 식사하는 모습을 살핀다.  


캐나다 와서 내가 아이들의 아침에 집착을 하기 시작한 것은 국립학교는 한국처럼 급식문화가 없는지라 대부분 도시락을 싸는데 책상에 앉아서 편하게 먹는 것이 아니라 밖에 나가서 정말 가볍게 간식처럼 먹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뛰어놀아야 하는 분위기라 아침을 든든히 먹여 보내고 싶은 것이 내 가장 큰 욕심이다.


등교시간 5분 전

"늦었다. 5분 전이야. 출발하자"


정신없이 아이들이 등교시키고 집에 돌아오면  아침준비로 널브러져 있는 주방과 식탁이 보인다.  나는 새벽부터 아침준비에 분주해서 정신이 없었고 아이들이 남긴 밥과 반찬을 아침으로 대신하면서


문득 엄마와 아버지가 생각이 났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압력밥솥에 밥을 안치시고 밥이 다 되면 엄마를 깨우셨던 아버지

엄마는 그 새벽에 도시락 6개를 싸고 아이들의 아침을 준비하셨다. 아버지는 정작 아침은 안 드시고 냉동실에서 전날 꺼내 놓으신 떡을 드시고 출근하셨다.


엄마가 준비하신 아침은 늘 마른김에 양념장 그리고 송송 썰어 얹어 먹는 김치로 둘둘말은 김밥이었다.


그 김밥을 교복을 입고 순서대로 학교 가는 아이들 입에 다 넣어주셨다.


"아침 먹고 가야지!"


입에 넣어주신 김밥은 정말 맛있었다.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그 맛.

문득 엄마가 입안에  넣어주셨던 김밥을 먹고 등교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것은 엄마의 사랑이었다.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지만 사랑이었다.

그것이 사랑인지 몰랐는데 내가 자식을 낳아서 키우다 보니 사랑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찐 사랑

나는 지금 엄마에게 물려받은 사랑 그대로 행동을 하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부모에게 저마다의 사랑의 언어가 존재하는 것 같다.

아버지는 자식 하는 말에 대해서 모든 말을 행동으로 보여주셨고

어머니는 음식으로 표현해 주셨다.

맛있는 음식을 차려서 가족들과 맛있게 식사를 하는 순간을 너무 좋아하셨다.

가족들이 맛있게 먹는 것을 바라보고 것


"니들이 먹는 것만 보고 있어도 배부르다."라는 말이 나는 이제 제대로 이해된다.


내 부모님이 주신 사랑의 언어를 그대로 물어 받아 나 역시 사랑을 음식으로 표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몰랐던  그 사랑의 언어들.  

엄마를 떠올리면 8할 이상이 주방에서 서 있던 뒷모습이다.


우리 세대는 저마다 다른 사랑의 언어 존재한다는 것을 잘 알지 못하는 부모에게 교육환경에서 자랐고

그래서 우리가 그 표현방식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우리가 말하는 가정교육 혹은 유전이라는 말은 대부분 가족의 생활환경을 두고 하는 말 같다.


내가 부모님에게 받은 온전한 사랑의 언어는 음식이어서 그 사랑을 알아차리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것이 너무 아쉬웠다.  부모가 되고 나서야 아이들 식사를 준비하면서 감히 그 마음을 헤아려 본다.


그리고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조금은 다양한 방식으로 혹은 직접적으로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깊은 사랑의 마음을 아이들이나 주변인들이 오해하지 않고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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