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우리 한 시간 더 자는거야, 덜 자는 거야?”
어젯밤, 신랑과 질문이 오갔다. 9월의 마지막 주 일요일, 썸머타임이 시작이다.
아직 겨울이 더 머무르려는 듯 바람은 세차지만, 그래도 한창 겨울에 비하면 비도 바람도 조금씩 누그러졌다. 그 틈새로 햇님이 더 강하게 자신의 영역을 차지하려는 듯 얼굴을 내밀어, 마른 나무들에 꽃을 피워냈다.
어제 운동하러 간 수영장에서도 봄의 기운이 느껴졌다. 한여름 방학 때나 볼 법한 긴 줄이 낮 기온이 따뜻한 덕에 생겨 있었다. 아이들과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의 즐거운 발걸음이, 아직은 살짝 쌀쌀한 공기 속에도 봄의 설렘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뉴질랜드에서 9~11월은 봄이다. 썸머타임은 이 시기에 시작해 4월 첫째 주 일요일에 끝난다. 말 그대로 ‘여름 전야제’다. 시간을 한 시간 앞당겨, 퇴근 후에도 해가 남아 있으니 사람들은 바깥활동을 조금 더 즐길 수 있다. 해가 조금 더 길어진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뉴질랜드는 이렇게 여름이 올 때가 되면 일년에 한 번 한 시간이 사라진다. 그리고 그 시간은 다시 겨울이 올때쯤 되면 다시 우리에게 되돌아 온다.
하지만 시작일 아침, 현실은 조금 다르다.
눈을 떠 시계를 보니 7시, 핸드폰과 노트북은 이미 8시를 가리키고 있다. 역시나 기계는 사람보다 더 빠르다. 집안 시계들을 부랴부랴 한 시간 앞당기고, 뒤척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니 여유 시간은 이미 한 시간이 사라졌다. 아이를 깨우고, 씻기고, 간단히 요기만 하고 집을 나섰다. 오늘 하루는 이렇게 한 시간이 사라진 채 시작되었다.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점심을 먹고 바닷가로 향했다. 오늘은 날씨까지 좋아 바닷가에도 사람들이 많았다.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까지 있었다. 봄이 오는 듯한 따사로운 풍경속에서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느낌상 3~4시가 된 것 같았는는데 시간을 보니 벌써 오후 5시. 한 시간이 사라져버린 간극이 오늘 하루는 참 크게 느껴진다.
장을 보고 집에 돌아보니 시간은 벌써 6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아직 내 배는 한시간 빠른 것에 적응하지 못한 듯 배는 고프지 않았으나, 시간이 늦으니 밥을 급하게 차려본다.
오늘 하루는 내내 유난히 빨리 흘러갔다.
누군가는 썸머타임을 ‘정부의 시간 도둑질’이라 말한다. 십년 가까이 이곳에 살면서 그동안은 딱히 느낌이 없었지만 오늘은 나도 그 느낌을 알겠다.
오늘 하루는 내내 누가 나의 한 시간을 도둑질 해간 느낌이었다.
이 도둑맞은 한 시간은 내년 4월이 되면 되찾게 된다. 그때는 나의 것을 되돌려받지만 지금보다 훨씬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를 맞이할 것이다. 신기하게도, 내것이었지만 도둑맞았다가 돌려받으면 소중함이 더 크게 느껴진다. 생각할수록 신기한 정부의 도둑질이다.
그래도 내일부터는 해가 길어진 느낌이어서 저녁시간이 더 길어질 것이다. 뉴질랜드에서는 길어진 저녁시간을 즐기기엔, 여전히 가게들은 일찍 문을 닫는다. 그럼에도 긴 저녁을 해가 질 때까지 집과 함께한 자연속에서 길어진 해를 감상하며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소중하고 특별하다. 아이들은 해가 밝은 동안 더 신나게 놀것이고, 우리는 길어진 낮시간 속에서 하루를 더 충만히 살아갈 것이다.
사라진 한 시간이 주는 아쉬움 속에서도, 봄의 햇살과 길어진 저녁빛은 또 다른 선물이 되어 마음을 채워줄 것이다. 참으로, 뉴질랜드스러운 썸머타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