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아이의 유치원에서 컬쳐데이가 열렸다. 지난주 선생님은 나에게 물었다.
“루나가 코리안 댄스를 추겠다고 하던데, 정말인가요?” 뜻밖의 말에 아이에게 물어보니, 아무렇지 않게 “응, 할래!”라고 대답했다. 문제는 단 이틀 남았다는 것. 그것도 ‘코리안 댄스’를 준비해야 했다.
그날 밤 남편과 머리를 맞댔다. 남편이 찾아낸 건, 아이들이 즐겁게 따라 부르며 춤출 수 있는 경쾌한 아이들 버전의 ‘아리랑’ 영상이었다. 슬픔과 한이 느껴지는 기존의 아리랑 대신 밝고 경쾌한 아리랑이었다. 춤을 좋아하는 아이는 금세 따라 했다. 우리는 거실에서 함께 춤을 추며 아이를 응원했다.
드디어 컬쳐데이 아침.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햄, 계란지단, 당근, 단무지, 우엉을 정성스레 말아 부지런히 김밥을 준비했다.
외국에선 일본식 스시가 더 익숙하지만, 오늘만큼은 한국식 김밥으로 한국음식을 보여주기로 했다. 유치원에 도착해 가는 길부터 각기 다른 의상을 입은 아이들과 부모들이 삼삼오오 유치원으로 향하고 있다. 유치원에는 먼저 온 부모들이 자신들이 갖고 온 음식들을 차려놓느라 바쁘고 아이들 또한 각 나라의 의상을 입고 맵시를 뽐내고 있다.
준비해 온 김을 플레이팅 하는데 몇몇 아이들이 다가오더니, ʼJapanese Sushiʼ냐고 묻는다.
“No, this is Korean Gibbap!!ʼ 나도 모르게 또박또박 힘주어 말했다.
미니 퍼레이드 시간, 한복을 입은 루나는 퍼레이드 맨 앞줄에 섰다. 일 년 사이에 쑥 자라 짧아진 치마가 조금 어색했지만, 한복을 입고 퍼레이드 앞에 선 모습은 누구보다 당당했다. 아이를 보며 주위 부모들이 "코리안 드레스!” 라며 속삭이는 소리가 들린다.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아이는 당당히 캣 워크를 선보인 후 한 바퀴 턴까지 하며 포즈를 취한다. 순간, 박수와 환호가 터졌다.
이어진 다과 시간. 각 나라의 음식들이 즐비해있지만, 음식을 가져오는 접시들에 김밥이 빠지지 않고 보였다. ‘밥이 좀 질게 된 게 영 신경이 쓰였지만 반응은 좋았다. 다들 맛있어했다.
마지막 순서는 나라별 댄스 공연.
제일 먼저 스페인 가정이 화려한 빨간 드레스를 입고 전통 무용을 선보였다. 역시 열정적인 민족다웠다.
다음은 한국차례.
준비해 둔 영상을 선생님이 보여주고 우리는 아이와 함께 앞으로 나왔다. 아이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긴장했는지 우리를 바라보았다. 결국 아이 곁에 있던 남편과 나는 아이를 바라보며 ‘아리랑’을 추기 시작했다. ‘얼쑤’하는 소리에 사람들이 손뼉 치며 같이 춤을 추고 있었다. 어느새 앞에 서있던 아이들도 같이 춤을 추었다. 아리랑이 유치원 가득 울려 퍼졌다.
예정된 공연은 스페인과 한국뿐이었지만, 분위기에 이끌려 인도, 피지, 사모아 가정이 차례로 무대에 올랐다.
유치원에 모인 가족만 해도 열 개 나라가 넘었다. 그중 뉴질랜드와 미국 가정만 전통의상이 없었다.
주객이 바뀐 듯한 풍경이었지만, 그것이야말로 지금의 뉴질랜드를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얼마 전 아이와 방문했던 오클랜드 박물관에서 봤던 통계가 떠올랐다. 이곳 인구의 40퍼센트 이상이 뉴질랜드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 온 이민자들이라고 했다. 이제 뉴질랜드는 초기 유럽에서 이주해 온 백인들의 나라라기보다, 원래 살던 원주민인 마오리족과 함께 수많은 문화가 공존하며 새로운 색을 만들어가는 다문화 국가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런 환경 속에서 이 나라에 사는 이민 2세의 아이들은 자신의 문화를 드러내는데 주저함이 없이 오히려 자신감을 갖는다.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고 자랑스러워한다. 그렇게 서로의 문화를 보여주고 공유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그런 기회들이 유치원뿐 아니라 학교와 커뮤니티에서도 많이 갖게 된다. 그날 유치원에서 나는 우리가 한국인이라는 것이 다시 한번 자랑스러웠다.
우리나라의 전통 의상이 있다는 것,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맛있는 음식과 노래, 춤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들로 전 세계 사람들이 열광하고 같이 하나 될 수 있다는 것이 말이다.
잠시 후, 친구들과 같이 사진을 찍으며 즐기는 사이, 어디선가 익숙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요즘 전 세계를 사로잡고 있는 K-POP, ‘데몬헌터스’의 노래였다. 선생님은 데몬헌터스라며 아이들을 불러 모은다. 아이들이 신나 하며 다시 모인다. 이번에는 루나가 먼저 나섰다. 아까의 수줍음은 사라지고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노래에 맞춰 아이들 틈에서 춤을 추기 시작한다.
선생님, 아이들, 할 것 없이 케이팝 노래에 우리는 하나가 되었다.
ʼ아리랑ʼ이 유치원에 울려 퍼졌고, ʼ케이팝ʼ이 그 여운을 이어받았다.
아직 글자도 완벽히 모르는 아이들이 한국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
그 광경을 보며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ʼ무엇이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이자 작은 나라의 노래에 세상을 열광하게 만드는 걸까?ʼ
그것은 우리 안에 깊이 뿌리내린 ‘정체성’ 아닐까.
밖에 나와 살아보니, 비로소 나 자신이 보였다.
내가 살아온 나라와 다른 문화 속에서 살며 서로 다른 점을 바라보니 오히려 ‘내가 가진 것’을 더 또렷이 느끼게 되었다. 비록 작고 약한 나라로 여겨지던 때가 있었지만, 그 긴 시간 속에서 우리는 결코 굴하거나 꺾이지 않았다. 무너질 때마다 다시 일어섰고, 흔들릴 때마다 더 단단해졌다.
그 힘, 그 정신으로 우리는 이제 전 세계를 흔들고 있다. 이제는 나라와 함께,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빛날 때이다. 나 역시 그 빛의 한 조각으로, 이곳 뉴질랜드에서 오늘을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