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엄마가 놀란 뉴질랜드식 무대의 힘 >
지난 주말, 아이가 다니는 댄스 아카데미의 'the - end- of- year' 댄스쇼가 열렸다. 한국을 잠시 다녀온 뒤부터 다니기 시작했으니 몇 달 되지 않았지만, 아이는 ‘Mini Move’—5세 미만 유치원생 그룹—에서 즐겁게 춤을 배우고 있었다.
이날 공연은 만 2세부터 5세까지의 미취학 아동들이 1년 동안 배운 춤을 선보이는 ‘Mini Show’와 초·중·고 학생들의 ‘Main Show’가 따로 진행되는 구성이었다. 아이에게는 생애 첫 무대였고, 나 또한 뉴질랜드에서 이런 유아 무대를 보는 건 처음이라 마음 한편에 설렘이 있었다. “아이에게 좋은 기억이 남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기대 없이 리허설에 참여했다.
사실 리허설 전까지만 해도 나는 ‘5세 이하 아이들이면 그냥 귀여운 재롱잔치겠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리허설 날, 그 생각은 완전히 무너졌다.
생각보다 크고 화려한 무대, 조명, 음악. 리허설조차 이렇게 완성도가 높은데 본 공연은 어떨까 싶은 기대감이 밀려왔다. 오프닝 무대가 시작되자 이 공연이 단지 아이들만의 무대가 아니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초·중등 언니들, 성인인 댄스 선생님들까지 모두 참여해 한 편의 뮤지컬처럼 무대를 완성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무대는 그 사이사이에 배치된 ‘감초 무대’였고, 말 그대로 프로페셔널과 이제 막 무대에 서 본 아기들까지 모두가 어우러지는 놀라운 콜라보레이션이었다.
그리고 공연 당일.
준비된 의상과 헤어, 조명, 무대장치가 더해지니 이건 이미 유료 공연 수준이었다. 실제로 학부모에게도 티켓이 판매될 정도였다.
오프닝은 ‘오즈의 마법사’를 주제로 한 뮤지컬 형식으로 꾸며졌다. 도로시와 허수아비, 로봇, 사자들이 등장하고, 각 장면 사이에 아이들 무대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4살 아이들은 귀엽고도 제법 훌륭했다. 만 2~3세 아기들 무대는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관객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무대 앞까지 나와 엄마·아빠를 찾는 아이, 움츠러든 채 움직이지 못해 결국 선생님 품에서 무대를 마치는 아이... 그 모든 장면이 아이들이 들고 나온 하트쿠션만큼이나 사랑스럽기만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틀리고, 멈추고, 서성거려도 누구도 아이를 재촉하거나 무대 밖으로 내보내지 않았다.
리허설에서도, 본 공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잘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처음 무대를 경험하고, 그 위에서 무엇이든 해보는 그 자체가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고, 그 시간을 온전히 존중해주고 있었다.
반면 언니들과 선생님들의 무대는 정말 프로페셔널했다. 그들의 실력과 작은 아이들의 사랑스러움이 한 무대에서 아름답게 섞여, 진정한 화합의 콜라보레이션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한국에서도 아이들은 많은 예체능 활동을 한다. 하지만 고학년이 되면 자연스럽게 ‘공부 vs 예체능’을 선택해야 하는 구조로 인해 하나를 내려놓게 되는 듯하다. 입시 중심의 환경 속에서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기도 하다.
그러나 뉴질랜드는 다르다.
전공자가 아니어도, 프로가 아니어도, 많은 아이들이 학업과 취미를 끝까지 함께 가져간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대신, ‘함께 가져가는 것’을 자연스럽게 배운다.
오늘 내가 본 무대는 그 시작이었다.
만 4살 아이의 첫 공연이 이렇게 모든 연령과 수준이 함께 빛나는 무대가 될 줄은 정말 상상하지 못했다.
큰 아이들은 작은 아이들의 무대에서 함께 서고, 선생님들은 큰 아이들을 받쳐주며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해 낸 이 무대는 단순한 공연을 넘어 배려, 협동, 화합, 이해, 사랑이라는 그들의 가치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장면이었다.
무대를 마치고 내려오는 딸아이의 얼굴에는 기쁨과 행복이 가득했다.
오늘의 이 경험이 아이에게 작은 언니들이 그랬듯, 언젠가 자신도 누군가의 무대를 함께 빛내주는 사람으로 자라 가는 씨앗이 되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