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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보름 Feb 04. 2024

[에필로그] 뉴질랜드에서 살래? 한국에서 살래?

완벽한 나라는 없다

 주변에 한 번도 해외여행을 가보지 않은 사람이 손에 꼽을 정도로 요즈음은 잦은 해외여행과 외국에서 한 달 살기 열풍, 그리고 SNS의 발달로 예전보다 해외이민의 장벽과 인식 또한 많이 낮아졌다. 5,60년대 혹은 7,80년대 사람들이 해외여행 다니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지 않고, 통신도 발달하지 않았을 때에는 외국으로 이민을 간다고 하면 고국을 떠나 이억만리 낯선 땅으로 간다고 울며불며 이별을 했을 것이다. (사실 나의 아빠도 내가 뉴질랜드로 시집간다고 했을 때 딸이 이억만 리로 떠난다고 눈물을 보이셨다..) 그러나 요새는 비행기 한 두 번만 타면 세계 어디든 하루 안에 갈 수 있고, 가서도 바로 편지가 아닌 영상통화로 얼굴을 보며 이야기 나눌 수 있고 해외여행도 보편화가 되면서 외국에 사는 가족을 보러 오거나 외국사는 가족들이 나올 수도 있으니 오히려 가족 중 한 명이 외국에 살고 있는 것이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사실 우리 가족만 해도 그랬다. 어렸을 적부터 새로운 것에 호기심이 많아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것도 많고 가고 싶은 곳도 많았던 나는 승무원이 되어 원하는 세계 곳곳을 다니게 되면서부터 해외에 나가 살고 싶다는 열망이 싹텄다. 영어권 국가면 어디든 좋았다. 그저 내가 살아온 곳이 아닌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부대끼며 새로운 경험들로 자극을 받으며 살고 싶었다. 그렇게 외국에 나가 살겠다는 외침을 하던 딸과는 달리 보수적이었던 나의 엄마는 그녀의 언니가 외국에 살고 있음에도 외국 나가는 걸 싫어했고 태어난 곳에서 가족들과 오손도손 함께 사는 것이 그녀의 바람이었다. 그러나 그런 나의 엄마도 딸이 외국에 나가서 살 거라고 끊임없이 외치자 반은 포기한 것인지 아님 나의 바람에 동조한 것인지 '그래, 딸 중 한 명은 외국에 살아도 좋겠다.' 하시며 내가 외국에 가서 산다고 하는 것에 대해 처음으로 긍정의 태도를 보이셨다.

 



'연애'와 '결혼'이 다르듯, '여행'과 '이민'은 완전히 다르다.


 '연애를 오래 하면 결혼해서 싸우지 않고 잘 살까? 반대로 연애를 오래 하지 않으면 결혼하고 잘 살지 못할까?'

 물론 그런 경우도 있지만, 그것이 전제조건은 아니다. 연애와 결혼은 완전히 다르며, 동거와 결혼 또한 다르다. 연애를 오래 하면 상대에 대해 많이 알아서 결혼하면 안 싸울 것 같지만, 의외로 결혼하고 나면 연애 때는 보이지 않았던 모습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결혼을 해보기 전에는 전혀 알 수 없는 것들이기에 아무리 연애를 오래 한다 해도 결혼한 후에는 달라지는 것이다. 동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는 동거가 도덕적인 관념상 보편화되어 있지 않지만 뉴질랜드등 서양권국가에서는 동거가 보편화되어 있어 결혼하지 않고 파트너로 지내는 경우가 많고 당당하게 주위에도 파트너라고 소개를 한다. 이렇게 한국이든 외국이든 결혼을 하지 않고 동거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각각의 상황에 따른 이유들이 있겠지만 결혼이라는 법적인 구속에 얽매이고 싶지 않아서 혹은 결혼 전에 서로 알아보고 싶어서인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이 자체로서 이미 '동거'와 '결혼'은 다른 것이다. 동거로 지낼 때는 서로 어떠한 법적인 구속이 없기에 서로 프리하게 지낼 수 있지만 결혼과 동시에 부부로서의 의무, 자식이 생기면 부모로서의 의무 그리고 상대 가족에 대한 의무 또한 지켜야 한다. 이민도 이와 같다고 생각한다. 여행 혹은 짧은 체험 살기에서는 그 나라에 완전히 속한 사람이 아니기에 자유롭다. 그리고 언제든지 서로 맘에 안 맞으면 헤어질 수 있는 연애처럼 살다가 아닌 것 같으면 다시 돌아가면 된다. 그렇지만 그곳의 영주권을 받고 혹은 비자를 받고 지내면서는 그 나라에 거주하는 사람으로서 의무를 다해야 하며 싫다고 해서 바로 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올 수야 있지만 집, 직장 혹은 학교, 등 모든 삶의 터전을 다시 정리하고 와야 하는 것이기에 다시 돌아오는 것도 쉬운 것이 아니다. 결혼을 하고 서로 맞지 않는다고 하여 연애 때 헤어지는 것처럼 바로 이혼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과 같다. 그에는 법적인 절차들과 의무들이 따르기 때문이다.


 세계 여러 곳곳을 다녀보고 내가 결혼 후 정착하여 살게 된 뉴질랜드에서도 이민 전에 2번의 여행과 워킹 헐리데이로 1년간 지내본 1번의 긴 경험을 통해서도 여행과 1년 살기 그리고 이민은 완전히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 미리 가서 지내봤다는 것에서 마음적 안정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곳에 정말 정착해서 삶을 처음부터 다시 일구고 새로이 시작해야 하는 이민은 정말로 완. 전. 히 다른 것이다. 여행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고, 비자문제와 거처문제, 직업문제 등 한 달 혹은 1년 살기로 왔을 때와는 전혀 다른 삶의 터를 닦아야 하는 일들이 눈앞에 닥치게 된다. 그리고 사실 그런 것들보다 가장 큰 것은 다시 돌아갈 것이 아니라 이곳에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 마음으로 인해 여행 중에는 마냥 좋게만 보였던 것들이 그저 마냥 좋게만 보이지 않는 현실적인 것들로 다가오는 것이다.


 병원 문제만 해도 그렇다. 정말 급한 응급상황이 아니라면, 여행 끝나고 한국 돌아가서 병원 가면 되기에 여행 중에는 사실 병원에 갈 일도 거의 없다. 나 역시도 여행과 워킹홀리데이로 뉴질랜드에 왔을 때는 이가 아파서 병원 가서 급하게 때워야 했던 것 말고는 병원 갈 일이 없었다. 그러나 이민 와서 살 게 되니 임신과 출산뿐 아니라 한국에서는 쉽게 치료되는 고질병이 고쳐지지 않아 병원입원 신세까지 져야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국의 의료와는 너무나도 다른 문제들을 직접 겪어야만 했다.


 집 문제도 그렇다. 여행 왔을 때는 숙소를 구하거나 지인이 있다면 지인집에서 며칠 지낼 수도 있고, 워킹홀리데이를 오거나 몇 달 살기로 온다면 그 기간 동안만 렌트를 해서 지내면 되기에 집을 크게 손상시키거나 하는 문제만 일으키지 않고 사용하다 나오면 된다. 그리고 짧게 지낼 때는 오히려 지내기 편한 타운하우스나 아파트를 선호하는데 그런 공동주택은 직접 관리할 일이 없어서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민 와서는 아무래도 시티나 학교중심이 아닌 지역에 살게 되는데 그런 곳은 주택이 대부분이어서 주택에서 많이 지내게  되는데, 주택에 살면서는 집 안 밖을 유지, 보수하는 문제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리고 그런 유지 비용들이 사람을 써서 할 경우에는 시간과 돈이 많이 들기에 내 집이 생기고부터는 내가 집 보수를 큰 것이 아니면 웬만한 것은 직접 해야 한다.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 한국에서는 대부분 아파트 생활을 많이 하기에 이것 또한 처음 맞닦으려서는 하나하나 손수 해결해 가야 할 문제들이다. 집 안팎 페이팅, 잔디 깎기, 자잘한 집 유지보수, 플러밍 등은 아는 사람에게 물어물어 직접 부딪히며 하게 된다.


 그리고 가장 큰 것은 비자 문제이다. 이민을 오려면 장기적으로 거주해야 하기에 학생비자 혹은 여행비자가 아닌 취업비자, 혹은 워킹비자로 와서 일을 하며 지내다 영주권을 받아야 하는데 이 과정이 어느 나라든 결코 쉽지가 않기 때문이다. 영주권을 받으면 영주권자로서 혜택들이 주어져 그나마 살기가 낫지만 영주권을 받기까지가 많은 사람들이 시도하다 버티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기도 하는 험난한 과정이다. 나는 너무 감사하게도 이미 영주권자인 신랑을 통해 결혼 후 몇 년 있다 영주권을 받을 수 있었지만 어학연수를 하러 왔다 유학까지 하고 그곳에서 일하며 스스로 영주권을 받아야 했던 신랑은 그 과정이 너무 힘들어서 그 당시 시부모님의 경제적 서포트가 있었음에도 포기하고 오고 싶을 정도로 힘든 과정이었다고 말하곤 한다.


 



 어디든 완벽한 나라는 없다.


 '완벽한 사람이 없든 완벽한 나라는 없다'라고 생각한다. 사람도 바꿔 쓸 수 없듯, 나라는 더더욱 바뀌지 않기에(바뀔 수야 있지만 사람보다 더 그 변화가 더디기에) 내가 결혼하면 상대에 맞춰 살아가야 하듯, 나라 또한 내가 사는 나라에 내가 맞춰 살아야 한다. 이민의 이유는 각자의 사정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성인이 되어 이민을 결정하는 데는 지금 사는 내 나라의 어떤 부분이 나와 맞지 않아서 혹은 지금의 나라보다 좀 더 나은 환경을 위해서 일 것이다. 그러나 분명 내가 지금 나의 나라에서 맞지 않다고 느꼈던 부분 이외에 혹은 내가 생각하기에 더 나은 부분이라 여겼던 것들 이외에 다른 부분에서는 또 무언가가 충족되지 않는 내가 또다시 맞춰야 하는 부분들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그 점까지 감안하고 이민을 선택하는 것이 신중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결혼생활도 모든 조건이 마냥 좋을 때만 같이 사는 것이 아니기에 맘이 상하고 경제적으로 안 좋거나 몸이 안 좋거나 상대가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내가 사랑으로 그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지를 봐야 힘든 상황이 와도 이겨낼 수 있듯이, 이민생활 또한 마냥 좋은 면만이 아닌 경제적,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든 상황이 왔을 때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지 백업플랜을 생각해 두고 그럴 상황에 대비해서 할 수 있는 한 준비를 많이 해야 한다. 그렇게 준비를 한다 하더라도 막상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하나둘씩 터지고 도움받을 곳이 없으면 서러워지고 고향생각나는 것이 타향살이이다. 내 집 떠나 남의 집에만 며칠 있어도 눈치 보이고 서러울 수 있는데 하물며 나의 나라를 떠나 남의 나라에서 산다는 것이 어찌 서럽고 외롭지 않을 수 있을까?




 ' 이민이라는 것은 단순히 사는 곳과 언어만 다른 곳에 적응해서 사는 그런 단순한 것이 아닌 그 나라의 문화와 삶의 방식까지 몸에 익혀 그들의 문화에 흡수되어 살아가야 하는 그래야만 탈이 나지 않는 어쩌면 여태 살아온 삶의 방식과 패턴, 의식체계까지 모조리 바꾸어야만 하는 그런 어렵고도 힘든 과정이었다. '

(https://brunch.co.kr/brunchbook/realnzpart1 저자의 브런치 북 '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뉴질랜드 이민' 중) 


 지금 나의 글을 읽는 이 순간에도 이민을 준비하거나 꿈꾸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내가 이 글을 쓴 이유는 내가 직접 겪은 이민의 경험들을 공유하고 싶었고 나도 그랬지만 마냥 좋은 것만을 보고 내가 꿈꾸던 삶만을 생각하며 가기 전부터 구름 위를 둥둥 떠서 가는 이민이 아닌 환상과 구름이 걷힌 상태에서의 그곳의 제대로 된 민낯을 보고 마음적, 물리적 준비를 하며 이민에 대해 조금 더 이성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다. 나 또한 나의 좋은 점과 내가 좋아하지 않는 그림자에 해당하는 면이 있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 또한 드러나는 좋은 면 뒤에 드러나지 않는 면들이 있듯 내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나라 또한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눈에 보이는 좋은 모습들 뒤에 그곳에 살아야만 보고 알 수 있는 마치 뒷골목의 스산하면서도 감춰진 면들이 이 세상 어디에나 존재한다. 그것들을 깨닫고 '나머지는 내가 적응하며 맞춰 살아야 한다.'는 말로는 쉽지만 행동으로 옮기기에는 쉽지만은 않은 양극의 진리를 알고 가는 것이 도움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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