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들어 가는 나를 바라보며...

내가 글을 쓰는 이유.

by 예쁜손

지인에게 연락이 왔다. 오랜 세월 나의 히스토리를 아는 그녀는 요즘의 내 글에서 -내가 이제는 나만의 동굴에서 빠져나온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고 이야기를 해준다. 글에 자기 연민 대신 그 자리에 치유와 내면의 힘이 느껴진다는 그녀의 이야기가 참으로 반가웠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덧붙여 말했다. 글의 힘이 놀랍다고...

그녀는 나의 오래된 지인이자 페이스북의 친구인데 페북에 올린 짤막한 내 글을 읽고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해보라고 권유했던 친구이다. 나의 고난과 아픔을 옆에서 지켜보았던 그녀. 나도 믿지 못했던 나의 내면의 힘을 그녀는 믿어 주었다. 여리고 쉽게 부서질 것 같은, 아슬아슬 외줄 타기를 하는 내게 그 믿음은 힘이 되었다.

나를 따라다니는 온갖 부정적이고 어두운 수식어들이 한 편 한 편 써내려 갈 때마다 -나를 바라보는 내 시선이 객관화되면서 -상처가 아물어 갔다. 상처는 안에 있을 때는 곪아 터져 악취를 풍기지만 밖으로 나온 상처는 더 이상 상처가 아니다. 어둠은 이미 세상 밖으로 나오면 힘을 잃는다.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미움도 원망도 사라졌다.

암이란 육체적 질병도, 지독한 마음의 감기 우울증도, 이혼의 상처도 이제는 지나간 이야기로 나의 과거였음을 고백한다.


난 지질한 마이너라고 스스로를 몰아세웠던 내가 이제는 나와 같은 아픔을 겪은 사람들에게 힘이 되는 따뜻한 글을 쓰고 싶다는 꿈을 가져본다. 꼭 작가가 못되더라도 한 사람에게라도 울림을 주고 힘이 되는 글을 쓸 수 있다면 -그건 내게 축복이 될 것이다. 받은 축복을 누리고 나누는 삶을 살고 싶다고 이 아침 조용히 기도해본다.


배롱나무의 백일홍이 만발한 정원을 바라본다. 짙은 초록빛 나뭇잎 사이에 분홍빛 백일홍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명희 씨가 주문한 커피를 내 앞에 내려놓으며 창밖의 꽃들을 가리키며 웃는다. 고운 웃음에 여름 향기가 난다. 그렇게 우리들의 푸른 여름이 잘 여물어간다.



젊은 날은 그 자체로 빛이 난다. 내게도 그런 빛나는 시절이 있었다. 오만과 편견이 넘치는 시기였음에도 충분히 눈부시고 아름다웠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실패조차 루하지 않았다. 그때는 청춘의 눈부신 아름다움을 왜 몰랐을까...


지나간 시절을 돌아본다. 거침없이 세상을 향해 직진하던 교만하고 자존심만 앞세우던 내가 보인다. 청춘의 아름다움은 없지만 나는 현재 나의 모습이 좋다. 시련이, 좌절이 없었더라면 내가 과연 상처 받은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을까. 신은 고난을 주심으로 나에게 성숙이란 큰 상을 주셨음을 고백한다. 내게 고난은 유익이었다.

아주 오래전 내게도 꿈이 있었다. 불행한 결혼 생활은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고 감히 꿈조차 꿀 수 없을 만큼 자존감은 바닥을 쳤다. 나는 삼십 년 가까이 펜을 잡을 수 없었다. 숨만 붙어있는 허깨비 같은 삶이 나의 무대였고 나는 그곳에서 꼭두각시처럼 춤을 추었다.


글쓰기를 다시 시작하면서 나는 내가 반짝이는 소중한 존재임을 깨달았다. 사랑하는 법. 스스로를 아끼는 법도 배웠다. 잃어버린 꿈을 다시 찾았고, 과거의 아픔과 회한은 더 이상 나를 무너뜨릴 수 없었다. 빛은 어둠을 몰아내고 내게 다시 앞으로 걸으라 한다. 삶에서 진정 소중한 가치를 알아가니 이제야 무엇이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겠다.



비로소 뒤늦게 철들어가는 나에게 소원이 하나 생겼다. 처음 펜을 다시 잡을 때는 작가가 되고 싶은 것이 먼저였다. 부끄럽게도 나는 지속적으로 무언가를 향해 달려가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제는 작가라는 타이틀보다 내 인생에서 나를 설레게 하는 것을 향해 완주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게 든다. 계속 걷는 것. 덧붙여 진심을 담은- 나와 같이 소외되고 아픈 사람들에게 "나도 할 수 있을 거야." 하는 용기를 줄 수 있는 -그런 따뜻한 글을 쓰고 싶다.

나는 이제 나만 아프다고 생각하던 동굴에서 나왔다. 다양한 형태의 고통과 불행한 삶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나는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안아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나의 글은 유려하지 않고 깊이도 없는 평범한 글이다. 하지만 마음과 영혼이 담긴 글을 쓰는 것이 앞으로 남은 삶에 있어- 최대 희망사항이다. 구비구비 험한 인생길을 걷다 만난- 물 한잔 건내주는 이웃같은 사람. 내가 힘든 길을 걸을 때 내게 위로가 되었던 사람을 떠올리며 나도 그런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감히 소원해 본다.


2021년 어느 여름날의 다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