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에 아들의 톡을 받았다. 다음 주 이동할 현장이 내가 사는 근처의 학교라서-1주일간 나와 함께 머문다는 기쁜 소식을 알려준다. 건설현장에서 근무하는 아들이 마지막으로 집을 방문한 것은 3주 전이다. 아들이 자취하는 곳이 경기도 외곽이라 나의 집과는 2시간 이상 소요된다. 고단한 육체적 노동을 하는 아들에게 당분간 집에 오지 말라고, 그 시간에 쉬라고 했었는데... 말로는 엄마는 괜찮다고 네 몸만 챙기라고 노래를 불렀는데, 아들이랑 일주일을 함께 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한껏 부풀어 오르고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아들의 반려견 마루와도 알콩달콩 1주일을 보낸다 생각하니 엔도르핀이 마구 샘솟는다. 마루는 올해 7월에 딱 1년이 된 강아지이다. 아들을 닮아 순하고 사람들을 좋아하는, 사회성 갑인 호기심 덩어리이다. 새벽부터 출근하는 아들을 늦게까지 기다리며 외롭고 힘들었을 마루를-나와 있는 동안 마음껏 보듬어 주어야겠다.
마음이 분주해졌다. 천방지축 호기심 가득한 마루를 위해 대청소도 해놔야 되고, 미리 기본 반찬거리는 장만해 둬야 아들이 오면 집밥을 실컷 먹일 수 있을 텐데... 마음만 동분서주 바쁘다.
천국의 문을 연다. 지옥 같은 불볕더위에 뜨거워진 내 몸의 열기를 시원한 카페의 냉기가 빠르게 식힌다. 나의 집필실이자 아지트, 명희 씨 카페에 들어서며 아들이랑 동거할 일주일에 대한 소식을 전한다. 사람 좋은, 내 친구 명희 씨가 같이 기뻐해 준다. 늘 외로운 건 맞지만 그럴 때마다 "어차피 인생은 혼자 왔다 혼자 가는 거야. " 하며 스스로를 달래 왔다. 그런 자기 암시 때문인지 아니면 혼자 있는 생활에 익숙해진 탓인지 요즘에는 제법 마음의 부침 없이 잘 지내고 있는데-그래도 애들이 와서 일주일 머문다니 가슴이 행복한 기대감으로 부푼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명희 씨에게 여름철 간단하면서도 만들기 쉬운 보양식 몇 가지를 묻는다. 부실한 인스턴트 음식에 길들여져 있을 아들에게 엄마의 손맛 가득한 맛있는 음식을 해주고 싶어 지인들에게 부지런히 물어 간단하게 레시피를 작성해 본다.
여름휴가 갈 여유는- 코로나 유행 상황이나 가벼운 주머니 상황 모두 고려하여 -없지만 휴가가 별건가. 좋은 사람, 사랑하는 사람과 맛난 거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 꽃을 피우는 것으로 나는 대만족이다. 바다와 숲이 그리워지면 여느 때처럼 명희 씨 카페의 창가에 앉아 꿈을 꾸다 보면 어느새 내 안이 푸른 초록빛으로 가득 차오르고 몸은 날개를 단 듯 자유롭게 낯선 땅을 유영하게 된다.
점심으로 동네에 허름하지만, 맛만은 깔끔하고 담백한 김밥 한 줄을 사서 집으로 향한다. 달궈진 지면 위로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구성진 매미 소리가 허공을 가르는 한 여름날이 그렇게 달아오른다. 이어폰 사이로 흥겨운 빈지노의 '아쿠아 맨'이 흘러나온다. 이 순간 떠오르는 말.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더위야 물러가라!" 중얼대며 신나게 리듬을 탄다. 어깨를 으쓱거리며 손을 뻗고 스텝을 가볍게 밟는다. 자유로운 힙합 아줌마가 태양 속을 뚫고 날아간다.
속이 유부로 꽉 찬 별미 김밥을 뚝딱 해치우고 마루의 눈높이에 맞춰 집안의 살림을 정리한다. 그 녀석의 레이더망에 걸릴만한 자잘한 물건들을 추려 높은 곳으로 옮겨 놓고 집안의 구석의 먼지를 닦는다. 빨래하기 좋은 날이다. 아들이 덮을 여름 이불과 베개를 빨고 기분 좋게 빨래 건조대에 빨래를 널어놓는다. 이마에 땀은 흐르지만 아들이 덮을 기분 좋은 촉감의 새 이불을 떠올리니 마음만은 뽀송뽀송한 가을 하늘 구름 같다.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것은 마치 소풍 가기 전날 맑은 내일을 기다리는 설렘같이 두근댄다. 큰일이다. 아들과 마루가 오려면 이틀이나 남았는데, 막상 기다리려니 눈앞에 아른아른한 것이 시간이 더디 갈 것 같다. 기다리던 내 새끼들 오면 맘껏 따뜻하게 품어 주고 지친 몸을 편히 누이고 기댈 수 있는 얕은 언덕이 되어줘야겠다.
짭조름하고 달큰한 장조림이 불 위에서 빛깔 고운 옷을 입고, 달달 볶은 호두 멸치 볶음이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한다.
도시의 불빛이 별이 되어 반짝이는 밤. 기분 좋은 고단함이 나를 감싼다. 잘 마른 까슬한 이부자리에 누워 그리운 아들과 마루를 떠올리며 잠이 든다.
(빈지노의 아쿠아 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