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로 흐르는 사랑

언제나 네게 그늘이 되어 주고 싶다.

by 예쁜손

아들이 며칠 전 차 사고가 크게 난 모양이다. 차선을 변경하다 옆에 차량이랑 부딪쳤는데, 범퍼가 다 떨어져 나갔다고 한다. 내가 걱정할까 봐 일 수습이 다 끝난 뒤 이야기를 했다. 다행히 몸이 상하지 않아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아들이 지금 하는 일이 타일 기술을 배우는 일이라 육체적으로 많이 고단하고, 이곳저곳을 이동해야 하기에 운전하는 시간이 많아-에미 맘으로는 항상 아들에 대한 걱정으로 마음이 편할 날이 없다. 눈을 뜨면 자연스레 아들의 안전을 위해 기도한다. 털끝 하나라도 상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더위에 온열질환이라도 혹 걸릴까 이 뜨거운 계절이 원망스럽다.


아들은 큰일이 생기면 내색하거나 내게 말하지 않는다. 한참 후에 일이 수습이 되었을 때 지나가는 말로 담담하게 말하던가 아니면 대개의 경우는 내가 먼저 알아채는 경우가 많다. 사려 깊고 언행이 진중한 편이다. 엄살 부리지 않고 속정 깊은 아들이 나는 가끔 안쓰럽다. 아들이 일찍 철이 든 것이 다행이라 여기면서도 일찍 세상의 무게를 감당하는 그의 무거운 어깨가 나의 마음을 한없이 아프게 한다. 그것은 아들이 어린 시절부터 부모의 불화와 이혼을 지켜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며칠 째 깊은 새벽, 가장 어둠이 짙을 때 깨어서 아침 동트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한동안 5,6시간은 숙면을 취했는데 요즘 날씨가 무더워서 그런지 아니면 잡생각이 많아져서 그런지 깊은 잠을 자기 힘들다. 다섯 시가 넘었다. 이 시간이면 아들이 현장으로 일을 나가는 시간이다. 제시간에 일어나려고 알람을 세, 네 개 맞춰 놓고 잔다는 말이 생각난다. '모닝콜이라도 해줘야 되는 건 아닌지...'

평생 쓸 수 있는 기술을 배워야겠다고 회사를 나온 지 7개월이 되었다. 타일 일과 목수 일을 알아보다 타일 일을 선택했다. 아직 초보라 힘을 쓰는 허드레 일이 아이의 주 업무다. 그런 기술직 수업은 예전의 도제식 수업에서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기술을 차근차근 배울 수 있는 환경보다는 막일을 하는 사이사이 어깨너머로 기술을 습득해야 하는데, 그 과정이 만만치 않으가 보다. 서른의 건장한 청년이지만 몇십 킬로짜리 돌 포대를 나르는 일은 쉽지 않다. 더욱이 이 폭염 중에 마스크를 쓰고 중노동을 하는 아들, 그의 삶을 언제나 응원하면서도 마음은 항상 무거운 돌 하나 올려져 있는 듯 아프다.



이혼을 하면서 가장 가슴 아팠던 것은 아들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세상의 편견 어린 시선이나 수군거림은 두렵지 않았다. 어느 누구도 타인의 삶에 대해 왈가왈부할 권한은 없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살았고 나 또한 다른 이의 삶에 함부로 끼어들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런 나의 당당함도- 아이 앞에 서면 -사라지고 늘 죄인이 되었다. 남편과 나의 아이를 위한 최선은 결국은 우리의 이기심과 변명일 뿐이었다. 아들이 스물둘 되던 해에 우린 헤어졌고 항상 엄마 인생을 살라던 아들은 해군으로 자원입대를 했다.


이혼을 하면 마음이 홀가분할 것 같았는데... 그 자유 위로 인생의 덧없음과 허무가 날 찾아왔고 시도 때도 없이 나를 흔들어댔다. 내게 삶은 언제나 잔인했고 우울과 불안은 나를 삼켰지만, 아들에게만은 항상 건강하고 밝은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려 기를 쓰고 버텼다. 아이한테 내가 짐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모든 것이 정지된 듯한 한여름의 풍경위로 낡은 선풍기가 후덥지근한 바람을 내뿜으며 돌고 있다. 늦은 오후. 물에 만 밥에 오이지를 반찬으로 허기를 달래고 미뤄뒀던 집안일을 한다. 이마에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리고 등줄기가 축축하게 젖어 온다. 새벽부터 이 더위와 고단한 씨름을 할 아들을 생각하니 흐르는 땀을 닦는 것도, 선풍기 앞에 있는 것도 사치같이 여겨진다.

길고 긴 오후가 더디게 가고 아들의 하루가 끝날 무렵 아들에게 전화를 한다. "많이 덥지? 몸은 괜찮니? 사고 후유증은 없는 것 같니?"하고 빠르게 묻는다. "저 괜찮아요. 멀쩡해요. 걱정 마세요. 에이, 엄마 걱정할까 봐 이야기 안 하려고 했는데... 그리고 일도 괜찮아요. 저 버티기는 자신 있어요."하고 껄껄 웃는다. 밝고 그늘 없는 목소리에 비로소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는다.



깊은 밤. 열린 창으로 간간히 바람이 불어온다. 이 시간 아들은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깊은 단잠을 잘 것이다. 나는 오늘도 잠들기 전 무릎을 꿇고 아들의 건강과 안전 그리고 행복을 위해 기도한다. 나의 눈물의 기도가 땅에 떨어져서 싹을 틔우고 언젠가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될 것을 믿는다.


세상의 기준으로는 아무것도 내세울 것 없는 이름 없는 청년이지만 내게는 이 세상 어느 귀한 것보다 더 귀하고 아름다운 보물이다. 사랑은 대상의 존재 자체로 충분할 뿐이다. 그렇다고 나의 애끓는 사랑을 아이에게 알려 부담을 주고 싶지는 않다. 내가 나의 부모로부터 내리사랑을 받았듯이 나도 이 아이에게 받은 사랑을 흘러 보내고 싶다. 그 넘치는 사랑으로 아이가 상처를 회복하고 큰 강으로, 큰 바다로 나갈 수 있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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