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질리지 않아? 체리가 그렇게 맛있수? 또 드시고 싶은 건 없어요? "하며 메모지에 엄마에게 가져다 드릴 필요한 것들을 부지런히 적는다. 2년 전부터 요양원에서 생활하시는 엄마에게 동생과 나는 번갈아 1,2주에 한 번씩 엄마의 간식과 필요한 생활용품, 영양제 등을 챙겨 방문한다. 코로나 유행 상황이라 면회가 안 되는 탓에 2년 가까이 엄마의 모습을 직접 뵌 적은 없다.
처음 잠깐은 서로가 애절한 마음에 많이 힘들어했지만- 사람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 동물인지라 견딜 수 있는 그리움만을 남기고 -이내 각자의 삶 속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엄마의 고립감과 자식에 대한 그리움은- 같은 방 비슷한 처지의 할머니들과의 친밀한 교제로 조금씩 무뎌져 갔고, 혼자 남겨진 나역시 시간이 흐를수록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과 슬픔은 사그라지고 그 자리엔 질기게 살고 싶은 본능만이 남아 나를 일으켜 세웠다.
엄마는 전형적인 -자식들에게 아낌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주는- 희생과 헌신의 삶을 살아오신 분이다.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엄마에게 사랑한다는 말은 들어 보지 못했지만 그녀의 가시고기 같은 삶을 통해 나는 그녀의 사랑을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녀의 자식에 대한 사랑의 몸짓은 질기고 강했다. 그 자기애가 빠진 무한의 내리사랑은 나로 하여금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수없이 다짐하게 했다.
스스로는 거동을 못하시는 요즘 엄마의 호사는오로지 미각이 누리는 호사이다. 여든일곱- 움직이지 못하는- 노인의 유일한 즐거움은 자식들이 챙겨 오는 음식의 가짓수와 다양한 맛을 통해 당신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확인하는 일이다.깊은 세월은 -자식에게 조차 부탁하는 것을 지극히 꺼려하시던 엄마도- 어린아이처럼 사랑을 갈구하고 확인하고 싶은 본능만 남게 하였다.
처음엔 그런 모습의 엄마가 솔직히 낯설고 가슴 아펐지만 누구나 나이 드는 과정임을... 엄마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고부터는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동네에서 젤 품질 좋고 맛있는 과일가게가 집에서 15분 거리의 지하철 옆에 위치하고 있다. 더욱이 가격도 착한 편이라 종종 이용한다. 보통은 만원 이상이면 배달을 해줘서 전화 주문을 하는데, 오늘은 엄마한테 가져다 드릴 과일을 직접 눈으로 보고 고르기 위해 집을 나섰다. 오전이지만 바람 한점 불지 않는 맑은 여름날이라 살갗이 타는 듯 아렸다. 먼저 엄마가 젤 좋아하는 체리를 이리저리 살펴 싱싱한 것으로 고르고 오늘의 추천 과일이라고 적힌 황도를 눈앞에 두고 열심히 신선도와 당도, 가격을 저울질하며 고심하다 장바구니에 넣었다. 작년 여름에 퇴사하고 간간히 아르바이트하는 형편이라 좋아하는 과일도 맘 놓고 못 먹지만 오늘은 지갑을 활짝 열었다.
과일 가게에서 나와 집 방향으로 5분쯤 걸어가면 엄마가 좋아하는 단팥빵이 맛있는 미니 빵집이 보인다. 단팥빵도 장바구니에 담고 근처 단골 정육점에서 불고기감을 구입해 잠깐 쉬어 갈 요량으로 명희 씨 카페에 들렀다. 손수건으로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원하게 들이켜니 비로소 정신이 번쩍 들고 잠이 깬다.
엄마의 체리에 대한 각별한 사랑이 시작된 것은 6월 초쯤인 것 같다. 서양 버찌라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설명을 한 뒤 요양원에 갖다 드렸었다. 체리는 그때 처음으로 맛을 보셨다. 나는 오랜 시절 부끄럽게도 엄마가 과일을 좋아하신다는 것도 몰랐다. 자식들 앞에서는 항상 싫다고, 생각 없다고 자식들 앞으로 밀어놓기 바쁘셨고 나는 무심하고 미련하게도 엄마의 그 말을 믿었다.
말캉한 붉은 과육의 상큼함이 노년기의 잃어버린 미각을 소생시켰을까? 매일 입맛이 없다고 죽만 드시던 분이 체리 덕에 입맛이 살아났다고 좋아하셨고 그 후 두 딸은 일주일에 한 번씩 체리를 빠짐없이 엄마에게 공수해 드렸다.
오전에 장을 본 체리를 베이킹소다 푼 물에 담갔다 흐르는 물에 여러 번 씻고 물기를 빼서 1회용 용기에 담고 황도는 껍질을 벗겨 드시기 좋은 크기로 휴대용 그릇에 담고 갈치속젓과 불고기도 쇼핑백에 담아 요양원으로 출발한다. 한낮의 찌는 듯한 더위는 도시를 잠시 정지시킨 듯 느린 그림으로 천천히 움직인다. 요양원 입구에 도착해 물건을 전하고 나오니 채 5분이 안되었다. 허무함이 아주 잠시 밀려왔다.
"중복인데, 식사 메뉴가 뭐예요?" 하는 나의 물음에 오늘 점심으로 백숙을 드셨다며 후식으로 체리와 복숭아를 드셨다고 좋아하신다. "엄마, 단팥빵 금방 변해요. 오늘 드세요. " 하니 알겠다고 애썼다고 고맙다 하시며 웃으신다. "엄마 근데 담주는 무슨 과일 드시고 싶어요? "하니 조금의 망설임 없이 "난 체리가 상큼해서 좋다. 너는 더 사 오지 마라. 비싸지?..."하고 말끝을 흐리신다. "네가 돈을 쓰는 것은 안타깝다."
나는 지금의 엄마가 예전의 엄마보다 훨씬 좋다. 갖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거 자식들에게 표현하는 엄마가 앞으로 얼마나 살아계실지 모르지만 자식들이 엄마가 돌아가신 후 후회하지 않도록 기회를 주시는 것 같아 감사하다. 날마다 알아가는 엄마의 입맛이 신기하고 즐겁다.
동향집이라 늦은 오후엔 저무는 해가 주방 창쪽으로 볕이 따갑게 길게 드리워진다. 며칠 째 더위로 잠을 이루진 못한 내가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다 깨기를 수차례 반복하다 시계를 보니 아들이 퇴근할 무렵이다. 전화를 만지작 거리다 그만 제자리에 둔다. 흉보다 닮는다 했던가. 자식에게 때론 사랑의 표현도 부담이 될 수 있음을 이제야 알 것 같다. 엄마는 이제는 자식들의 도움이 필요한 노년기를 보내며, 아들은 적당한 무관심과 거리가 필요한 어른이라는 사실을 항상 기억해야 될 것이다.
"왜 이렇게 체리를 많이 보냈어? 네 거는 안 남겼니?"하고 물으신다. 엄마 나 체리 별로야. 엄마 많이 드세요." 능숙하게 거짓말을 한다. 가끔 집에 온 아들에게 고기를 구워주며 엄마는 고기가 싫다고 하며 아들의 접시에 고기를 밀어 넣는다.
엄마란 사람은 자식들에게 거짓말 선수로 타고났나 보다. 이 담에 아들도 자기 자식들에게 어떤 거짓말을 할까. 분명한 것은 자식들을 위한 사랑과 배려의 거짓말을 할 것임은 분명하다.
그 내리사랑이 흘러 흘러 아름다운 부모 자식 간의 돈독한 애정과 신뢰를 만들 거라고 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