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시쯤 잠자리에 들었다. 요즘은 환절기라 그런지 쉽게 지치고 쉽게 피곤해진다.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고 하지만 유난히 가을을 타는 내게는 스치는 바람 한줄기에도 가슴이 시리고 아프다. 하루 종일 행복한 기분을 느끼고 싶어 듣던 엘가의 '사랑의 인사'의 무한 반복도 끝내고 집안의 불빛을 껐다. 가만히 천장을 바라보니 희미한 전등갓이 어슴프레 눈에 들어온다. 어둠에 익숙해진 눈을 감고 숫자를 세다-휴대폰에서 울리는 알림음에- 화들짝 놀라 시간을 보니 11시 30분이다.
"이모, 낼 브리치즈 파스타가 점심 메뉴야. 12시 30분까지 와." 조카가 보낸 톡의 내용이다. 한밤중에 누굴까 하고 약간은 신경질적인 반응으로 휴대폰을 집어 들던 내가 조카의 톡에 빙그레 웃는다.
다시 눈을 감고 잠을 청해 본다. 한참을 뒤척이다 잠이 들었나 보다. 눈을 떠서 휴대폰에 손을 뻗어 집어 들고 시간을 보니 3시간이 흘렀다. 불면증이 있는 나는 깊은 잠을 못 자고 자주 깬다. 이렇게 부족한 잠들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몰아서 깊게 잔다. 그 덕에 그나마 한주의 일상생활을 큰 무리 없이 할 수 있는 까닭이 아닐까.
캄캄한 밤에 잠 못 이루는 일은 참으로 고역이다. 자칫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질 때는 뜬 눈으로 동트는 모습을 지켜볼 때 가 있다. 오늘은 다행히 토막잠이라도 여러 번 잤으니 그리 낮에 힘들지 않을 것이다.
나의 조카 유주는 고2 과정 1학기를 마치고 자퇴를 하였다.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고 친구도 많은 아이의 느닷없는 결정에 가족들은 크게 당황했지만-아이의 확고한 결심에 아이의 의견을 존중해주었다. 중간 성적인 내신에 대한 불안과 조급함이 조카로 하여금 그런 결정을 내리게 했을 거라고 조심스레 추측해 보지만, 이모인 나는 조카를 믿어주고 응원할 뿐. 이모로서 아무 도움이 못돼서 가슴만 짠하다.
집에서 공부하는 유주는 하루의 한 끼는 스스로 특별한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는다. 주로 점심 식사를 그렇게 해결하는 조카는 가끔 나를 불러 같이 별식을 만들어 먹고 맛에 대한 솔직한 평가를 듣기 좋아한다. 오늘은 브리치즈와 토마토, 바질을 올리브 오일과 그 밖의 향신료와 다진 마늘로 버무린 브리치즈 파스타를 준비했다.
담백한 브리치즈와 새콤한 토마토의 톡톡 튀는 식감이 올리브 향과 어우러져 입안 가득 상큼함을 선사한다. 조카 덕에 지중해식 건강한 음식을 경험하니-어느새 훌쩍 커버린 코흘리개 조카가 대견하여 조카의 눈을 마주 보고 엄지 손가락을 추켜 세웠다.
가방 속에 조카에게 선물로 주려고 사온 쿠기를 꺼내 조카에게 건넨다. 식후 디저트로 나는 커피를, 조카는 우유와 쿠키를 먹으며 점심 식사에 대한 솔직한 식후 품평이 평소처럼 이어진다. 조카는 가감 없는 요리에 대한 세밀한 지적을 좋아한다. 그런 대화를 노트북에 기록해서 저장해 놓는 것이 식후 간식시간에 이루어진다. 미각은 타고나지 않았으나 이모인 내가 느끼기에는 손재주가 탁월해 플레이팅을 감각 있게 해내는 조카다.
미래 진학하고 싶어 하는 학과가 왠지 이 아이와 맞지 않을 수 있겠다 싶어 조심스레 다른 진로의 가능성도 염두에 두라 조언하니 신중한 조카가 고개를 끄덕인다.
거실 깊숙이 드리워진 볕이 포근하다.창밖의 단풍나무가 붉게 선홍 빛으로 타오른다. 물끄러미 황홀하게 빛나는 가을을 바라본다. 가슴 깊은 곳을 울리는 처연한 아름다움이 나를 사로잡는다. 눈을 들어 하늘을 그리고 먼 산을 바라본다. 지금의 나의 방황이, 잠시의 멈춤이 어쩌면 더 높이 비상하려 호흡을 가다듬는 쉼의 시간은 아닐까. 겨울로 가는 길은 소멸과 죽음으로 가는 길이 아닌 새 생명을 품는 잉태의 시간, 희망의 시간임을 나는 어쩌면 지난 세월을 통해 이미 잘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집으로 돌아와 어둠이 깔린 집안에 불을 환히 밝힌다. 며칠 전친구 영주가 갖다 준 원두를 드립퍼에 내린다. 불면증 때문에 커피를 오후엔 마시지 않지만 가끔 하루를 마감하는 저녁에 커피를 마시고 싶을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친구의 센스 있는 디카페인 원두가 요즘 저녁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나의 친구다. 은은히 퍼지는 커피 향이 좋아 기분까지 상쾌해진다.
열여덟 소녀인 조카의 방황을 보며 나의 과거 그맘때를 떠올려본다. 내 나이 벌써 오십 중반이지만 여전히 방황하고 좌절하는 삶의 중심부에 있으니 삶 자체가 흔들림의 연속인 것 같다. '이프니깐 청춘이다 '라는 김난도 교수의 말이 떠오르며-마음은 늙지 않는다는 그래서 슬프다는 어르신들의 말씀이 가슴에 와닿는다.
나는 안다. 내가 아무리 조카를 사랑한다 해도 그 아이의 인생을 대신해줄 수 없는 것을... 우리네 인생은 크나큰 우주 안에 흔들리는 풀 한 포기 같은 것. 바람과 비바람에 몸을 맡기며 춤을 추듯 살아가는 것이 인생임을 어린 조카도 언젠가는 깨달을 것이다.
나는 오늘도 기도한다. 우리의 아이들이, 우리의 다음 세대들이 아프고 시린 삶의 여정을 잘 극복하고 잘 이겨낼 수 있기를... 그리고 여전히 아프고 흔들리는 내게도 평안한 쉼의 시간이 주어지기를 눈을 감고 손을 모아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