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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손 Mar 21. 2021

신데렐라의 하루

 일치감치 가방을 메고 명희 씨 카페에 갔다. 어제 쓰다가 중간에 막힌 글을 오늘은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에 서둘러 집에서 나왔다. 내가 카페의 첫 손님이다. 언제나 그렇듯 항상 앉는 자리에 앉아 심호흡부터 크게 가다듬고 막힌 부분을 시원하게 뚫어줄 실마리를 찾으려 첫 문장부터 소리 내어 읽으며 -문맥이 맞는지 흐름은 자연스러운지-다음  글의 상황을 떠올려 본다.

 생각이 안 나서 진도가 안 나갈 때 내가 쓰는 방법인데, 소리 내어 글의 내용을 읽다 보면 더러 뒷부분이 자연스레 생각날 때가 있다. 오늘이 그런 날이다. 운이 좋은 날이다. 열심히 써내려 가는데 휴대폰에서 브런치 알림 소리가 들린다. 시간을 보니 정오가 다 되었다. 확인하니 어머, 조회수 1000명 돌파라는 내용이다. 웬일일까 이틀 전 올린 작품이고 나는 브런치에서 인기 작가 아닌데... 그냥 어쨌든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몰랐지만 기분이 유쾌했다.


 그 두그 두둥 결국은 완전 맘에는 안 들지만 우여곡절 끝에 작품 하나를 완성했다. 오늘도 다 식은 커피를 원샷했다. 매번 뜨거운 커피를 주문하지만 글을 쓰다 집중하다 보면 뜨거웠던 커피가 다 식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시간이 있는 날은 따뜻한 커피를 리필해서 마시는데 오늘은 일찍부터 동생네 볼 일이 있어 서둘러 일어섰다.



 동생과 나는 청국장을 좋아한다. 어릴 때는 싫어했던 음식 중 하나였는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나이를 먹으면 어릴 때 맛본 음식들을 그리워한다. 음식을 통해 어린 날의 추억을 소환하는 것이겠지... 우리 자매도 마찬가지였다.

 친구가 강원도 여행 중 특산품으로 사 온 청국장을 내게 선물로 부쳐줬다. 나의 레시피도 있지만 친구가 워낙 음식도 맛깔나게 깔끔하게 하는 손맛 있는 여자라 그녀의 레시피대로 한 번 끓여 먹었는데 너무 맛있어이, 삼일을 청국장 하고만 밥을 먹었다. 그러니 청국장을 좋아하는 동생 생각이 나서 오늘 낮에 내가 직접 끓여 주겠노라고, 점심 먹지 말고 기다리라고 당부를 했다.

 저기 동생 집 앞으로 가는 버스가 정거장에 서있다. 있는 힘껏 달려 간신히 올라타고 숨을 몰아쉰다. 빨리 맛있게 끓여 -요즘 입맛이 없어하는 -동생의 입맛을 돌아오게 하고 싶었다.


 벨소리에 문이 열린다. 들어서자마자 손부터 씻고 앞치마를 두른다."너 배고프지? 빨리 해줄게." 하고 주방으로 성큼 걸어 냉장고를 열어본다. 가져간 청국장과 돼지고기 다짐육을 꺼내고 나머지 야채는 동생네 냉장고에서 찾아 본격적으로 음식 준비를 한다.

 애호박, 두부, 신김치, 대파 그리고 청양고추 조금을 도마에 적당한 크기로 썰고 냄비에 물을 끓이고 다진 돼지를 넣어 조금 끓이다 썰어 놓은 재료들을 넣고 청국장을 넣는다. 친구가 보내 준 청국장은 콩 알갱이가 씹히는 맛이 더욱 구수하고 담백하게 느껴진다. 여기서 Tip 한 가지 청국장은 10분 이내로 끓여야 청국장의 영양소 파괴가 덜 된다고 한다. 보글보글 한소끔 끓여 낸다. 생각보다 냄새가 역하지 않고 구수하다.

 식탁에서 방금 끓인 청국장과 고슬고슬한 잡곡밥에 적당히 신김치 한 접시이지만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아이들의 하교 전 평화를 맛보았다.



 이상하네. 조회수가 계속 가파르게 상승한다. 1000명 단위대로 알림이 울린다. 벌써 5000이네. 헐~이게 무슨 일 이래. 제목이 특이한 것도 아니고 평범하게 이를 때 없는데... 희한하면서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계라도 탄 기분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계속 고개는 갸우뚱거렸다.

 나는 사실  작품을 꾸준히 읽어주는 구독자 수도 얼마 안 되는 비인기 작가이다. 가끔 확인해 보는 조회수도 몇 안되고... 처음엔 내 글이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고민도 많이 했고 풀이 죽기도 했지만 지금은 마음이 편하다. 계속 정진하라는, 겸손하게 글을 다듬고 다듬으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니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이런저런 시행착오 끝에 마음을 바꾸니 오히려 글을 쓰는데 자유로워졌다. 그래도 고단하고 평범한 일상 속에 오늘 하루 서프라이즈 선물 같아 조회수의 이상한 마법을 즐기기로 했다.


 해가 많이 길어졌다. 학교에서 파김치가 되어서 돌아온 조카들한테 오늘 이모가 월남쌈을 저녁으로  해준다니 야채와 건강식을 좋아하는 큰아이는 야호! 하며 반기고 편식이 심한 둘째는 별  반응이 없다. 혼자서 끼니 해결하는 것은 참 귀찮고 힘든데 누군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하는 음식은 힘이 난다. 내 음식을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사랑의 마음을 담아 조리하고 그 음식을 먹고 자란 조카들은 이모의 사랑을 미루어 짐작하지 않을까.



 먼저 월남쌈에 넣을 고기에 밑간을 한다. 애들이 잘 먹는 돼지고기와 새우를 야채와 넣어 먹을 속 재료로 준비했다. 새우는 칵테일 새우를 해동해 버터에 볶아 놓고 미리 불고기 양념으로 재워 둔 고기도 볶아 블루톤의 사각 접시에 담아 놓고 야채를 준비한다.

 월남쌈에는 취향대로 여러 속재료를 넣어서 먹는 장점이 있는데 우리 조카들은 파프리카를 잘 먹어서 색깔별로 준비해 가지런히 썰고 그밖에 당근, 무순, 양파를 준비했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야채도 같은 블루톤의 접시에 담아 놓았다.

 이제는 식탁에 예쁘게 세팅하고 아이들만 부를 일만 남았다. 수고는 했지만 뿌듯하다. 맛있게 먹어 줄 조카들이 있으니-가슴에 행복감이 꽉 차올랐다.

 문득 자취하는 아들 녀석이 생각났다. 밥은 잘 챙겨 먹는지, 아픈 데는 없는지... 따뜻한 집밥 한 끼 해주면 좋을 텐데... 가슴 한쪽이 아려왔다.

 아이들과 동생은 수북이 쌓인 그 많은 쌈 재료를 무서운 식성으로 남김없이 폭풍 흡입했다. 이래저래 오늘은 기분 좋은 하루이다.



 땅거미 진 거리를 걷는다. 오늘 하루도 분주하게 서성이다 나의 둥지로 돌아왔다. 따뜻하고 포근한 기운이 나를 감싼다. 밀린 빨랫감을 세탁기에 넣고 부지런히 청소를 한다. 정오쯤 천 명이던 조회수가 만 명이 넘었다고 다시 알림이 울린다.

 기분 좋은 하루의 마감시간이 다가온다. 작품도 하나 마무리 지었고 동생과 조카들에게 맛있는 음식들을 선물했으니 더 이상 바랄 것 없는 하루였다.

 자정이 되면 오늘 하루를 유쾌하게 했던 조회수라는 신기루는 사라지고 원래의 그저 그런- 사람들 관심 밖의 작가 지망생으로 돌아갈 것이다. 무도회에서 자정을 알리는 시계 소리가 울리면 재투성이 아가씨로 돌아가는 신데렐라처럼 그렇게 제자리를 찾겠지만 허전하지도 아쉽지도 않다.

 오늘은 평범한 일상 속에 내게 신이 주신 격려의 선물이었다. 어리둥절하며 깔깔대고 웃었던 나.  웃음이라는 귀한 선물을 받아서 감사하다. 내일이 되면 나는 다시 무도회가 끝난 신데렐라가 되어서 일상을 살 것이다. 여전히 눈을 뜨면 명희 씨 카페에 가서 안 풀리는 글을 쓰고 있겠지. 그리고 오늘의 메뉴를 고민하며 조카들에게 저녁을 차려줄 것이다.

 환상보다는 두 발을 일상에 뿌리내리고 이룰 수 있는 진짜 꿈을 위해 하루하루를 살 것이다. 내가 가는 그 길이 길고 험난해도 내가 살아있음을 깨닫게 해 준 소중한 길이기에 쉬지 않고 갈 것이다.


 자정이 됐다. 정말 신기루처럼 오늘 하루 즐겁게 만든 조회수가 다시 원점인 으로 돌아왔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잠자리에 든다. 가끔씩은 예기치 않은 이상한 일들이 삶에 양념처럼 다가와 인생의 맛을 더욱 풍미 있게 할 것이다.

 마음에 분홍빛 봄빛이 물든 채로 잠이 든다. 선잠 없는 달콤한 잠 속으로 녹아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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