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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손 Mar 27. 2021

삶 그 외로움에 대해서...

 눈이 몹시 피로해서 읽고 있던 책을 책상 위에 내려놓고 한참을 눈을 감고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요즘 들어 노안이 더 심해졌다. 무언가 몰두해서 볼 때는 그 피로감이 눈은 물론 머리까지 조여 오는 통증을 동반한다. 얼마 전 정기검진차 들른 안과에서는 노안은 2년 전이랑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했는데 내가 난시가 심해 노안이 더 심해진 것처럼 여겨질 거라 담당의사는 내게 말했었다.

 난시 때문인지 책을 읽기가 고역이다. 돋보기를 사용하기는 하나 눈이 금세 피로해져서 길어야 한 시간 내외면 책을 덮는다. 내게 책의 의미는 지적 호기심의 창고 역할과 내가 겪어보지 않은 세상에 대한 간접경험 그리고 내가 아닌 다른 이들의 다양한 사고를 엿보는-작가가 되기에 글을 쓰는 것만큼 소중한 삶의 성찰 과정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 내게 독서는 그런 목적보다는 밤마다 찾아오는 외로움을 잊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아침에 눈을 뜨고 하루를 시작해서 나름 열심히 분주하게 살아도 저녁에서 자정 무렵, 잠들기 전까지는 삶이 허전하고 외롭다는 느낌이 물밀듯 밀려와 나를 번번이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챙겨야 할 식구도 없는 혼자 몸이니 시간의 여유가 많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바쁘게 시간을 보내- 불쑥불쑥 찾아오는- 허탈감이나 외로움을 떨쳐보려  피곤하게 몸을 굴려도 하루 중 잠들기 전 두, 세 시간은 내게 적막하고 쓸쓸하기 그지없는 시간이다.


 독서도 눈의 피로감이 극심하니 그 허망한 시간들을 채우기에는 부족하고... 그냥 주로 음악을 듣는데 며칠째 -이미 고인이 된 아름다운 청년-종현의 음악을 듣는다. 그의 감각적인 보이스와 가사가 내 취향에도 맞지만- 안타깝게 떠난 재능 넘치는 아티스트의 외로운 독백이 그의 음악에 고스란히 녹아있어서 -지금의 내 마음을 공감해 주는 것 같아 외로울 때면  그의 음악을 반복해서 듣곤 한다.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했다. 오후 10시가 조금 넘었다. 어제 지인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책을 90쪽까지 읽으니 눈의 피로감이 몰려왔다. 방안의 불을 끄고 종현의 음악을 틀고 자리에 누워 눈을 감았다. 마음에 허기가 지고 자꾸만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주책없이 나오는 눈물은 안구건조증 때문이라고 중얼댄다.



 편두통  때문인지 카페인 중독인지 자고 일어난 오전에는 머리가 항상 무겁다. 빨리 커피를 마시고 싶어 간단히 아침 식사를 하고 책 한 권과 휴대폰 거치대를 챙겨 명희 씨 카페로 향했다. 매일 일정한 시간에 글을 쓰려고 노력한다. 처음엔 의식적으로 창작의 요람을 만들 요량이었는데 일정기간을 꾸준히 같은 상황 속에서 글을 쓰니 그곳에 가면 자동적으로 단 몇 줄이라 쓸 수 있는 아이디어가 떠오르곤 한다. 내 창의성에 방아쇠를 당기는 역할을 하는 곳이 명희 씨 카페이다.

 잔뜩 흐려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하늘 아래를 걸어간다. 길가의 수줍은 꽃들이 이제는 만개했다. 곧 이별의 시간이 다가온다. 마음에 쓸쓸한 바람이 분다. 헤어짐과 만남이 우리 삶에서 반복되는 일상이고 숙명이라는 사실이 오늘따라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명희 씨 안녕?"하고 인사를 건넨다. 카페 도착하니 오전 9시 30분이다. 거의 내가 첫 손님인데 오늘은 내가 늘 앉는 좌석에 같은 카페 단골손님이 앉아 있다. 눈인사를 건네고 창가의 다른 테이블에 자리를 잡는다. 명희 씨가 아메리카노와 프리지어 한 송이를 건넨다. 그녀의 뜻밖의 선물에 활짝 웃었다. 프리지어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다. 어두운 마음이 노란 프리지어 빛으로 물든다.



 지금 이맘때의 시간은 하루 중  제일 행복한 시간이다.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고요하고 익숙한 공간에서 어제와 오늘의 일상을 기록하고 그리고 내일을 꿈꾼다. 창밖으로 시선을 둔다. 연한 녹색의 잎들이 바람에 일렁인다. 살아있는 것들은 모두 저렇게 흔들리면서 제길을 가는 것이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지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어느새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진다. 아침에 혹시 몰라 우산을 챙겨 나왔는데 다행이다. 명희 씨 카페에서 비 오는 거리 풍경을 보니 왠지 센티해진다. 오늘은 그리운 사람들이 더욱 그리워지는 날이다.  떨어져 있지만 나의 간절한 그리움과 사랑이 전달되기를 기도한다

 

 나는 남들보다는 외롭고 고독한 삶을 걸어왔다. 나의 삶의 대부분은 그런 시간들이 모여 지금의 나란 존재를 이루었다. 빈번히 찾아오는 외로움이지만 그래도 매번 마주 할 때마다 늘 아프고 고통스럽다. 나를 나답게 하는, 나를 마주 대할 수 있는 성장의 시간이지만... 참 아프다.

 풍경소리가 울리고 고요한 정적이 깨졌다. 카페 안으로 사람들이 걸어 들어온다. 커피 머신이 분주하게 돌아간다. 조용한 공간에 사람들로 가득 찬다. 사람들 사이에서 외로운 섬 하나가 울고 있다.



 하루의 일상이 끝나갈 무렵 다시 밤이 찾아왔다. 낮부터 떨어지던 빗방울은 어둠이 길게 내린 밤에도  타닥타닥 창문을 두드린다. 그 빗방울이 나를  찾아온 친구 같아 반갑게 친구를 맞이하고 차를 준비한다. 재스민 향이 깊게 퍼진다. 오전에 쓰다만 글을 쓰기 위해 노트북을 켠다. 하얀 모니터 위로 커서만 깜박인다. 피로한 눈을 감고 하루를 돌아본다.

 흐린 하늘 아래  비를 맞고 서 있던 하루였지만- 여전히 외로운 하루였지만 -살아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살아가는 이치에 이제야 조금씩 눈이 떠진다. 느리게, 천천히 삶의 지혜들을 아주 조금씩 깨달으며 그렇게 간다. 때로는 평온한 발걸음으로 때로는 어제와 오늘같이  심하게 휘청이며 길을 걸을 때도 있지만 외로움은 나를 이루고 성장시키는 동력임을 고백한다.

 오늘도 여전히 멍하니 허공을 응시한 채 나의 생각과 감정의 흐름을 읽어간다. 삶에서 꽉 채워지지 않은 빈 여백이 있어 우리는 그것을 채우기 위해서 앞으로 간다. 어느 때는 그것이 천형과 같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냥 이제는 친구처럼 벗 삼아 가야겠다.


 돋보기를 고쳐 쓴다. 모니터의 빈 여백을 채워나간다. 어느새 종현의 Lonely가 조용한 방안에 나지막이 울려 퍼진다. 꿈꾸듯 속삭이는 그의 노랫소리가 오늘도 나를 포근히 감싼다.


 당신의 음악을 사랑하고 기억하는 팬으로 당신을 추모합니다...


 https://youtu.be/NpTpEsE9G8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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