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쁜손 Mar 17. 2021

우리 동네 나의 단골집들

 바로 집 뒤에 얕은 동산있다. 그곳은 우리 집 베란다에서 내려다보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운동하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동네 사람들의 필수 걷기 코스다. 하지만 나는 이 동네로 이사한 지 8년이 넘었지만 한 번도 이용하지 않았다. 나는-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사람이 많은 곳은 불편해지는 울렁증이 있어서 되도록이면 산책도 지나는 사람이 적게 다니는 길을 택한다. 그렇다고 내가 까다로운 사람은 아니다. 호호호

 그냥 이사하고 5,6년은 우울증과 불안장애가 심해져서 거의 칩거해 있었고 좀 살만하니 산책이라는 것을 시작했는데 나는 언덕보다는 평지가, 사람이 북적되는 것보다는 덜 북적이는 길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기 좋아서 남들이 안 가는 샛길을 산책로로 이용한 것이다.

 이사 온 동네에 적응하게 된 것은 내 병이 거의 완쾌되면서부터이다. 그전까지는 딱 정해진 코스 10분 거리의 동생집만 큰길을 따라 오갔을 뿐이다. 그러다 심신이 차츰 회복되면서 활동반경을 넓혀가기 시작했는데 평소 익숙한 길만 고집하던 내가 그날따라 가보지 않은 길로 들어섰다. 그게 벌써 2년 전이 일이다.



 우리 동네는 구시가지에 속해있다. 대로 건너편엔 고층 아파트들이 들어섰는데, 내가 사는 곳은 지은 지 40년이 가까이 되는 오래된 아파트이고 근처의 주민 편의 시설도 -낡고 작아 그래서 허름하기까지 하다. 그러니 신도시에서 이십 년을 넘게 생활하다가 처음 이 곳으로 왔을 때는 이 도시의 초라함이 이혼을 하고 갈 곳 없어 친정으로 온 내 신세 같아 못 견디게 싫었다.

 이혼은 준비된 상황이었는데도 생각 외로 상은 컸다. 내 삶이 실패로 끝난 것 같았다. 거기다 고향에서 낯선 타향으로 밀려온 느낌이 나를 힘들게 했다.


 나는 빠릿빠릿하고 어디서고 적응을 잘하는 사람과는 거리가 멀다. 별 호기심도 없고 익숙한 것만 고집하고 지극히 변화를 두려워한다. 도전정신을 0부터 10의 수치로 표현하자면 도전 정신 제로에 가깝다. 그러니 이사 와서 몇 년을 반듯한 대로로만-건너편 신시가지가 보이는(내가 살던 도시가 생각나서 좋았다.)-걸어 다녔다. 딱 조카들을 돌보러 가는 길 외는 관심이 없었다.



 어느 날 휴일이었을 것이다. 운동이라고는 숨쉬기 운동만 하는 나였지만 그날따라 화창한 날씨에 이끌려 산책을 나갔다. 원래 다니는 길로 가려다 웬일로 그 날은 반대편 길로 해서 한 바퀴 돌고 싶은 마음이 들어 구시가지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신록의 계절, 5월쯤인 것 같다. 집에서 나와 십여분쯤 아파트 상가를 지나 쭉 걷다 보니 멀리 작고 아담한 카페가 눈에 띈다. 언뜻 보기에 소박하니 정갈한 게 내 마음에 든다. 원래도 혼자 차 마시고 혼자서 밥을 먹는 혼족답게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가 창가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넓은 창과 조용한 분위기, 편안해 보이는 사장님이 마음에 들어 그 후 나의 산책 코스는 이 정반대 방향으로 바뀌었다.

 한동안은 커피를 마시고 집으로 바로 돌아가곤 했는데 명색이 산책인데, 너무 짧은 코스라 구시가지 중심부 방향으로-동사무소, 우체국 등 편의 시절이 있다.-해서 집 주위를 넓게 돌아 산책  적정시간(내 기준으로) 40분 정도를 확보했다.

 시간은 일이 없는 날. 주로 오전 시간을 활용해서 보통 빠른 걸음으로 한 바퀴 도는데, 나는 사실 운동보다는 차츰 익숙해진 이 동네에 내가 필요로 하는 편의 시설을-문구점, 빵집, 서점, 사진관 등-찾는 목적으로 주변을 탐방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낯선 동네가 눈이 익고 차츰 정이 가기 시작했다.



 나는 혼자 놀기의 달인이다. 혼자 있는 시간도 많았고... 나름 독거인(?)이다 보니 환경에 적응하려 애쓴 덕분이라 오히려 혼자서 노는 것이 편하다. 호호호

 지금은 일을 뜸하게 하니 시간이 여유가 있어 가끔 외로울 때가 있지만 우울증이 회복되고 처음 간 직장 -백화점에서- 일을 할 때는 파김치가 돼서 돌아왔으니 집에 오면 밥 먹고 자고 아침에 출근하기 바빴으니 사실 그때는 외로움도 남의 얘기였다.


 참 동네에 정을 부치게 된 것은 산책 길 오가며 내가 발견한 작지만 소박한 아름다움이 있는 단골가게들 때문이다. 물론 솜씨도 인심도 맛도 있는 가게의 사장님들과 자주 보다 보니 정이 들었다.

 지금은 친구가 된 동갑내기 카페 사장님, 명희 씨. 그녀의 카페는 새로운 산책길로 처음 방향을 튼 이후 계속 이용해왔다. 자주 들르다 보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동갑내기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내가 먼저 친구 하자고 손을 내밀 었다. 수줍음을 많이 타는 나이지만 그녀의 선량한 모습이 내 마음을 무장해제시켰다. 그 후 지금까지 쭉 나의 단골집이다.

 명희 씨네 카페에서 우리 동네 동사무소와 재래시장이 있는 방향으로 50m쯤 걷다 보면 허름하지만 나름 상호명도 보통 식당답지 않게 멋스러운  (이름은 이태리 식당 같은 이름을 쓰고 있지만 보통 가정식 백반을 판다.) 한식식당이 있다. 처음엔 별 기대 없이 허기진 위를 채우려 들어섰는데 가격은 착하고 밥은 완전히 집밥 맛이다. 거기다 사장님이 인심이 후해 양을 너무 많이 주시는 바람에 오히려 조금만 달라고 주문할 때 미리 말을 해야 하니... 그 넉넉함이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단골집으로 이용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러고 보니 제일 최근에 발견한 나의 맛집이자 단골이 될 빵집을 빼놓았다. 식당에서 직진으로 100m가량 걸어가다 보면 동네 미용실, 동물 병원, 사진관이 좌우 길(2차선 도로) 옆으로 위치하고 조금 몇 걸음 걷다 보면 버스정류장이 나오는데, 버스 정류장을 끼고 오른쪽으로 돌아가야 우리 집 방향으로 갈 수 있다. 방향을 틀고 몇 걸음 걷다 보니 낯선 빵집이 보인다.

 새로 들어선 자그마한 빵집인데 전체적인 동네 분위기에 녹아들게 예스러우면서 깔끔하게 외부를 장식했다. 전체 틀은 목조로, 외관을 브라운 컬러로 통일감을 주고 매장 앞에 작은 입간판에 상호명과 영업시간을 분필로 적어 놓았다.

 기웃기웃 유리 너머 내부를 들여다본다. 빵을 좋아하는 빵순이라 그냥 지나치기 힘들어 가게 문을 열고 고개를 빼꼼히 내놓는다. 가게 안은 두, 세 사람이 들어가면 꽉 찰 정도로 아주 작았다. 벽에 붙여진 천연효모로 발효한 통밀 빵이란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투박한 맛을 파는 소박한 가게가 맘에 들어 리코타 치즈가 들어 있는 바게트 샌드위치와 요양원에 계시는 엄마에게 갖다 드릴 단팥빵을 골랐다.


 


오늘도 일어나 아침을 먹고 산책 길을 나선다. 정해진 코스에 늘 친구 같고, 언니 같고, 동생 같은 동네 주민이자 단골 가게 사장님들이 있다. 인심도 넉넉하고 후해서 내 마음 허기진 곳까지 채워주는 따뜻한 이웃들이다. 크고 화려한 신시가지는 아니지만 유순하고 정 많은 사람들이 사는 우리 동네가 이제는 편안하고 좋다.


 정오가 조금 넘어 전화가 왔다. 빵집 사장님이다. 최근 나의 단골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그녀이다. 사장님 혼자서 하루에 빵을 굽고 만드는 양이 소량이다 보니 금세 동이 나기 일수이다. 엄마가 단팥빵을 좋아하셔서 어제도 사드리려고 갔다가 헛걸음치고 왔다. 아쉬워하는 나에게 그녀는 전화번호를 물었고 오늘 빵이 막 구워져 나옴과 동시에 내게 전화를 주었다. 요양원 엄마랑 함께 방을 쓰시는 분들도 단팥빵을 좋아하신다니 넉넉히  준비해야겠다.


 사람의 빈자리는 사람이 채운다는 말. 꼭 이성이나 가족들로 채워야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혼자라도 외롭지 않은 것은 아니 덜 외로운 것은 나의 주위를 감싸고 있는 무수한-낯설지만 볼수록 익숙한- 이웃들 때문일지 모른다. 그래서 아직 세상은 그런대로 살만하고 아름다운 건지 모르겠다.

 오늘도 나만의 산책 길을 떠난다. 혼자만의 별에서 그들이 사는 별로...  

 


 


 


 

 

이전 02화 운수 좋은 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