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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손 Mar 15. 2021

운수 좋은 날.

 일주일에 한 번은 집에서 버스로 15분 거리의 마트 의류 코너에서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한다. 아르바이트하는 날짜는 정해져 있지 않고 점장님이  오후에 개인적인 볼 일이 있는 경우에 내가 출근해서 뒷 마무리를 하고 있다. 오늘은 점장님 지인의 경조사 때문에 늦은 점심을 먹고 출근을 했다.

 겨우내 좋아하는 봄이 언제 오나 목을 빼고 기다렸는데 벌써 삼월 중순으로 접어들었다. 오늘은 다행히 미세먼지도 심하지 않고 불어오는 바람에 파릇한 봄 향기가 묻어난다. 늦은 밤에 퇴근할 것을 대비해 아직 겨울 외투를 입고 집을 나섰는데 옷이 무겁게 느껴진다.

 날씨가 풀려서 그런지 일터로 가는 길마다 사람들로 붐빈다. 버스에서 내려 길을 걷는데 마주 걸어오는 젊은 연인이 행복한 듯 웃는다. 여자는 소복한 프리지어 꽃다발을 들고 남자를 보며 웃는다. 사랑을 하기에 좋은 계절, 꿈을 꾸기에도 좋은 계절. 봄은 연인들의 계절이기도 하다. 그 행복이 내게 전염되는 것 같아 미소가 지어졌다.

 마트 입구의 북적이는 행사장을 지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4층에 내렸다. 내가 일하는 의류코너가 있는 층이다. 모처럼 매장 안에 손님들로 활기를 띤다. 한동안 손님이 없어 점장님 어깨가 축져 저 있었는데 오랜만에 표정이 환하게 웃으시며 분주히 움직이신다. 내가 들어서니 반갑게 맞아주신다.



 나는 아르바이트로 판매 경력이 몇 년 있는데도 아직 손님 응대가 자연스럽게 편하게 되지 않는다. 수줍음을 많이 타고 낯가림이 있는 편이라 그런지 몰라도 수다스러운 장사꾼은 아니다. 그냥 솔직하고 친절하고 최대한 상냥하게 손님을 응대하는 것이 나의 판매 노하우이다. 그래서 가끔 눈치 없게 안 어울리면 안 어울린다고 솔직하게 말해 점장님을 어이없게 만들고 있다.

 그래도 그런 나의 판매 태도를 좋게 생각하는 분들도 계시니 내가 가끔씩이라도 일을 할 수 있는 것일 것이다. 점장님이 내가 알아야 할 대강의 사항을 일러주시고 퇴근을 하셨다. 손님들이 입어 본 옷들을 정리해서 놓고 매장 곳곳에 흐트러진 곳은 없는지 살핀다.

 마트의 의류 브랜드답게 이곳은 저가의 옷들을 판매한다. 백화점 고가 브랜드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는 가짓수가 많지 않아도 매출이 쉽게 올랐는데 여기는 많은 양을 팔아야 어느 정도 매출이 보장된다. 상대적으로 백화점보다는 많은 손님을 상대해야 되는데, 손님이 한꺼번에 몰린 경우에는 아직도 나는 우왕좌왕 당황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차분해 보이는 편인데 사실 나는 어리바리한 허당이다. 흐흐흐



 아, 점장님과 교대 후 첫 손님이 들어온다. 동그란 안경을 쓴 호리호리한 체격의 청년이 마네킹에 입혀 놓은 재킷을 가리키며 어색한 듯 수줍게 웃는다. 아마도 그 재킷이 맘에 들어 입어 보고 싶은 모양이다."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건네고 사이즈를 어림짐작으로 물어보니 내 짐작이 맞다

 여러 컬러의 봄 재킷 중 내가 권해준 베이지색 재킷을 입은 청년은- 거울에 비친 모습이 흡족한지- 만족한 듯 가격을 묻더니 계산을 한다. 야호~~ 첫출발이 좋다. 매너도 깔끔하고 더군다나 내가 권해준 컬러가 고객의 분위기와 맞아떨어졌으니 매출을 떠나 어깨가 으쓱해지며 기분이 좋았다.

 판매가 서비스직이다 보니 여러 사람을 상대해야 되는데 가끔 무례하거나 예의 없는 사람한테도 상냥하고 공손하게 대해야 되는 것이 속상할 때가 있다. 경험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내가 겪은 경우에는 이상하게도 마트나 아웃렛보다는 백화점에 오는 고객 중 더 요즘 말로 갑질 하는 고객이 많다. 그것은 아마도 상대적으로 고가인 물건값을 지불하면서 그 안에 더 높은 서비스의 질까지 요구하는 사람들의 기대심리가 작용했을 것이다.

 아무튼 오늘은 진상 고객 없이 순탄하게 매출을 올렸으면 하는 게 나의 희망사항이다.



 다리가 아파 시간을 보니 내가 매장에서 근무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쯤 흘렀다. 5시 30분쯤 되니 4층엔 사람이 드문드문 있다. 마트의 1층은 생필품  코너와 행사장이 있어 그나마 사람들의 왕래가 잦는데 내가 근무하는 이 곳은 고객이 저녁 무렵부터는 확연하게 줄어든다. 코로나 방역지침의 완화로 대형마트 영업시간이 다시  제자리를 찾았는데도 여전히 이전 단계와 마찬가지로 저녁 손님은 일찍 끊긴다. 서 있다 보니 목과 어깨 근육이 뭉쳐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지만 통증에 눈살이 찌푸려진다. 근무시간은 아직 서, 너 시간 남았는데 혼자 빈 매장을 지키고 있자니 피로가 몰려온다.


 겨울에 비하면 소비심리가 많이 살아났다고 하지만 코로나 이전의 상황으로 회복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걸릴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코로나 이전으로 기존의 오프라인 쇼핑몰, 마트 등이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판매원이라는 직업도 사라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 마트니, 내가 작년 여름까지 근무했던 백화점에서 조차 직원 없이 1인 근무 매장이 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불쑥 미래에 대한 불안이 몰려왔지만 심호흡을 크게 하고 오늘만을 생각했다.'까짓 여태까지도 잘 살았는데 어떻게 살아지겠지. 미리 걱정 마.'하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시간이 얼마쯤 흘렀는지는 아픈 허리와 다리의 감각으로 느껴진다. 거의 마감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있다. 야구모자를 눌러쓴 엄마와 키도 크고 덩치도 큰 학생이 슬랙스를 찾는다. 몇 시간 전 재킷을 하나 판 것이 내가 근무하는 시간 내 전부여서 마음이 불편했는데, 다행히 고객이 원하던 컬러와 디자인의 상품이 구비되어 있어서 일단은 마음이 놓였다. 학생을 피팅룸에 안내하고 바지를 건넨다. 그사이 학생의 엄마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데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이라고 생각했는데 중학교 3학년 학생이었다.

 그러고 보니 학생의 엄마도 큰 아이의 엄마라고 여겨지지 않을 만큼 이미지나 마스크 위의 눈매가 동안이다. 보고 느낀 대로 엄마한테 말해주니 그녀가 수줍은 듯 웃으며 "마스크 덕이예요."하고 손사래를 친다. 학생도 또래보다 성장이 빠른 것 같아 잠시 작고 왜소한-그래서 동생의 고민인-조카가 떠올라 부러웠다.

 판매에도 스킬이 있지만 나는 스킬보다는 상대로 하여금 편안하게 그리고 신뢰감 있게 다가가려 노력하는 편이다. 눈썰미도 기억력도 아직까지는 또래보다 좋은 편이라 고객들과 나눈 대화에서 세세한 것을 기억해주고 챙겨주면 고객들은 신기해하기도 고마워하기도 한다. 많이 팔지는 못하지만 매장에 대한 좋은 이미지로 다시 방문하고픈 생각은 들게 행동하는 게 나의 판매 철학이다.


 학생이 새 학기를 맞이해 필요한 바지 두벌과 셔즈 하나 그리고 점퍼 하나를 골라 계산을 마쳤다. 모자는 다음에도 또 오겠다며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고 나는 남은 옷들을 정리하니 일을 마칠 시간이다. 9시 이후에는 거의 손님이 없는데 오늘은 운이 좋은 날이다.



 데스크 위의 컴퓨터와  pda를 끄고 옆 매장 직원에게 "수고하셨어요". 작별 인사를 하고 버스 정류장으로 빠르게 걸어간다. 낮의 봄기운이 무색하게 밤이 내린 도시는 아직도 많이 쌀쌀하다. 미리 챙겨둔 머플러를 목에 감싼다.

버스 정류장 거의 다와 신호등에 대기하고 있는 집으로 가는 버스가 보인다. 이제부터 정류장까지 냅다 뛰기 시작했다. 이 버스를 놓치면 최소 15분은 기다려야 한다. 잠시도 서 있기엔 다리가 너무 아펐다. 전력질주 한덕에 가까스로 버스에 올라탔지만 숨이 가빠서 한참을 고생했지만 그래도 다음 버스를 기다리지 않아도 되니 이래저래 오늘은 운이 좋은 날이다.


 살아가면서 깨달은 사실이 있는데, 사랑이 넘치면 긍정적이 된다. 내 안에 사랑이 차오르고 있나 보다. 오늘 하루는 낮에 본 프리지어 빛깔처럼 곱고 환하다. 비록 매일매일 내게 행운이 찾아올 수 없다는 것을 난 분명히 잘 알고 있다. 그래도 나는 하루치씩의 작은 행운을 꿈꾸며 삶을 즐기고 싶다.

 어느덧 버스는 집 앞에 도착했다. 몸은 피곤하고 나른하지만 오늘 하루도 무사히 보냈다는 사실이 안도감을 준다. 어서 씻고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낼은 어떤 하루가 찾아올까 하는 기대하는 마음과 설렘을 안고 스르르 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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