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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손 Mar 10. 2021

가지 않은 길

  내가 만약에,  만약에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수많은 선택의 두 길을 접했을 때 지금과는 다른 선택을 했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갑자기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 떠오르며 든 생각이다. 지금보다 행복하고 만족스러웠을까? 어떤 인생의 여정을 살았을까? 생각만으로 눈물이 나는 것은 왜일까...  지금 여기까지의 삶이 내가 선택하고 내가 걸어왔지만 -가보지 않은 그 길을 생각하니 조금은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은- 나름 고단하고 평범치 않은 길들을 지나왔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길을 선택했다 해도 후회와 회한이 안 남을 수 없겠지만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똑같은 길을 선택했을지 의문이 든다.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와 다른 까닭일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을 거스르지 못함을 알면서도 오늘 나는 그 미지의 숲 속에서 가지 못한 길을 뒤돌아 보며 돌이킬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을 가슴 아파한다.

 앞으로도 내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크고 작은 갈래 길이 생의 종착점까지 이어져 있을 것이다. 의지로 지나왔지만 지나고 보면 어쩌면 운명일 수도 있었던  길들과 연결되어 매번 나의 선택을 기다릴 것이다. 그때마다 나는 시인과 앞서 두 갈래길 앞에서 고민하고 지나간 사람들처럼 삶이란 이름 아래, 선택이라는 이름 아래 내가 보기에 가장 아름다운 길을 따라 여행을 떠날 것이다. 비록 시간이 흐른 후 후회할지언정...



 세심하고 다정한 부모님이 아니었던 -약간의 방임적 양육태도는 자녀들이 일찌감치 독립적으로 생각하고 결정할 수 있게 만들었다. 물론 결정에 대한 책임이나 결과가 오롯이 나의 몫이 된다는 것도 꽤 일찍부터 깨달았다. 더욱이 나는 울음 끝도 길고 고집도 센 아이였다.

 학창 시절에 공부보다는 문예반 활동에 열심을 떨 수 있었던 것도, 대학 진학 시 전공을 정하는 것조차도 부모님은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으시고 내 의견을 따라 주셨다. 그렇다고 나에 대한 믿음이 있으셨다기보다는 아마도 별 기대 없는 고집 센 둘째 딸이어서 그럴 것이다. 그래도 학창 시절 내가 손에 쥔 결정권의 효과는 잠깐의 기쁨과, 슬픔일 뿐.  나를 숨 막히게 하거나 요동치게 하지는 않았다.

 이십 대 중반 이른 나이에 결혼을 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뒤 얼마 안 돼서 만난 유쾌해 보이는 남자와 결혼을 했다. 아버지는 사윗감이 못마땅하셨지만 내 고집을 아셔서 지레 포기하시고 허락하셨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아버지의 걱정거리는 나였다...



 선량한 사람이었지만 나와는 많이 달랐다. 다르다는 인정하는 것은 시간이 한참 흐른 후였지만   이미 돌이키기에는 시간이 너무 흘러버렸다. 생각해보면 가장 아름다울 시기인 이, 삼십 대를 다툼과 냉전과 또 다툼과 무관심으로 그렇게 소중한 시간을 흘러 보냈다.

 나는 그를 스물넷에 만나서 마흔일곱에 헤어졌다. 내가 서른을 넘기고부터는 그냥 무의미한 동거인이었는데... 나는 쉽게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이의 맑고 반짝이는 눈동자를 보면 나의 아픔이 엄살 같아서 그리고 그냥 미안해서 그만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미련스레 버텼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참을성은 자신 있었다. 어서 젊은 시절이 가서 아이가 성장하기만을 간절히 바랬다. 


 마흔두 살 되던 해 자궁암 수술을 받았다. 수술 전 입원 수속도 수술의 동의서도 스스로 작성하였다. 슬프지도 화가 나지도 않았고 그냥 실감이 나지 않을 뿐이었다. 그해는 유난히 길고 더디게 갔다.



 시간은 누구나 공평하다. 나도, 그도, 행복한 자나, 불행한 자 모두에게 인생은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되돌릴 수 있는 천운이 주어진 다하더라도 다른 길을 걸었을지... 그리고 다른 길을 걸었더라도 내가 원하는 행복한 삶이 있었을까. 그건 신만 아실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나는 지금의 내가 좋다. 비록 깨지고 찢어진 남루한 모습으로 아름다운 젊은 시절을 보냈지만 아픔은 나를 겸손하게도 견고하게도 만들었다. 인생은 오묘하다. 내 삶이 달콤하기만 했다면 나는 나만을 사랑하며 살지 않았을까. 아니 어쩌면 더 큰 행복을 찾아 헤매며  현재 내가 가진 것들에 감사함을 모르지는 않았을까.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이 있다는 것을 이제 비로소 알겠다. 지난날 어느 숲 속에서 만난 두 갈래 길중 내가 택한 길은 나를 깎고 다듬고 낮아지게 만드는 순례자의 길이였다.

 내가 힘들게 거쳐간 길에도 분명 기쁨과 희망의 빛도 존재했지만 어리석은 나는 나의 고통에 눈을 감고 귀를 닫아 생명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못했다.

 슬픔과 절망에 익숙한 사람은 노을을 좋아한다. 석양의 붉은 노을이 눈물 나게 아름답다.


 


 부족한 것도 많고 여리고 눈물 많은 나이지만 그냥 이 모습 그대로가 좋다. 처음부터 나 스스로를 사랑한 것은 아니다. 나 스스로를 외면하고 거부한 적도 있었다. 그럴 때는 다시 오던 길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흘러버린 시간 앞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주저앉기를 반복했다.

 잃어버린 시간들이었다고 생각하고 가슴 아파하고 후회하고 있었는데 지천명을 훌쩍 넘긴 이제 생각해 보니 버려진 시간이 아니었다. 내 모든 감정과 경험이 녹아져 응집된 에너지이자 앞으로 살아갈  인생 2막을 위한 -도약을 위한-뒷걸음질이었다.

 나의 사랑스러운 아이는 이제 든든한 청년이 되었다. 나의 고통과 시름을 지켜보며 안타까워했던 사랑하고 다정한 친구들. 이들을 내가 만날 수 있어 내가 지나온 길은 후회의 길이 아니다.

   또 언젠가는 걷다 보면 갈림길을 만날 것이고 난 한 길을 선택할 것이다. 그땐 외롭거나 두렵지 않을 것이다. 지난 경험들이 내게 속삭이겠지. "단단해진 네 안을 봐. 넌 잘할 수 있을 거야."

 노을은 자취를 감추고 깊은 어둠이 내린 도시로 바람이 분다. 어디에서부터 불어오는 훈풍인지- 도시가 평온하게 잠이 든다. 눈을 감는다. 꿈속에서 시인이 걸어간 숲 속에 내가 서 있다. 고요하고 아름다운 숲길을 따라 올라간다. 갈래 길이 나온다. 멈칫하는 내가 보인다. 그러나 두렵거나 불안한 감정이 아니다. 조심스레 내 눈에 보기에 아름다워 보이는 그 길로 아주 천천히 걸어 들어간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우리는 누구든지 시간의 제약을 받으며 항상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선택한 길과 선택하지 않은 길로 나뉘고 인간은 누구나 후회와 아쉬움, 미련이란 감정을 지닐 수밖에 없다.

 나 역시 한동안 그런 감정들에 시달리며 나를 미워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내가 나를 불행으로 몰았던 선택의 다른 편 길에는 과연 아무 문제가 없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면서 어차피 우리의 인생 마지막 여행지는 정해져 있고 우리는 그 목적지로 가기 위해 수많은 길들을 거쳐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마지막 여행지는 신의 영역이다. 다만 우리는 어떤  여행 코스로 갈 것인지는 우리의 의지대로 선택하고 책임지면 될 것이다. 못 견디게 죽을 것 같은 아픔도 지나고 보면 견딜만한 아픔쯤으로 덤덤해진다. 망각이란 귀한 선물은 우리를 계속 걸어가게 한다.

 젊은 날 주저함 없이 호기롭게 나섰던 길. 나의 경박함을 고백하며 앞으로 다가 올 내 앞의 수많은 길들은 이전의 실패는 겸허하게 받아들여 거울로 삼고 크고, 작은 성공들은 한 발씩 굳건히 내디딜 수 있는 자신감의 토대로 삼을 것이다. 그리고 걸을 것이다. 내가 선택한 길을 따라 내 삶이 끝나는 날까지...



        (사진출처-Pixaba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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