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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손 Apr 03. 2021

바람아 아들을 부탁해~

꽃비가 내린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그 비를 맞으며 탄성을 지른다. 길 가던 사람들도, 나도 멈춰서 그 아름다움을 눈에 담아두려 벚꽃을 바라본다. 환희와 기쁨으로 가슴이 가득 차오르고 있다.  순간 내가 여기 있음을, 살아있음을 감사했다.  공간에 여기 꽃비를 맞고 서 있는 사람 모두 나와 같은 마음이지 않을까...

 날씨가 화창하다. 울긋불긋 꽃들이 지천인 올해 봄은 유난히 예쁘다. 나 같은 집순이 마음까지 훌쩍 어디로 떠나고 싶을 만큼 그렇게 봄날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이 해가 마지막인 것처럼 봄이 충만한 풍경을 가슴에, 눈에 새겨둔다.

 명희 씨 카페가 오늘은 오전부터 북적인다. 아침 일찍 줌으로 온라인 예배를 드리고 1시간쯤 늦게 카페에 도착했다. 테이블이 몇 개 안 되는 작은 카페가 거의 꽉 찼다. 다행히 내가 늘 앉는 2인용 좌석이 비어있어 커피를 주문하고 그 자리에 앉았다. 우리 동네는 오래된 벚꽃나무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해마다 이맘때면 동네 주민뿐 아니라 인근 지역 주민까지 꽃구경을 오는데 며칠 전부터 절정에 이른 벚꽃 구경을 하러 아침 일찍부터 사람들로 북적인다. 내가 가는 카페는 우리 아파트 입구에 자리 잡고 있어 아마도 꽃구경 나왔던 사람들이 잠시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기 위해 명희 씨 카페로 몰린 것 같다.

 꽃을 좋아하는데 남녀노소는 없겠지만 이상하게도  나이가 들수록 그것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애틋해진다. 젊었을 때 꽃을 좋아하고 바라보던 느낌과는 사뭇 다르다. 영원할 것 같았던 젊음이 세월의 뒤편으로 사라져 가고 머리에 세월이 한올, 두올 내린다. 바람에 날려 바닥에 떨어진 꽃잎과 이미 져버린 목련을 보며 짧은 우리의 생애가 찰나에 지나지 않음을-그 삶의 덧없음을 본다.



 카페 안의 여인들이 소곤소곤 이야기 꽃을 피운다. 이야기의 서두는 활짝 핀 봄꽃들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사로부터 시작된다. 그녀들의 들뜬 목소리에 봄이 깊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그리운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이미 오래전 잊었다고 생각한 연인의 얼굴도, 소식이 끊긴 학창 시절 단짝들의 얼굴도 오늘따라 새록새록 그립다.  그들도 이 계절에 그리운 얼굴들을 떠올리고 있겠지...

 벨이 울린다. 아득한 기억 속에서 깨어난다. 수화기 너머 차분한 목소리의 아들 음성이 들린다. 꾹꾹 눌러놨던 보고 싶은 마음이 올라온다. 가라앉아 있던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한껏 밝고 명랑하게 전화를 받는다. 그런 나를 닮은 아들도 씩씩하게 나의 안부를 묻고 자신의 근황을 전한다. 혹시나 아들에게 행여 걱정거리라도 있을까 하여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그의 숨결에도 귀를 기울인다. 이미 오래전 내 품을 벗어난 아들이지만 내 마음에는 아장아장 엄마품을 향해 걸어오던 어린아이의 모습 그대로이다. 통화가 끝나갈 무렵 아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한다. 아들도 "엄마 사랑해요."하고 따라 말하며 웃는다.


 아들을 생각하면 항상 가슴 한편이 아리고 아프다. 아이한테 평생 미안해하며 살 것이라는 것은 이미 오래전 이혼을 결심했을 때부터 예상한 일이었지만  내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미안함과 아픔이 -아들이 시행착오를 겪을 때마다 나의 탓인 것 같아-나를 고통 속으로 몰아세웠다. 나의 선택이 아무리 최선이었다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나를 다독여봐도 그것은 순간의 변명일 뿐-  아이한테는 여전히 내가 빚진 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스스로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북적이던 카페 안의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다시 고요해진 이 곳에서 우두커니 창밖을 보며 앉아 있는다. 명희 씨가 식은 커피 대신 갓 뽑은 뜨거운 커피를 가져다준다. 그녀의 배려심이 담긴 차 한잔이 잠시 어두워진 마음의 먹구름을 몰아내고 다시 밝은 봄빛으로 안내한다. 눈을 감는다. 걱정ㆍ근심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간절한 마음으로 떨어져 있는 아들의 건강과 평안을 위해 기도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가는 길목마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들이 나를 반긴다. 꽃 같은 연인들이, 아이들이 춤추는 벚꽃나무 아래서 환하게 웃음을 터트린다. 중년의 여인들도,  황혼의 부부도 절정의- 벚꽃의- 군무를 보며 아쉬운 듯 서둘러 눈에 담고, 카메라에 담는다. 거리에 수북이 쌓인 꽃잎을 지르밟으며 천천히 걷는다. 바람이 불 때마다 이곳저곳에서 들려오는 환호와 감탄이- 이 거리 속 풍경이 꿈속이 아님을 느끼게 해 준다. 손을 뻗는다. 연분홍빛 꽃잎이 머리에,  어깨에 그리고 내 손 위에 수줍게 떨어진다.


 절정의 아름다움은 묘하게도 깊은 슬픔과 닮아있다. 환호성이 불꽃처럼 터지는 지금 이곳에서 나는 이미 이별의 때가 왔음을 감하며 마음에 녹아드는 슬픔을 삼킨다.



 허기진 배를 채우고 어둑해진 방 안에서 한참을 앉아 있었다. 창문을 연다. 해가 저문 나의 뜨락에도 꽃비는 여전히 흩날리고 있다. 꽃이 떨어진 가지에 파릇한 잎들이 고개를 든다. 가로등 불빛 아래 연녹색 잎들이 반짝이며 내게 반갑다고 인사한다. 꽃과의 이별 앞에 잠시 슬픔에 잠겨있던 나에게 영원한 슬픔도, 영원한 기쁨도 없다고 그저 모든 것은 우주 속의 짧은 순간일 뿐이라고 나지막이 속삭인다.

 자연의 모든 생명은 내게 위로가 되는 스승이다. 빛과 어둠이 거하는 삶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들에 핀 꽃들과 나무들, 지저귀는 새들과 흐르는 강물. 그리고 한 줌의 흙까지도 내겐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축복이었음을 고백한다. 아, 향긋한 바람이 불어온다. 봄을 알렸던 전령인 바람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다른 향기를 띄고 나타날 것이다.

 바람에게 부탁한다. 오늘도 하루를 마치고 지친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사랑하는 아들의 어깨를 토닥이며 감싸 안고, 그리고 그의 뺨에 간절한 미의 사랑을 대신해 입맞춤하고 오라고 간절히 부탁한다. 바람이 웃으며 내 머리카락과 내 뺨을 쓰다듬는다.



 이 세상 모든 엄마들에게 자식은 애틋함-그 자체이다. 가장 아름다운 것들을 보여주고 싶고  가장 건강하고 맛난 음식을 먹이고 싶다. 내게 가장 소중한 것들을 그 아이를 위해서라면 하나도 아깝지 않은 것이 모든 엄마의 절절한 마음이다. 나 역시 그런 수많은 엄마들 중 하나이다.

 부모한테 기댈 수 없는 아들은 군 제대 후 다음날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며 자기의 생활비를 벌어야만 했다. 작년 말  코로나로 다니던 직장이 어려워지면서 구직활동이 시작되면서 처음으로 석 달 간의 휴가 아닌 휴가를 보내고 새 일을 얼마 전 시작하였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나는 매번 아들의 고단한 삶이 내 책임인 것 같아 가슴이 미어졌다. 어쩌면 다른 부모를 만났으면 응석도 부리고 투정도 부렸을 텐데 항상 씩씩한 척하는 아들의 뒷모습이 나는 너무도 또렷이 보여 아들이 돌아간 뒤면 참았던 눈물을 흘리곤 했다. 


 오늘 나는 삶의 지혜를 하나 터득했다. 힘들고 지쳤을 때 아무도 곁에 없다고 느껴질 때도 자연의 숨결은 존재 자체로 만도 내게 위로와 격려가 된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내가 가진 지혜를 아들에게 유산으로 남겨주고 싶다. 엄마가 네  옆에 없어도 너를 응원하고 사랑해줄 이 우주의 포근한 품 안으로 사랑하는 너를 초대하고 싶다. 바람이 나의 초대장을 기지고 게 출발한다.

 수많은 것들을 포기한 N포 세대의 좌절 속에 너를 일으키고 단단하게 뿌리내릴 수 있는 토양 속으로 안내해줄 나의 절절한 부탁을 담은 초대장을 동봉하며 언제든 나의 초대에 응하기를 엄마는 기다릴 것이다. 그날이 올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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