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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손 Apr 13. 2021

꼬마 화분 길들이기.

며칠 전 명희 씨한테 작은 화분을 선물로 받았다. 원래 화초나 꽃은 들여다보는 것만 좋아하지 예쁘게, 정성스레 가꾸는 것은 영 재주가 없는 사람이다. 이상하게도 남의 손밑에서 잘 자라던 화분도 내게만 오면 금세 시들어 죽어버리기 일수이다. 그래서 한참 전부터는 아무리 예쁜 식물, 꽃이 담겨 있는 화분이라도 보는 걸로만 즐기지 내가 일부러 사는 일은 없는데 그녀가 선물이라고 내민다. 워낙 마이너스의 손이라 자신은 없지만 그녀의 봄맞이 선물을 흔쾌히 웃으며- 고맙게 받아 들고 집에 왔다.

 어디다 놓을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눈에 잘 띄는  하얀 거실 장식장 위에 자리를 잡고 분무기에 물을 담아 작은 화분에 물을 주었다. 이름은 알 수 없는 식물이지만 키는 20cm가 조금 넘고 빨간 구슬 같은 열매가 줄기 사이사이 앙증맞게 달려 있어 제법 보기에도 근사한 꼬마 화분이다. 왠지 이번에는 느낌이 좋다. 녀석이 나와 제법 오래 동무처럼 지낼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기분 좋은 동거 생활에 들어갔다.

 이제는 돌봐줄 식구가 생겼으니 헛헛한 마음에도 봄이 찾아온 듯 콧노래가 나온다. 작고 여린 생명이지만 희한하게도 위로가 되는 것이 신기하다. 어린 아기 식물이 혹 내 기척에라도 놀랄까 숨죽이며 조용히 바라본다.



 잠에서 깨어나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볕이 잘 드는 베란다로 화분을 옮겨 주는 일이다. 식물을 키우는 방법엔 문외한이지만 적당한 물과 햇볕 그리고 돌보는 사람이 정성일 거라고 나름 결론 내리고 꼬마를 데려오고 아침마다 치르는 의식이다. 물은 이틀에 한번 꼴로 주는데... 꼬마의 잎이 점점 무성해지고 새순이 순조롭게 돋는 것을 보니 영 틀린 양육방법은 아닌 듯싶다.ㅎ 우리 집에 온 지 며칠 안되었는데 키도 훤칠하게 크고 열매는 탐스럽게 윤기가 흐른다. 모양이 앵두 같기도 하고 미니사과랑 비슷하기도 한 것이 실하기가 이를 때 없다.

 서둘러 옷을 입는다.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러 명희 씨 카페로 향한다. 생각만 해도 진한 아메리카노의 향기가 벌써 코끝에 퍼진다. 꼬마에게 무럭무럭 잘 커야 한다고 속삭이며 가방을 챙겨 집을 나선다.

 카페 문을 열고 명희 씨에게 인사를 한다. 언제 보아도 사람 좋아 보이는 그녀가 활짝 웃으며 나를 맞이한다. 창가에 햇살이 흘러넘치는 볕 좋은 봄날에 -좋아하는 커피 한 잔과 다정한 명희 씨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니 마음이 금세 부자가    된 듯 여유롭다.

 창가에 쪼르르 화분들이 줄지어 서있다. 울긋불긋 꽃화분들이 작은 카페를 가득 채우고 있다. 부지런히 명희 씨가 물을 주고 사랑을 주어 애지중지 가꾸는 보물들이다. 그 속에 우리 집 꼬마와 형제인 화분 둘도 보인다. 어, 이상하다. 식물을 키우기 전에는 별 의미 없는 똑같은 화초일 뿐이었는데 지금의 나에겐 우리 집에 있는 꼬마가 훨씬 근사하게 여겨진다. 그새 정이 들었나 보다. 갑자기 쌩텍쥐페리의 어린 왕자가 떠올랐다. 내가 꼬마를 가꾼다 생각했는데 그 녀석이 어느새 나를 길들이고 있었다.ㅎㅎ



 원래도 허약체질이라 부실하기도 했지만 요즘 나이 먹는 티를 몸이 왜 그리도 심하게 내는지 꿀꿀하기 그지없다. 아들 하나 있는 것은 그냥 동포 수준이고 그저 혼자 아픈 몸을 달래며 우울해할 뿐. 사는 재미도, 낙도 없고 외로움이란 놈만 주야로 들락날락 거리며 내 마음속을 헤집어 놓고 있었는데... 그래도 며칠 전 입양한 꼬마가 뭔지 나를  제법 보듬어준다.  우두커니 멍하니 있을 시간에 고것을 들여다보고, 물을 주고, 여린 잎들을 닦아주고  있노라면 서늘한 마음이 어느덧 따뜻하게 변해가는 게 느껴진다. 작은 조카 녀석이 식물을 키우는 것을 왜 그리도 좋아하는지 이제야 알겠다.

 나의 정성을 필요로 하는 생명이지만 나의 수고니 사랑보다 오히려 그것이 나에게 주는 위로와 기쁨이 크다. 아주 작은 생명, 꼬마는 나의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은 알맞은 사랑에 반응하는 기특한 생명이다.  여태 이런 기쁨을 몰랐을까. 김춘수 시인이 ''이란 시도 떠오른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까지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일 뿐이었다..."  꼬마라는 이름을 불러 주기 전까지는 그것은  하나의  단순한 사물 일뿐이었으나 이제는 내게 와 하나의 의미-생명이  되었다.



 해 질 녘 하루를 마감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무도 없는, 불 꺼진 집안이 서늘하다. 어둠을 몰아내려 서둘러 불을 켠다. 눈 앞에 반짝이는 화분 하나가 나를 반긴다. 가까이 다가가 물을 준다. 잎새 하나하나 혹 시들어  가는 잎은 없는지, 새순은 잘 올라오고 있는지 꼼꼼하게 살피고 하루 동안의 분주했던 일상을 꼬마에게 털어놓는다. 말 수 없는 녀석은 그냥 웃으며 듣고만 있다. 이제는 제법 많이 자라 녀석의 집이 비좁아 보인다. 빠른 시일 안에 분갈이를 해야겠다.

 시장하다. 오랜만에 콩비지 찌개를 끓이려 신김치와 등갈비를 준비했다. 너무 오랫동안 나를 위한 밥상을 소홀히 해왔다. 고슬고슬한 밥을 짓는다. 여러 가지 찬은 없지만 나만을 위해 정성껏 찌개를 끓인다. 구수한 찌개 냄새가 식욕을 자극한다.



 아침부터 부슬비가 내린다. 집 앞동산의 나무들이 비를 맞아 싱싱하게 물이 올랐다. 연둣빛이 차츰 녹색으로 진하게 번져간다. 우리 집 꼬마도 밤새 잘 잤는지 키가 훌쩍 자랐다. 기특하다고 고맙다고 말을 건네니 방긋방긋 웃는다. 누굴 닮았는지 곧게, 곱게도 잘 자란다. 막 나기 시작한 잎들은 연한 연둣빛으로 여리 여리하니 아가 손처럼 보드랍다. 작은 화분 안에-얼마 안 되는 흙 한 줌 안에서- 자라는 놀라운 생명력이 경이롭다.

 명희 씨에게 꼬마의 사진을 휴대폰으로 전송해줬다. 그녀의 선물을- 처음에는 혹시 금방 시들어 죽어버릴까 걱정하는 -내색은 못하고 집으로 가져왔는데 나의 기우와는 달리 하루가 다르게 쑥쑥 크는 나의 멋진 꼬마를 자랑하고 싶었다. 그녀의 답문이 도착했다. 그녀를 닮은 이모티콘이 웃고 있다.


 인생의 황혼 녘으로 물들어가는 것은 참 쓸쓸하고 외로운 일이다. 그 외로움은 젊은 날  내가 느껴 보았던 외로움과는 사뭇 달라 나를 당황스럽게 한다. 그러나 인생에서 어디 잃는 것만 있을까. 지금 나는 불청객처럼 찾아온 외로움을 얻는 대신에 아무리 작은 생명이라도 귀하고 소중하다는 불변의 진리를 온몸과 마음으로 절절하게 느끼고 있다.

 들풀이라도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다면 그건 나한테로 와서 하나의 의미로 다시 태어난다는 사실을 이제야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깨달으며, 비로소 모든 살아있는 것들에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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