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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손 May 09. 2021

책의 숲에 소풍가다.

행복의 여러 모양.

 언제부턴가 필요한 책을 구매하려면 당연히 온라인 서점을 이용해왔는데, 갑자기 책 냄새와 책장을 펼치는 손의 감촉을 느끼고 싶어 집에서 가까운 오프라인 매장으로 소풍을 나선다. 황사가 심한, 공기의 질이 몹시 나쁜 날이지만 한번 나가려 마음을 먹으니 나쁜 일기는 중요하지 않았다. 기온은 춥지도 덥지도 않은 적당한 날씨라 얇은 외투를 걸쳐 입고 나선 길의 발걸음은 가볍다. 걸어서 갈만한 곳에는 애석하게도 서점이 위치하지 않아 가장 가까운-버스로 10분 거리의 서점으로 향한다. 짙은 황사에 하늘이 뿌옇고 공기가 탁하지만 마음은 수줍은 새색시의 나들이 길처럼 설레고 흥분된다.

 온라인 서점으로 책을 고를 때는 서평이나 리뷰 그리고 미리 보기 정도로 내가 원하는 책의 여부를 가늠하는 정도라 정확한 취향이나 필요를 충족 못 시키는 경우도 종종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시간의 여유만 있다면 오프라인 매장에서는 용도와 장르별로 잘 정돈된 서가의 책과 책, 저자와 저자의 사이를 느긋하게 산책하며 지적ㆍ감성의 욕구를 채울 수 있는 여유와 즐거움이 있으니 발품을 팔아도 시간이 아깝지 않다.

 아,  얼마만인가!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으로 서점의 문을 열고 들어간다.



 나는 지인들에게 추천받은 도서나 내가 목적을 가지고 서점에 들어가지 않는 한-서점의  추천도서 코너나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먼저 읽을만한 도서를 살피는 편이다. 빽빽하게 진열된 수많은 책들 중에 보석을 발견하기가 힘이 드니 좀 시간을 단축하는 과정으로 독자들의 반응을 고려한 책을 선택하는 방법으로 우선 시간을  절약하고- 시간의 여유가 있다면 평소 관심분야 문학이나, 환경, 정신 심리학 책의 섹션으로 찾아가 책을 읽고 원하는 책을 고른다.

 젊은 시절 휴대폰도 없던 시절 친구들과의 약속 장소는 거의 대부분 서점 앞이었다. 아날로그의 감성의 살아있는 느림과 낭만이 있던 시절이었다. 친구들과 약속을 하다 보면 이상하게도 늦는 친구는 매번 늦는 경우가 많고 핑곗거리도 다양하다.ㅎㅎ 그런 친구를 기다릴 때도 지루하지 않게 관심 가는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친구가 옆에 와 있다. 그 시절 종로 서적, 교보 문고가 우리의 만남의 장소였다. 사는 게 힘들고 팍팍해 학창 시절의 친구들과는 연락이 많이 끊겼지만 그들과의 추억은 가끔씩 아름답고 찬란했던 시절로 기억되며 힘든 시기를 지나갈 때도 따뜻한 감성으로 떠올리곤 한다.  그때의 삼총사였던 단짝 친구들이 보고 싶다. 같은 하늘 아래 건강하게 행복하게 잘 살고 있으면 좋겠다. 언젠가 우연히라도 만나 지지 않을까...



 서점의 추천도서 코너에 눈에 띄는 책이 보였다. 마이클 셀렌 버거의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이란 책이다. 지은이는 타임지에 선정된 영향력 있는 환경 운동가이다. 이 저자는 종말론적인 환경주의가 어떻게 지구를 망치고 있는지 조목조목 과학적인 테이터를 들어 반박하고 있으며 우리의 기존 널리 알려진 지구를 위한다고 실천했던 덕목들이 많은 부분 우리의 무지와 정보 부족으로 많은 부분이 잘못되었음을 주장하고 있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지구 환경을 위한 길이 과연 옳은가를 되짚어 줄 수 있는 책-그 이상이었다.

 그는 우리가 알고 있던 바다를 더럽히고 오염시키는 것의 주범이 플라스틱 제품이 아니라 상업적 어업활동에 사용된 그물망 때문이고 해양 오염의 무려 46%를 차지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플라스틱 빨대 타령만 하다가는 정작 중요한 문제를 놓치게 된다고 이 글에서 강조하고 있다. 이 밖에도 여러 그의 일리 있고 흥미로운 주장과 근거는 우리가 진정 지구와 환경을 위하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하게 하고, 환경을 위하는 일에 균형 잡힌 시각을 갖게 만들었다. 선 자리에서  사분의 일 정도 읽다 소장할 가치가 있어 책을 한 권 챙겼다.



 아,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에세이 '무라카미 T'의 산뜻한 책의 표지와 제목이 눈에 확 들어와 책을 집어 펼쳐 들었다. 책장 중간중간 그가 컬렉션 한 티셔츠의 사진들과 그 티에 얽힌 사연과 이야기가 18편의 에세이로 완성되어 있다. 티셔츠를 통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일상을 읽을 수 있어 흥미로왔고 이런 평범한 소재로도 글을 엮어 나가는 그의 재능과 섬세함이 참신하고 돋보였다. 휴일이라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종이책만이 가진 매력. 매력적인 새책 냄새와 책을 펼칠 때 느껴지는 종이의 질감. 다양하고 세련된 북커버를 직접 보는 일도 즐겁다. 책과 책 사이를 오고 간지 두, 세 시간이 지나니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아침을 이른 시간에 토스트 한쪽 먹은 게 고작이니 배가 고프다. 마이클 센더 버거의 책을 계산하고 놀이터를 나왔다.

 집으로 돌아가려다 말고 가락국수가 먹고 싶어 근처 상가의 분식집으로 들어갔다. 늦은 오후라 식당 안에 손님들이 별로 없다. 주문한 유부 가락국수가 금세 나왔다. 맑은 장국에 굵은 가락국수에  고명으로 유부와 쑥갓이 얹어 있는 깔끔한 모양새가 식욕을 돋운다. 국수 한 그릇을 달게 먹으니 포만감에 행복감이 밀려와 단순한 내가 웃겨 웃음이 나왔다.



 운이 좋게도 집으로 가는 버스가 내가 정류장 도착과 거의 동시에 도착했다. 버스에 올라타니 빈자리가 나를 기다린다. 경치 좋고 아름다운 풍광이 보이는 여행지로 여행을 다녀오는 행복도 있지만 늘 내가 편하게 차 마실 수 있는 동네 카페나  아쉬운 대로 세상 견문을 넓힐 수 있는 서점으로의 소풍도 그런대로 소소하니 행복한 만족감을 준다.

 외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즐겁고 마음 편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하루하루를 엮어가는 시간들이 모여 현재와 미래의 행복한 내 모습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집으로 빨리 가고 싶다. 샤워로 짙은 황사 먼지를 씻어 내고 편안한 파자마로 갈아 입고 책상에 앉아 오늘 구입한 책을 읽는 내 모습을 상상하니 기분이 유쾌해진다. 오늘의 소풍길은 성공이다! 편안하고 나른한 행복감에 젖어드는 늦은 오후, 고맙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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