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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손 Apr 23. 2021

마음은 풍성하게 소유는 슬림하게...

 이혼하고 친정에 들어온 지 8년째가 되었는데,  아직 아파트 베란다에 풀지 않은 짐이 큰 박스로 두 상자가 있다. 두 집 살림이 합쳐지다 보니 다 풀어놓을 수도 없었고 버리자니 내가 아끼는 보물들이라- 다른 짐은 다 버리고 옷가지만 들고 들어왔지만 미련을 못 버리고- 쌓아 놓고 있었다. 그렇다고 값나가는 옷가지나 가방, 패물 그런 것은 아니다. 결혼 생활하면서 하나, 둘 정성스레 모여 둔 예쁜 그릇이나 주방용품이다.

 

 이혼을 결정하고 친정으로 들어 올 결심을 했을 때 다른 살림살이에는 별로 애착이 없어 과감히 정리할 수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그릇들에는 미련을 못 버려 추리고 추려 두 박스를 챙겨 친정으로 들고 들어왔다. 그 당시 마음으로는 내가 지금은 비록 사정상 갈 곳 없어 친정에 내 몸을 의탁하지만,  사정이 좋아지면 독립해서 내 살림을 꾸릴 때 사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8년이  흘렀다.

 그렇다고 사정이 나아져서 상자를 개봉하는 것은 아니다. 처음 엄마 집에 와서는 내 인생이 실패한 것 같은 생각에- 절망만 하는 탓에-아무 의욕도 없었다. 지금이야 이혼을 객관적으로 담담하게 받아들이지만 그때로 돌아가 보면 숨 쉬고 있는 것조차 괴로웠다. 그러니  필요한 최소한의 옷가지랑 살림살이만 풀어놓고 나머지는 모두 베란다에 쌓아 놓았다.

 혼자만 실패자 인양 헤매며,  허송세월을 보내다 보니 귀하게 여겼던 내 보물들도 차츰 기억 속에서 사라졌었는데 오늘 밤 갑자기 그것들이 생각났고 드디어 꼭꼭 감싸 놓은 상자를 풀기 시작했다.



 며칠째 봄맞이 대청소를 하느라 몸과 마음이 분주하다.  계절마다 부지런하게 대청소하는 깔끔함과는 조금 다르게-요즘 밤에 쉽게 잠이 들지 않아 우두커니 앉아 있기도 뭐해서-소일거리를 찾던 중 오래된 살림살이가 눈에 들어왔다. 작년에 "오십 이후의 삶은 채우는 삶보다는 비우는 삶에 무게를 둬야 한다."내용의 '이노우에 가즈코'의 책을 읽고 미니멀 라이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꼭 필요한 것만 소유하는 것. 무언가에 메이지 않는 삶의 시작점 같아서 공감이 갔고 바로 실천에 옮긴다고 시작한 일은 버리고 나누는 일이었다.

 옷을 좋아하는 나이지만 그렇다고 크게 애착이나 욕심을 부리는 성격은 아니라 비우는 것이 힘들지는 않았다. 같은 용도의 옷과 소품들을 따로 구분한 뒤 가장 아끼는 것만 남겨두고 쓸만한 것은 지인이나 구제를 목적으로 하는 바자회에 기증했다. 그렇게 작년 가을 소유품을 삼분의 일 이상 줄였는데 요즘 다시 내가 소유하고 있는 물건들을 살펴보니 아직도 최소한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차고도 넘치는 물건들이었다. 내가 작년에 한차례 비움을 실천하고 더는 생필품 이외는 소비를 하지 않았는데도 넘쳐 보이는 것은 왜일까. 그건 아마도 무소유의 실천은 아니더라도 물건을 많이 소유했다고 그것에 비례하여 정신을 풍요롭게 하지는 않는다는 깨달음 때문일 것이다.


 소비가 미덕이고 온갖 편리한 물건들과 자신을 돋보이게 할 물건들이 넘쳐나는 현대 사회이지만 우리의 이전 세대보다 우리가 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박스 위의 뽀얗게 쌓인 먼지를 닦고 박스를 열었다. 낯익은 물건들이 가지런히 담겨 있다. 이혼의 와중에도 정성스레 하나하나 포장했던 나의    그때의 먹먹한 마음과 그것들을 장만하고 사용했던 추억이  그릇들을 꺼낼 때마다 새록새록 떠오른다. 어쩌면 그것은 단순한 물건 이상의 나의 젊은 날을 고스란히 담아낸 상징적인 존재일 것이다. 박스를 풀고 하나, 둘 정리할 때마다 다행히 아픔이 느껴지기보다는 담담하고 편안했다.

 나는 예쁜 그릇 모으는 게 취미였다. 혼자 밥을 먹더라도 그날그날의 기분과 분위기에 따라서 가장 깔끔하고 근사한 접시에 담아 나를 대접하곤 하였다. 그것은 일종의 존중받고 사랑받는 느낌과 흡사했다. 그냥 그런 느낌이 좋았다.

 보관상태는 아주 양호했다. 이혼하는 와중에도 챙겨 올 생각은  만큼 아끼는 정갈한 접시들이다. 이제는 그것들조차 소유하고자 하는 욕심과 미련에서 벗어나 정리하려 한다. 최소한의 필요한 것만 남기고 평소 그릇을 좋아하던 지인에게 주려고 추려 놓는다. 무엇이든지 소유하려는 욕심을 덜어내니 마음이 이상하게도 채워진다.

 "언니  언니가 그릇 모으는 거 좋아했잖아. 이거 다 나 줘도 돼?" 하고 말끝을 흐린다. 동생의 말속에 나에 대한 복잡한 연민이 느껴진다. "내가 아끼는 거니 특별히 너 주는 거야~ 나는 단출하게 살고 싶어. 그게 마음이 편하네." 하며 웃는다.



 집을 나섰다. 예쁜 그릇을 좋아하는 명희 씨 생각이 나서 몇 개 추려 잘 포장해서 카페로 향한다. 카페 주인이지만 남 대접하는 것을 즐겨하는 명희 씨는 예쁜 접시에 다과를 담아 손님들에게 종종 대접을 한다. 카페에 어울릴 만한 것으로 챙겼다. 풍경 소리가 울리는 카페 문을 밀고 들어가니 명희 씨가 환하게 웃는다.

 

 며칠 전 유튜브에서 3년째 쇼핑을 하지 않는 20대 젊은 여성의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그렇다고 그녀가 자기를 꾸미는 것을 포기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어느 날 문득 무분별하게 소비하던 물건들이 넘쳐나는 지구의 환경과 누군가의 싼 노동력이 시장구조에서 필요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갑자기 그녀의 브레이크 없는 소비를 멈추게 했다고 한다. 그녀는 대신 가족들과 친구들의 옷장의 버리는 옷들의 재활용을 통해서도 충분히 아름답게 꾸밀 수 있음을 영상을 통해 보여  주고 있었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나는 공감했고 나의 마지막 미련인 취미 생활도 정리할 수 있었다.

 

 나의 삶에서 물건을 빼는 대신 마음은 더 넉넉하게 채우고 싶다. 그 어느 것에도 메이지 않고 내 마음의 주인으로 남은 삶은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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