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서 깼을 때,
식은 이마에 손이 얹혀 있었다.
그녀였다.
표정은 평온했지만,
눈가에는 밤을 새운 흔적이 가득했다.
“밤새 열이 있었어요.
꿈속에서 뭐라고 계속 중얼거렸어요.”
나는 얼떨떨한 얼굴로 천장을 봤다.
그리고
또렷한 장면 하나가 떠올랐다.
그녀였다.
비 내리던 날,
우산도 없이 뛰어나간 나를
그녀가 따라오며 붙잡았다.
“그만해! 나도 힘들어.”
그녀가 울면서 외쳤다.
나는 그 말에 돌아보지도 않고
뒷모습을 남긴 채
그 자리를 떠났다.
숨이 막혔다.
내가 기억한 첫 장면 중 하나가
사랑이 아닌, 상처였다는 것.
그녀는 모른다.
내가 방금,
그날의 장면을
모두 기억해냈다는 것.
“그날…
내가 당신을 두고 갔어요.”
내 말에
그녀는 놀란 듯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이 제일 힘들었어요.”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당신은 아무 말도 없이 사라졌고…
나는 당신이 다시 돌아올지조차 몰랐어요.”
나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기억이 돌아온 것이
기쁜 일이 아니었다.
그녀의 상처를,
이제야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기억이 돌아온 건,
다행이에요.”
그녀는 그렇게 말했지만,
그 말 뒤에 숨은 슬픔을
나는 읽을 수 있었다.
“그런데…
혹시, 기억이 돌아오면서
마음도… 예전으로 돌아갔나요?”
그녀의 질문에
나는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기억은 돌아왔지만,
마음은 지금
그녀를 처음 만난 날로부터 다시 시작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억은 과거를 데려왔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현재에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현재에는
그녀가 있었고,
나는
그녀를 다시 사랑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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