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 동화 별빛동화 스물두 번째 이야기
"너는 선택받은 삶을 살고 있니 아니면 선택하는 삶을 살고 있니"
한양성곽의 돌담은 낮에는 관광객으로 붐비지만, 밤이면 고양이들의 세상이 된다. 돌 틈에 몸을 웅크리고 달빛을 친구 삼는 고양이들. 그들에게 성곽은 오랜 집이다.
어느 날 저녁, 돌담 위에 앉아 있던 한 고양이가 산책 나온 강아지를 내려다봤다. 강아지는 번쩍이는 목줄을 하고 주인과 걷다가 돌담 밑에 멈추더니 오줌을 갈기듯 남겼다.
고양이의 눈빛이 번쩍였다.
“야! 여긴 내 영역이야. 왜 흔적을 남겨?”
강아지는 잠시 주춤하다가 꼬리를 흔들며 대꾸했다.
“나도 어쩔 수 없어. 몸이 시키는 거거든. 그리고 주인은 내가 남긴 똥은 치운다 하지만, 이건 담을 수 없어 그냥 두는 건데 뭐가 문제야?”
고양이는 꼬리를 탁탁 치며 비웃었다.
“너의 흔적이 남는 순간, 여긴 더 이상 내 공간이 아니지. 넌 주인의 보호 속에서 흔적을 남기고, 나는 그 흔적에 밀려나야 해.”
강아지는 잠시 침묵하다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건 내 존재가 지나갔다는 기록일 뿐이야. 난 주인이 나를 선택해 줬고, 그 안에서 존재해. 하지만 넌… 널 선택해 줄 사람이 있니?”
며칠 뒤, 여름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폭우가 쏟아졌다. 천둥이 성곽을 울리고, 사람들은 우산을 펴 들고 허겁지겁 벗어났다. 강아지는 주인 품에 안겨 집으로 돌아갔다. 따뜻한 수건에 몸을 말리면서도 속으로 생각했다.
“저 고양이는 지금 어디서 비를 피하고 있을까? 혹시 돌담 틈에서 온몸이 젖은 채 떨고 있진 않을까…”
그 시각, 고양이는 폭우 속을 헤매고 있었다. 돌담 밑, 처마 밑, 골목길… 어디에도 피할 곳은 없었다. 털은 무겁게 젖고 발은 진흙에 빠졌다. 고양이는 중얼거렸다.
“자유란 이런 건가… 스스로 선택했으니 스스로 감당해야지. 하지만… 누군가의 손길이, 이렇게 그리울 줄은 몰랐어.”
그 순간, 한 아이가 우산을 들고 지나가다 떨고 있는 고양이를 발견했다. 아이는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괜찮아?”
하지만 고양이는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섰다. 사람의 손길을 갈망하면서도 쉽게 내어줄 수 없는 자유의 자존심 때문이었다.
비가 그치고 아이가 사라진 뒤, 고양이는 젖은 몸으로 성곽 위를 걸었다.
“강아지는 주인의 선택을 받아 살아. 나는 아직, 내가 믿고 의지할 집사를 스스로 선택해야 하지. 그게 내 길이야,. 먹을 걸 구하려면 결국 인간을 분석해야지.”
고양이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오 간식족이야. 저 젊은 여자는 가방에 추르 두 개를 들고 다녀. 다만 절대 한 번에 안 주고 조금씩 짜내며 날 놀려. 점수 80점.”
“저 아줌마는 참치캔을 꺼내. 캣맘 귀족이지. 향이 퍼지면 이 구역 고양이들이 줄을 선다니까. 점수 95점, 단점은 경쟁률이 높다는 거.”
“저 남자는 늘 날 만지려 하지만 먹을 건 한 번도 준 적 없어. ‘야옹아’ 하고 부르지 마! 빈손인 건 금세 알아보지. 점수 10점.”
고양이는 꼬리를 치켜세우며 씩 웃었다.
“결국 인간도 내겐 밥을 주느냐, 안 주느냐로 나뉘는 법. 지위도 돈도 상관없어. 내 밥그릇을 채워주는 손길이 진짜 손길이지.”
다음 날, 햇살이 성곽 위를 비췄다. 젖은 돌담이 반짝이고 풀잎마다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산책 나온 강아지가 고양이를 발견했다.
“괜찮아? 어제는 어디서 잤어?”
강아지가 걱정스럽게 묻자, 고양이는 젖은 털을 햇빛에 말리며 대답했다.
“힘들었지만 버텼어. 그리고 깨달았지. 언젠가는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을 집사로 내가 직접 선택해야겠다는 걸.”
강아지는 꼬리를 흔들며 말했다.
“넌 집사를 고르고, 난 주인에게 선택받았어. 다르지만… 결국 각자 행복을 찾는 거겠지.”
고양이는 성곽 위에 몸을 일으키며 웃었다.
“자유는 외롭고, 사랑은 구속되지만… 결국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누군가에게 다가가게 돼.”
바람이 불어와 물방울 맺힌 풀잎이 흔들렸다. 고양이는 빛 속으로 걸어갔고, 강아지는 주인 곁에 서서 그 뒷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퇴근하는 길에서 만난 성곽 길고양이와 주인의 도움을 받아 산책하는 강아지를 바라보니 문득 질문이 떠 올랐습니다.
인간을 관찰하며 추르와 참치캔을 먹는 고양이와 인간의 보호 속에서 안정적으로 살아가는 강아지의 삶을 대비해 보니 안정적 행복과 의지적 자유가 충돌하고 있었습니다. 마지 철학자 에피쿠로스와 니체처럼 두 존재의 대화와 경험은 동물 이야기를 넘어, 우리 인간의 삶을 비추는 철학 이야기였습니다.
강아지는 주인의 돌봄 속에서 안정된 행복을 누리며 살아갑니다. 이는 에피쿠로스가 말한 안락의 철학과 닮아 있습니다. 반면 고양이는 불안정하고 고단한 삶을 감수하더라도 자유를 택하는데, 이는 니체가 강조한 의지적 삶, 자기 극복의 길을 보여줍니다.
폭우 속에서 고양이는 피할 곳을 찾아 떠돌며 “이 길을 선택한 건 나”라며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실존주의가 말하는 것처럼, 자유는 단순한 해방이 아니라 스스로 책임을 짊어지는 고통스러운 선택이기도 합니다.
이 동화는 결국 어린이와 어른 모두에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