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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율 Oct 26. 2023

백화점에서 일하는 아줌마

백화점에 가련한 을로 입사했다.

2020년 뜨거운 여름날 나는 집에만 있기 지겨워지기도 하고 아이들도 각자 학교로 학원으로 고나면  집안일은 부지런을 떨면 오전에 거의끝이 났다. 그래서 때론 오후 시간이 매우 한가하게 남아돌았다.

저녁밥으로 먹을 요리하나 정도를 만들고, 밥이 떨어졌나 획인하고 밥 하기를 하면 그뿐. 물론, 그런 일도 요리가 서툴거나 하면 꽤 시간이 걸리는 일이긴 하다.  하지만, 그때 나는 제법 숙련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 일이 끝나고 난 뒤에 남는 한가로운 오후 시간이 매우 아깝게 느껴졌다. 이 시간에 어디 나가서 단돈 50,000원이라도 벌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때는 내가 암환자가 될 거라는 생각은 못했고, 매월 50만 원 이상의 아이들의 학원비가 부담이 돼서  돈만이라도 어떻게든 내 힘으로 해결하고 싶었다. 외벌이 살림에  아무리 아껴 쓰고 아껴 써도 답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여기저기 아르바이트 이력서를 넣어보기 시작했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은 그저 작은 사무실이라도 감사하게 다녀보자라는  생각이었는데, 오랜 경력단절과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나의 커리어로 낙방하기 일쑤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연락이 온 곳은 백화점이었다. 아동복판매하는 곳이라고 하는데, 갑질이 늘 만연하고 일상처럼 되어버린 그곳에 난 거부감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그 거부감을 이기는 것은?

돈이었다.

일단 면접을 보기로 했다. 도착한 곳엔 매니저가 나와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경력도 없는 날 보자마자

"언제부터 일 할 수 있으세요?"

라고 물었다.

난 언제라도 가능하다고 얘기했는데 해보지 않은 일에 대한 두려움과 극 내향적인 내가 웃으면서 사람들을  상대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뭐.. 에라.. 모르겠다. 간다고 했으니 가야지.. 안 맞으면 그만 두면 되고..라는 마인드로 첫 출근을 했다.

하지만, 이것이 큰 오산이었다.




어느 날, 엄마와, 친정어머니 그리고 손녀들을 대동하고 옷을 사러 오신 분이 있었다, 친정어머니뻘 되는 할머니는 옷 두 가지를 주문하고는 빨리 사이즈를 찾아달라 성화를 부리셨다, 세트로 판매되는 옷이 이쁘다고 하면서 그 옷을 찾아달라기에 찾아서 갖다 줬더니, "아니 이 옷은 안 한다고 아까 말했는데 왜 줘요?"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 네. 알겠습니다"

하고 매니저에게 "어머님이 그 옷은 안 하신다고 하셨어요"

라고 말하자마자 젊은 엄마가 "아니 언제 안 한다고 했어요? 갖다 달라고 분명히 말했는데? 왜 일을 이런 식으로 하세요? 아~! 진짜 기분 나빠서!" 매니저를 보며 "직원 교육 이렇게밖에 못해요? 아니 왜 이렇게 불친절해요?"

하아.. 너무 훅들어온 불친절하다는 말이 상처가 되었다.

난 그때 얼굴이 상기되고 너무 화가 나서 어쩔 줄 모르고 그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같이 오신 어머님이 그 옷은 안 하겠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다고, 내가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고, 불친절하게 대하지도 않았다고 말했어야 했다. 아니면 그 진상손님에게는 그에 합당한 대우가 필요했는데, 나는 너무 고분고분한 고개 숙인 아르바이트생이었다. 거기다 매니저는 대신 사과하고 나서 그 손님들이 나가자 "언니 담부턴 좀 친절하게 대해주세요"

라고 하는 것이다.


손님이 안 사겠다고 해서 안 하신다고 전한 것뿐인데 거기에 친절과 직원교육을 운운하니 내가 여기서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나.. 눈물이 솟구쳐 오르려고 했지만, 나를 토닥이는 대신에 다음부턴 좀 친절하게 대하라는 매너저의 말에 정신이 바짝 들었다.


내가 친절하지 못한 것이 아니고 의사소통의 문제였던 것 같은데 무조건 직원의 잘못이라고 하는 사장이라면 그냥 이 매장에서 일을 더 오래 하는 것은 무리겠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엄마들의 요구사항은 최대한 반영하려 노력했다.


내가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손님이 불친절, 직원교육을 운운하니 나는 가련한 "을"이었다.


매장에서 물건을 부수고 잘못했으니 무릎을 꿇으라고 하는 장면을 뉴스에서나 봤지.. 내가 그 일을 당하고 나니 마음이 정말 처참하고 인격적인 모욕을 당하고 나니 남일 같지 않았다. 저분들의 심정이 오죽할까?


다 먹고살려고 하는 일이기는 하나 가련한 을의 입장은 돼 보지 않고는 모른다.


세상에 저런 사람도 있을까? 싶었는데 저런 사람이 있고. 내가 저런 일을 당할까? 싶었는데 저런 일을 당하고 있었다.



어찌어찌 마음을 추스르고 집에 왔지만, 다음날 다시 출근하고 싶 마음은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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