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진율 Nov 02. 2023

호칭은 뭘로 할까요? 매니저님?

나이는 어리지만 매니저랍니다.

이른바 진상손님을 겪고 난 뒤 난 한동안 그 시간 동안 일어났던 일들이 쉽게 잊히지 않았다. 더 정확히는 나 자신의 존재가 한낱 벌레만도 못한 상황에 처해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매일밤 어떻게 하면 그 손님에게 복수할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그냥 내 분노에 지나지 않았을 뿐, 실제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 지난 후 깨닫게 된 사실이 있었는데 그 진상손님의 얼굴이 낯이 익었다, 알고 보니 둘째랑 같은 초등학교라서 하교 때 한두 번 본 학부형이었다. 어쩐지 어디서 본듯하더라니. 세상이 참 좁고도 넓다. 


현장에서 이런 일을 당하면 적극적으로 보호해 줄 만한 제도적 장치가 없다는 것은 이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겐 늘 불안한 상황이다. 건의를 하면 나아질까? 주로 물건을 사는 사람은 고객님이고 물건을 팔아야 소득을 얻을 수 있는 입장이 백화점이다 보니, 어찌 보면 백화점도 을이다.


그날의 그 아줌마의 표정, 말투, 행동, 공기.. 그런 것들이 몸서리쳐지게 싫어서 출근이고 나발이고.. 하기 싫었지만? 그것을 이기는 것은? 뭐다? 지금의 내 경제적인 상황.


출근을 다시 했다. 나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어쨌든 매장관리자이고 나보다는 높은 사람이었던(?) 매니저의  호칭을 뭘로 해야 할지 민이 많았다.

나랑 동갑인 행사를 해주는 분은 편하게 호칭을 생략하고 필요한 이야기만 하는 듯했다. 때론 그냥 친구같이 반말도 섞어가면서.. 나는 처음이니 주위에 아는 사람이라곤 그 행사를 하는 그분뿐이었다. 모르는 게 있으면 조심스레 타이밍을 봐서  물어보곤 했지만 한 번도 한 번에 알려주는 법은 없었다.

좀 어이가 없었지만 텃세부리나? 생각하며 하고 싶은 말들을 참아냈다.



"근데 뭐라고 불러요?"

"매니저니까 매니저님이라고 부르면 되죠"

저들은 편하게 언니라고 부르면서 나한텐 극구 "매니저님"이라는 호칭을 부르게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텃세던 것 같기도.

백화점이란 곳이 생각보다 텃세가 심했다.

서로 손님상대해 가며 힘든 시간에 나와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같은 처지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겐 동료애나 동정심 같은 건 찾아볼 수가 없었다.

서로를 안타깝게 생각했으면, 내가 처음 백화점에 들어와 아무것도 몰라서 헤매고 있으면 자신의 그런 시절을 떠올려보며 도와 줄법도한데 그들에게 그런 마음을 기대하는 것은 사치였다.





회사라면 당연히 직급이 존재하고 나이가 어리든 아니든 수직적인 관가 성립한다.

하지만, 백화점에서 오래 일을 했거나, 한 매장에서만 일을 하는 게 아니라 행사일정이 잡힐 때마다 (그 사람들의 말로는 행사를 도와주러 오는 언니) 행사만 주로 하시는 분들도 있어서 다들 매니저님 보다는 편하게 ○○씨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었고, 그냥 브랜드 이름으로 부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백화점일이란 게 직원으로 있는 사람이나, 매니저로 있는 사람이나, 갑자기 아프거나 신상에 무슨 일이 생기면 5분 대기조처럼 전화를 걸어 나와달라고 하면 나가야 하는 상황이 많아서 서로에게 함부로 대하지도 못했지만, (부탁을 해야 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므로) 그렇다고 정중하게 대하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백화점에선 신입사원이나 마찬가지였고, 친근하게 부를 이유없었음에도 왠지 "매니저님"하고 부르는 건 싫었다.

그냥, 과장님, 부장님, 사장님은 되는데 왜 매니저님은 안 되는 걸까?


회사와 같은 수직적인 관계가 확실한 조직문화가 아니고 편의에 따라선 서로 친근하게 반말도 하고 그랬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에 비해 나는 마치 이방인처럼 그들 사이에서 겉돌고 있다는 느낌과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아르바이트생이니   더 깍듯하게 호칭을 제대로 러야만 할 것 같았다.

아르바이트생중에 "매니저님"이란 호칭은 오직 내 입에서만 나왔다.



매니저는 나름 내 호칭에 만족하는 듯했다.

그냥. "언니"보다는 호칭이 정해지면 그에 따른 책임도 져야 하기 때문에 나는 갑질 손님을 대한 이후로는 확실하게 매니저님이라는 호칭으로 책임소재를 분명하게 하고 싶어 졌다. 하지만, 책임이라는 것도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어야 가능한데 매니저들 중에 그런 사람을 찾기란 사실상 어렵다고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다른 곳은 모르겠으나 내가 있던 곳은 그랬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서도 나는 친근한 언니는 되지 못했다. 왜냐하면 나는 그들과 거리를 좁힐 생각이 전혀 없었다. 매니저로서 해야 할 일, 아르바이트생으로서 해야 할 일들을 선명하게 선을 긋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잠재적 갑질 손님에 대한 내 최소한의 마지노선이었는지도 모른다.




지금 생각해 보면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가도 모든 일에는 책임자가 필요한데 그런 면에선 내 선택을 조금도 후회하진 않는다.


그래서 곤란한 일이 닥칠 때면 그렇게 말하곤 했다.

"지금 매니저님이 안 계셔서 시면 얘기하시죠"라고!





이전 01화 백화점에서 일하는 아줌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