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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e Nov 02. 2021

밤 산책

(유서 혹은 이야기 - 1)


 





 운동을 핑계로 어두운 밤거리를 걷다 항상 같은 벤치에 쪼그려 앉는다. 그리고는 가로등을 보았다. 이 어둠을 밝히기에는 퍽이나 밝은 불이 주마등이 된 듯 내가 밝혀온 지난 삶이 떠올라 내가 기억하는 모든 이들에게 친구라 칭하고 속으로 유서가 될 수 있을 글을 써 내려갔다. 



 ‘살 수 있다는 말. 건강을 챙기겠다는 말. 그것들 모두가 거짓말이었어. 그렇지만 행복하단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지.



 내가 없거든 울지는 말아. 그 누구에게도 탓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니 말이야. 있잖아 친구야, 나는 나를 담았던 그 두 눈들을 빤히 바라볼 수 없을 때마다 점점 병 들어감을 느꼈어.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나를 담지 않는 눈들을 탓했었는데. 이제 나는 나를 담은 너의 두 눈을 내게 담기가 버거워졌어. 그렇지만 네가 나를 담았던 순간 덕에 이틀을 살았고,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나흘을 살았지. 잡지 않아도 잡아줬던 두 손의 온기에 울음이 터졌고, 그렇게 울음으로 터져 나온 우울을 잠시 보내고 그것이 다시 차오를 때까지 살았어. 



 내가 살아간 이유는 모두가 너의 덕이야. 내가 행복함을 느낀 순간들도 네 덕분이지. 스치는 계절의 향기. 바람이 옮겨주는 시간의 소리. 내가 보는 순간에도 바뀌는 풍경. 내 손끝을 지나는 보드라운 공기를 느끼는 것이 모두 나의 사람들 덕이지. 나는 이렇게나 사랑이 많은 사람인 것을 늦은 나이에 표현하고 토해 내었으니 그걸로 됐어. 네가 알 테니까. 그걸로 충분해. 


 죽지 못해 살아간다는 것이 이토록 괴롭다는 것을 말하지 못한 건. 내가 이 세상을 떠나보내고 싶다는 사실보다도 그 사실에 울던 너의 모습을 보고는 내가 울어버릴까 봐. 더 이상 울음으로도 토해내지 못하는 내 속내가 너무 초라해서. 내 작은 마음의 욕심 때문이겠지. 


 내가 나의 시간과 계절을 멈추고, 너의 시간이 흘러 나보다 나이가 많아지는 순간을 생각하면 어찌나 다채로울까 싶어. 나는 하루를 보내도 시간이 멈춘 지가 오래여서. 그게 너무 부럽기도 하다. 나의 고장이 난 시계의 톱니가 어디서부터 언제부터 잘 못 어긋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나의 시간인걸. 어쩔 때는 흘러가고 멈춰버리는 멋대로인 시계 말이야.


 사랑하고 사랑하는 사람아. 나는 흘러가는 시간을 멈추고 그 시간 속에서 보지 못한 것을 아주 자세히 볼게. 그 속에서 사랑을 말하고 울고 웃을 게. 그러니 너무 울지 말아. 울음이 터진다면, 나를 담았던 그 시선을 눈물로 흘려보내고 너의 멋진 세상을 살아. 네가 내 손을 놓은 적이 없으니. 내가 너를 놓은 것이니. 나를 탓하고 그렇게 살아. 난 행복했고 행복할 테니 이 글을 보는 너도 그러하길 바랄게'



 진심이 아닌 곳이 없었다. 내가 아는 나는 진심으로 누군갈 탓할 수 없었다. 모질게 나를 내리치던 손길. 경멸하던 눈길. 내 존재를 부정하던 말들을 온전히 내 속에 담아두며 아픔에 몸부림쳤지만, 나는 나조차도 미워할 수 없었다. 이런 내가 스스로 나를 끊어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눈물을 쏟아내며 유서가 되지 않은 유서를 쓰고 나니 속 시원함보다는 허탈함이 다가왔다. 




“참...”


 뒤이어 뱉을 말을 고민했지만, 어떤 말을 뱉는다 하더래도 마음에 척하고들 일은 없었다. 벤치에 앉아 사람들이 지나가는 동안에도 눈물을 훌쩍이며 나를 엿보는 그 시선들을 무시한 채로 글의 마무리를 지었다. 지나가는 이들에게 나라는 존재는 그들 기억 속에 십 분도 머물지 않을 벤치에 앉아 울고 있을 한 꼬맹이 일 것이다. 그것이 그들의 시선들이 불편하지 않은 이유였다.  그저 나는 울며 유서를 적어 내리던 벤치에 앉아있는 한 꼬맹이니까.




 대충 완성된 글을 다시 한번 읽었다. 내가 죽고 싶은 이유. 계속해서 삶을 떠나지 않는 이유. 그런 것 따위는 적혀있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이유가 될 수 없다. 그냥. 정말 그냥이었다. 해가 뜨고 달이 뜨듯이 말이다. 당연한 진리의 그냥.  


 드디어 벤치에서 엉덩이를 띄우고 일어났지만, 걸음은 떨어지지 않았다. 다리가 무겁지도 않았고 온몸이 무겁지도 않았다. 그저 쉬는 숨이 나를 짓누르는 느낌이 들었고, 그것이 나의 문제가 아닌 것처럼 무시하며 힘겹게 걸었다. 이렇게 무거운 숨을 들이켜고 내쉬며 주어진 명대로 살아가야 한단 말인가. 그렇게 그리 멀지 않은 집 앞을 향해 걷다가 멈추는 것을 얼마나 한 건지 어느새 집 앞에 다다랐고, 고개를 들어 옥상에 자리한 보금자리를 보았다. 



 보금자리인가. 그렇다 한다. 저곳이 저 자리가 내 보금자리라고 한다. 보금자리라 느꼈던 적이 있던가 생각했다. 있었다. 긴 여행을 하고 돌아와서 느끼는 안도감. 오랜 시간 들르지 않았더라도 금세 편해지는 냄새와 온도. 그렇다. 나의 보금자리구나. 그렇구나. 나의 숨통을 조여 오는 나의 장소가 나를 살리고 죽으라 했다. 아까 했던 말의 다음이 떠올랐다.




“어이가 없다.”


 들어가야 하지만 조금 버텨보기로 했다. 집을 올려다보던 시선을 살짝 옮겨 옆에 떠있는 달을 보았다. 확실히 달은 보였지만 그것의 크기와 색과 온도는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무엇을 알고 있는 건지. 알고 있긴 한 걸까. 알고 있는 모든 게 사실이기는 할까. 그것조차 알 수가 없었다.



 한참을 우울로 숨을 허덕일 때,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말이 안도감으로 다가오기도 했었다. 바닥을 보지도 천장을 보지도 눈앞에 창가 너머에 보이는 하늘을 보지도 않은 채로 몸에 힘을 놓고 겨우 숨만 허덕이는 모습이 퍽이나 육지에 누워있는 죽어가는 물고기 같을 때, 내 삶의 사랑을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가족, 친구, 연인 모두가 나를 사랑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나를 때리고 욕하고 부정해도 사랑하는 마음은 진실이었을 테니까 말이다. 받았던 사랑을 돌이켜보니 이미 문드러진 듯한 속에서 토악질이 나왔다. 받았던 사랑을 토하고 싶었다. 암만 구역질을 해보았지만 나오는 것은 없었다. 그리고 무엇도 미워할 수 없었다. 오히려 납득했다. 그들이 내게 그랬던 이유를 말이다. 



 하늘을 지나던 구름이 금세 달을 가려 보이지 않았다. 이제 집으로 들어가라는 뜻인 게 분명했다. 건물의 출입문을 지나 깊은 승강기에 몸을 넣어야 하겠지. 우선 당장 할 일을 그런 것이겠지. 생각을 따라 출입문을 지나 승강기에 몸을 구겨 넣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승강기의 문이 열렸고 나의 보금자리의 문도 열렸다. 숨을 들이켜고 가로로 누워있던 손잡이를 한껏 꺾어 문을 열었다. 그리고 다시 문이 닫혔고 나는 웃으며 말했다.




“안녕! 나왔어”

말을 던지고 바라본 그의 두 눈엔 웃고 있는 나를 담은 두 눈이 보였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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