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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e Jan 15. 2022

검은

소설


 그가  곁을 떠났다. 까만 길고양이 같던 그는 어둑한 밤이 되면 선명해진  눈동자가 빛나고, 소리 없는 걸음으로 나를 놀라게 하했다. 항상 여유를 부리며 햇볕을 이불 삼아  눈을  감을 때면 새까만  속눈썹이 유독 진하게 시선을 끌었다.  얼굴에 까만  눈동자. 새까만 머리와 정갈한 머릿결. 낮고 답답한 음성과 부드러운 손길. 대조되모든 것이 어우러지던 그는 한순간에 빛을 잃고 기력 없이 가쁜 숨을 들이켜고 있었다.


 병이라고 했다. 몸의 한구석이 아파 그의 빛을 앗아갔다. 빛나던 두 눈은 빛을 잃었고, 하얗던 살결은 그저 죽음을 띄고 있었다. 옅게 들이켜던 숨소리에선 곧 그의 삶이 흐려질 것이라는 사실을 계속해서 알려주었다. 나는 그의 손을 잡지 못했다. 잡기 싫었다. 그가 곧 죽는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싶었다. 떨어지지 않는 내 시선을 느낀 건지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흐린 눈으로 나를 보며 그가 말했다.




"잘 지냈어?"



 나는 그의 말에 어떤 표정으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시선을 떨궜다. 잘 지냈다고 말을 하는 게 맞을까.


"나는 잘 지냈어"



 식어가는 온도를 안고 있으면서 잘 지냈다고 하는 그의 말에 울음이 나의 목소리를 막아섰다. 대답 없는 내게 시선을 거두며 그는 피곤한지 눈을 지그시 감았다. 감고 있는 그의 눈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나도 잘 지냈어"


 두 눈을 감을 채로 그는 웃어 보였다. 그리곤 옅던 숨소리는 조금 더 잦아들었다. 손을 뻗어 힘없는 그의 손을 잡았다. 앙상하게 말라버린 그의 손이 낯설었다. 모든 색을 품고 있던 사람이 지금은 오직 죽음만 담고 있는 그 모양새가 어색했다. 그가 아닌 거 같았다. 아니길 바랐다. 죽음 앞에 선 그는 평안한 표정을 하며 죽음이 다가오는 시간을 태연하게 기다렸다. 하지만 정작 그의 곁에 있는 이들이 두려움에 가득 차있었다. 두려워하는 다른 이들을 초연하게 달래주는 이상한 분위기에 하나둘씩 울음을 터트렸다. 그는 그 모습들을 보며 실소를 터뜨렸다.


 "내가 가는 건데 네가 왜 울어. 잘 지낼 거잖아. 나도 잘 갈게"


그가 입을 열 때 유독 조용해진 세상에 그 낮은 음성에 울림이 커졌다. '잘 갈게' 목소리를 타고 닿은 그 울림이 귓가에 맴돌았다. 그 단어가 어째서 '마지막'이라고 들리는 걸까. 종종 우리는 우리의 마지막을 그리곤 했다. 우리의 마지막. 생의 끝에 서서 처음처럼 악수로 마지막을 장식하자는 그 약속이 떠올랐다. 그럴 수 있을까. 처음처럼 잡고 있는 우리의 손을 바라봤다. 우리의 두 손이 너무나도 상반됐다. 생기를 머금은 손과 어두워지며 생기를 잃어가는 서늘한 그 손. 그 모습에 움찔하며 손에 힘이 들어갔다. 내가 살짝 힘을 줄 때마다 그도 손을 움찔거렸다. 아직은 살아 있다는 듯이. 그는 살아있다. 아직



 그가 담고 있는 삶이 시간에 따라 날아갈 때마다 그의 살결도 점점 푸석해졌다. 정말 마지막을 고할 시간이 바짝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잡고 있는 손엔 바짝 힘이 들어가고 그는 숨을 크게 몰아쉬었다. 말 없는 적막 속에 그의 낮은 음성이 들리는 듯했다. 모두를 위로하고 이제 눈을 감을 것이라는 듯이 나의 작은 반응에 그는 나름의 반응을 보였다. 감은 눈을 움찔거리거나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새끼손가락을 움찔거렸다.


 나는 그의 손에 이마를 가져다 대고 두 눈을 꼭 감았다. 그리고 기대를 품었다. 그를 대신해서 빌었다. 정말 기적적으로 그에게 생기가 돌아오기를. 아니면 나의 삶을 나눠줄 테니 조금 더 같이 살아갔으면 하는 불가능한 기대를 품었다. 그런 기대감이 커질수록 가슴이 뜨거워지고 숨이 거칠어졌다. 기대가 눈물로 흐르고 나를 떠나갈 때, 그도 우리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편히 눈을 감았다. 떠나버린 그에게 품는 그 비현실적인 기대감이 더 현실같이 진해졌고, 그가 없는 내 현실이 더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혹이 이것이 꿈이 아닐까. 그냥 내가 미쳐버린 것이 아닐까. 혹시 아주 긴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의 고리에 또 다른 고리를 이어 붙일수록 현실은 날카롭게 나를 베었다. 모든 기대에 아니라는 답변이 서늘하게 나를 찌르고 나는 그 아픔에 다시 한번 울고, 또 그 미련의 기대를 품고 또 품었다. 이 고통이 익숙해질 때까지 아파볼 생각으로.


 그가 없는 다음 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카시아꽃 향이 나를 감싸고, 초여름의 밤이 어슬하게 추운 그가 없는 나의 세상은 모든 것이 날카롭게 아팠다. 사랑하는 꽃향기가 눈물이 되어 흐르고, 어둑하게 감싸는 깊은 밤이 시리게 춥다. 그리고 나는 이 고통이 익숙해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어제보다 익숙한 아픔이 느껴졌고, 그의 모든 것이 흐려지고 있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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