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ne Jan 07. 2022

손목

소설






네가 내 세상에 들어왔던 건 겨우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무슨 손목에 상처가 이리 많아’


 나는 사실대로 말하지 못했다. 네가 쓰다듬고 있는 그 상처는 고양이가 아니라 내가 낸 것이라고. 나의 비극으로 연애를 시작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네가 지나가듯이 건넨 걱정 하나가 무거운 마음을 쉽게 움직였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것이 나의 삶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시작을 나의 거짓으로 시작한 이유 때문이었을까. 나는 나의 맘을 계속해서 돌아보았다. 너무나도 쉽게 움직이는 마음 따라 나의 삶도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 불안했다. 곧게 서있는 나를 너는 그토록 쉽게 무너트렸다. 이것이 사랑이냐며 여러 번 되물어보았다. 되물어 볼수록 사랑을 부정하는 나 자신을 마주해야 했고, 이것을 사랑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덮을 수도 없다는 사실 또한 선명해졌다.


 상처 나의 상처. 스스로를 깊게 베고, 그 벌어진 상처 틈을 멍하니 바라보는 나 자신이 떠올랐다. 지루한 자기 연민이라 비난해도 나는 할 말이 없었다. 그 순간에 나 자신만이 스스로를 연민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과 그 지루하고 연약한 자기 연민으로 그 하루를 버텨 이렇게 살아있었으니까.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말을 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돌아간다고 해서 다른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날의 멈추지 않던 붉은 피 덕분에 나는 눈물을 멈췄고, 피가 멎었던 그 순간 나는 다시 눈을 떴다. 그 후로 나는 깊은 밤에는 나의 손목을 돌아보지 않는다.


 모든 것을 끝을  나는 다시금 생각한다. 너를 떠올리고 지나간 순간을 그린다. 너에게 끝을 건넨  순간에 돌아간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 거냐고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그리고 대답한다. 다른 선택은 없었을 것이라고. 그리고 되돌렸던 우리의 기억을 또다시 추억하지 않는다. 추억하는 것은  번으로 충분했다. 그렇게 추억을 흘려보내고, 사랑이라 말했던 감정을 보낸다. 그리고 사라지겠지. 손목의 상처도 점점 흐려지고, 사라져 가고 있었다.


 상처는 생각보다 빠르게 잊히고, 사라진다. 점점 옅어져 가는 것을 모를 정도로 천천히 흐려지지만, 문득 생각이  상처를 직면하는 순간  생각보다 빠르게 사라져 있었다.



 한참을 창 밖을 보며 지나 보낸 인연을 생각했다. 하늘을 바라본 채로. 정확히는 하늘을 바라보는 척을 하는 채로. 그저 시선만 하늘을 바라볼 뿐 나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뜬 눈으로 지나간 인연의 사람을 그리며 추억하고 멈추길 반복했을 뿐이었다. 그 생각 속에 맴돌고 있을 때, 뜬금없이 검고 흰 새가 나의 정적을 깨웠다. 괜스레 반가운 마음에 그 새가 날아가기 직전 황급히 핸드폰의 카메라를 켜고 사진을 찍었다. 웃음이 나왔다. 까치가 날아가는 모습과 회사 창틀에 앉아있는 모습을 카메라로 담을 수 있어 순간 행복해졌다.


‘손님이 오실라나’


 조용히 혼잣말을 했다. 까치를 보면 손님이 오신다는데, 이왕이면 반가운 손님이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그 손님이 오실는지 안 오실는지 모르겠지만, 괜스레 마음이 반가워졌다. 이름 모를. 오실지 모를. 그 손님이 반가웠다. 하지만 이것도 곧 까먹을 기억이겠지. 이 까치가 물어온 소식을 까먹어야 이름 모를. 오실지 모를. 그 손님을 더 반가워할 수 있을 것이다. 순간의 반가움을 잊고, 만약 그 손님이 나를 찾아온다면 나는 까치가 물어온 잊힌 기억을 되살려 더욱 반가워할 수 있겠지. 눈을 감았다. 지나가는 기억을 굳이 붙잡지 않았다.


사라지고,  잊히고, 흩어진다.


나는 그렇게 삶을 살았다.

아등바등 빌며 이어갔던 인연의 고리는 눈물에 삭아 사라졌고, 그 순간 아픔에 흘렸던 눈물의 기억은 잊혔다. 그리고 그때의 우리는 그대로 흩어졌다.

 인연이라는 말이 순간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것 또한 그날이었다. 결국 모든 것이 흩어져 감정조차 남아있지 않은 채로 그 사람에 얼굴을 보던 날.

 그 후로는 모든 순간에 애를 쓰되 지나는 것들을 붙잡지 못했다. 나는 그렇게 종종 다시 무거워진 마음을 안고 지나간 것들을 생각한다.


작가의 이전글 오동나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