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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e Mar 31. 2022

낭만주의자의 꿈

소설





 아주 어두운 밤. 어제였던 건지도 모를 밤, 도란도란 나란히 창가에 앉아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더 추워질 가을의 날씨를 한걸음 더 느끼고 조금 더 웅크린 나의 어깨에 다정하고 포근한 당신이 나를 데워주었다. 차가운 날씨가 살갗을 에워싸지만, 술기운 덕분인지 당신의 따스한 체온 덕분인지 모를 따스함이 속을 데우고 몽롱한 어두운 밤에 취해 붕 뜬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별다른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당신이 곁에 있다는 이유로 나의 입꼬리는 내려오는 법을 까먹었다. 사랑이란 말을 까먹어도 괜찮을 정도로 사랑하는 우리의 어느 밤. 창가 너머로 보이는 남색 빛 하늘엔 별똥별이 하나 떨어졌다. 몽롱했던 나의 두 눈은 금세 정신을 차리고 토끼 눈을 뜨며 그를 돌아보며 성급하게 말을 뱉었다.


"별똥별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어요?"

"보았어요"


 호들갑스러운 나의 모습이 우스운지 눈이 휘어지게 웃는 당신 덕분에 나는 차분함을 되찾았다. 그리고 별똥별에 따라온 진부한 이야기를 뱉었다.


"아깝다. 소원을 빌었어야 했는데!"

"소원이 있어요?"

"없어도 있는 척 빌어야 해요. 아깝잖아"


 당신의 눈이 한 번 더 휘어지고 어린아이 마냥 아까워하는 나를 ‘허허’ 웃으며 달래주며 맥주를 한 잔 더 권했다. 나는 한 번 더 아쉬워하며 새로 온 맥주잔에 물방울이 맺히기도 전에 반을 들이켰다. 딱히 빌어서 이루어질 것이라는 보장도 없지만, 괜히 없는 소원을 빌지 못한 것에 분했다. 그 잠깐의 아쉬움을 맥주 한 잔으로 내려보냈다. 나는 그 아쉬움을 금세 잊어버리고 내 곁에 숨을 몰아쉬는 당신을 다시 바라보았다. 그는 금세 내게 시선을 맞추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지금은 괜찮냐는 물음이 건너왔다.

그의 차분하고 조용한 목소리가 이 밤과 닮아 좋다. 고요한 오늘 밤에 꼭 어울리는 목소리가 사랑한다는 말을 기억나게 했다.


“사랑해요’"

 동문서답인 나의 말에 당신은 당황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이 조금은 약 올랐지만, 나는 그런 당신의 모습이 좋았다. 사랑했다. 급한 나의 사랑고백에 당신은 잠시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사랑해요"

 그 사랑한다는 대답보다 당신의 목소리가 좋아 나는 항상 조잘거렸고, 당신이 나의 조잘거림이 버거울 때는 능글거리는 모습으로 말을 하는 것이 힘들지 않냐며 말했다. 그리곤 나의 대답 대신 나의 수다스러움을 건네받았다. 낮고 차분한 조잘거림은 그저 사랑고백으로만 들렸다.


"별똥별이 아직도 아쉬워요?"

“조금은?"


 당신의 잔잔한 사랑을 들으며 나는 한 번 더 별똥별에 대해 생각했다. 어째서 큰 운석 덩어리의 마지막을 보며 다들 소원을 비는 것일까. 그 운석은 원치 않은 불길에 휩싸이고 이 땅에 닿기도 전에 사그라드는 운명을 지녔는데, 그 짧은 시간에 우리의 소원을 들을 수나 있을까? 그의 슬픈 운명을 보며 내가 감히 소원을 빌어도 되는 것일까?

생각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니 당신의 차가운 손이 나의 볼을 감싸며 눈을 맞췄다. 그리곤 소리 없는 물음으로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당신이 조그마한 눈을 억지로 크게 뜨는 조금은 우스웠다.


“바보 같아"

"나? 아님 너”

"나도 그렇고, 그렇게 바보같이 눈을 부릅뜬 너도"

“흠?"


 당신은 금방 눈을 게슴츠레 떴다. 그것을 또 그것대로 우스웠다. 그냥 원래대로 뜨라며 당신의 볼을 지그시 눌렀다. 그리고 당신이 궁금해하는 것을 조그마한 소리로 알려주려 입을 열었다.


"별똥별 말이야. 지구로 떨어져 사그라드는 과정인데, 거기에 소원을 빌어도 되나 싶은 생각을 하고 있었어. 들어줄 수 나 있을까? 이미 타서 없어진 자국을 내가 보고 있는 걸 수도 있는데 말이야."

"그러게. 그래서 다음엔 빌지 않게?"

"모르겠어. 다음에 또 본다면, 이 어여쁘다는 생각도 까먹지 않을까 싶긴 해"


 나의 말 끝으로 당신은 무언가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다.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기다리는 듯한 시선으로 남색의 빈 공간을 보았다. 다시 한 잔의 맥주가 가득 나오고 이번엔 맥주잔에 송골송골 물방울이 맺힐 동안 우리의 잔은 줄지 않고 있었다. 그러고는 그저 서로의 손을 조물 거리며 데워주며 시간을 보냈다.


 툭 툭 툭 거리는 소리가 유리창에 부딪치고 당신의 눈은 반짝였다. 맞잡고 있는 손을 바라보는 나를 깨우기 위해 그는 유리창을 손으로 톡톡 쳤다. 깨어난 나의 눈앞에는 비스듬히 그리고 가늘게 내리는 빗방울들이 보였다. 비가 온다는 예보 덕에 챙겨 온 우산을 다시 한번 확인하려 가방을 잡았지만 당신은 한번 더 유리창을 톡톡 두드렸다.


"별똥별"


 그의 뜬금없는 단어에 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비 말이야. 별똥별 같잖아. 하늘에서 떨어지고.. 또 빛나는 것도 같고"

"뭐야, 그게"

"불빛도 아니고,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하늘에서 떨어지고.. 무엇보다 소원을 백 개는 넘게 빌 수 있는걸?"


 그가 무언가 한참을 고민하던 생각이 이것이었다. 당신의 말을 듣고 내리는 비를 보니 별똥별로 보였다. 우수수 내리는 슬프지 않은 별똥별. 끝이 아니라 다시 내리는 지구의 별똥별.

나는 당신이 말한 별똥별을 보며, 손에 힘을 한 번 더 주었다. 그리고 참을 수 없는 욕심에 당신의 손에 살며시 내 입으로 끌어와 입을 맞추고 꼭 안았다.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한 사랑을 말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내리는 비를 별똥별이라 속으로 정했다.


 우리는 깊은 밤 별똥별을 맞으며 익다 못해 뭉그러지는 듯한 달달한 사랑을 고하며 별이 깔아준 카펫 위를 첨벙거리며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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