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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e Apr 18. 2022

오동나무

소설




  우리 집 앞에는 큰 오동나무가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말이다. 분주한 사람들 틈에 늘 그렇듯 덩그러니 서 있던 그 나무는 종종 무척이나 외로워 보였다. 지나가던 그 수많은 것들이 그에게 기대며 숨을 돌렸지만 이내 그 곁을 떠나는 것은 익숙한 풍경이었다. 나는 여러 번 바뀌는 계절을 그대로 맞이하며 서있던 큰 오동나무를 보며 자랐다. 창문 너머 아래 조금씩 크고 넓어져가는 그의 가지를 보며 계절을 알아차리고 시간의 흐름을 느꼈다. 한 번도 그 나무 아래서 그늘을 맛보았던 적은 없지만, 나는 매일 아침 그 나무가 잘 있는지 확인하며 종종 속으로 안부를 전하기도 했다.


 태풍이 몰아치던 한 여름날 그 나무의 흔들림을 보았을 땐 그가 대단해 보인다는 착각을 했다. 그날 세차게 그 나무를 괴롭히던 바람은 나무의 가지 끝을 부러뜨렸다. 부러진 아픔쯤이야 괜찮다는 듯 그 바람을 거스르지도 않고 되레 바람에 몸을 맡기며 이리저리 흔들었다. 그리고 바람이 사라진 다음 날에는 어김없이 이별을 약속한 만남을 품었다. 어김없이 그 자리에서 여러 아픔을 건네받아도 무던하게 받아들이는 그의 몸통엔 시간의 흔적이 상처라는 이름으로 자리했다. 그를 지켜보던 나는 해가 바뀌면서 그 나무가 그 자리에 있는 것이 당연해지다 못해 종종 그 존재를 잊어버리는 시간이 길어졌다. 더 이상 대단하다거나 불쌍하다거나 멋지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무심코 그 나무 앞을 지나가던 중 시끄러운 소음이 들려왔다. 어디선가 또 다른 공사를 하는 소리일까 하며 소리의 방향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소리의 시작점에는 오동나무의 가지를 자르고 있는 한 사내가 보였다. 튼튼해 보이는 한 가지에 의지하며 작은 가지들을 자르는 그의 표정엔 귀찮다는 표정이 진하게 서려있었다. 그는 얼굴을 찌푸리며 계속해서 톱질을 했다. 작은 가지 끝에 피어있는 꽃들이 그 날카롭고 거친 톱 끝에 무참히 잘려나갔다. 그것들은 생기를 머금은 채 그대로 땅에 널브러졌고 또 다른 한 사내가 그것들을 발로 짓밟으며 더 작게 조각냈다. 그 발길질에 오동나무의 꽃은 볼품없는 모양새가 되어 버렸고 큰 오동나무 또한 점점 볼품없이 변해갔다.


 그의 모든 가지가 바닥으로 내쳐지고 앙상한 밑줄기만 남았을 때의 사내들의 표정엔 미소가 가득했다. 이 나무를 다 베어버리고 막걸리 한 잔을 하자며 시끄럽게 웃어댔다. 드디어 시간이 새겨져 있던 나무 기둥에 톱질을 시작했다. 나무는 아무런 비명조차 지르지 않았다. 바람으로 가지가 꺾여 나갔을 때처럼 톱질에 몸을 맡기고 조금씩 흔들었다. 나무의 비명 대신 사내들의 입에선 ‘넘어진다!’하며 비명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말처럼 이내 그 오동나무는 나의 무릎보다 작아졌다.


 사람들이 사라진 후 나는 그 오동나무의 밑동 앞에 섰다. 오늘 아침만 해도 그늘졌던 곳에는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그의 주변엔 그늘을 만들어주던 가지들이 아무렇게나 흐트러져 있었다. 내가 살짝 발걸음을 옮기면 그것들은 다시 한번 부서지며 소리를 냈다. 툭. 투둑. 나는 그 오동나무의 밑동에 앉았다. 금방 잘려나간 그 나무의 밑동엔 물기가 맺혔던 것인지 나의 바지를 적셨다. 나는 그 물기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이 물기가 햇볕에 날아가는 그 시간을 조금이라도 늦추고 싶었다. 


 나는 머리 위에 있던 해가 사라질 때까지 그 나무 밑동에 앉아 그늘을 만들었고, 연신 잘려나간 단면을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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