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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e Apr 24. 2023

그 후

(유서 혹은 이야기 - 2)


 그는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같은 중고등학교를 붙어 다녔고 교실이 달라졌을 때도 쉬는 시간마다 칭얼거리는 목소리로 나의 쉼을 깨우기도 했다.




“또 자? 그만 자!”




 그의 목소리가 스쳤다. 눈앞에 눈높이를 맞추며 눈썹을 한껏 올리고 무언가를 바라는 얼굴이 번쩍하며 비췄다가 사라졌다. 

 내가 아는 그는 대부분 밝은 사람이었다. 언제는 멍한 내게 쉼 없이 재잘거리며 정말 아무 생각을 안 할 수 있냐고 골백번을 물어봤을거다. 그가 청소년을 벗어나 성인이 되고 나와 함께 술을 마시는 중에 잠깐이라도 멍을 때리면 정말 멍을 때릴 때는 아무 생각을 하지 않냐고 물었다. 자신은 생각이 꼬리를 물어 자는 동안에도 생각을 멈추기가 힘들다며 내가 신기하다는 듯이 웃었다. 




 밝은 그 아이의 색깔은 항상 신기했다. 어떨 때는 세상을 궁금하다며 작은 눈으로 검은 눈동자를 굴렸다. 온 세상이 알록달록 변하는 것만 같다는 습관적인 말을 뱉고는 이내 자신이 다 알 수 없을 거라며 궁금한 시선을 옮겼다. 그런 그의 시선이 궁금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애초에 궁금증을 길게 잡아끌지 않았다. 내가 물어보지 않아도 쉼 없이 조잘거리던 그의 목소리에 무엇이 담겼는지를 알아차리기엔 나는 너무나도 무딘 사람이었다. 그는 밝은 이야기를 할 때와 슬픈 이야기를 뱉을 때의 표정은 비슷했다. 항상 웃고 있었고, 슬픈 이야기에 울고 있는 이들을 어여쁘게 토닥이던 그 시선은 참 사랑이 가득했다.


 


“나는 지금 너무 행복해. 너랑 지금 시간을 같이 보내서 더 행복해”




 또다시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 더욱 선명하게 스쳤다. 고개를 돌려 그 목소리의 근원지를 찾았지만, 그가 곁에 있을 리 만무했다. 그 스스로 말하듯 사랑이 가득했다. 적어도 내가 그를 내 눈에 담았던 동안에는 말이다. 


 오랜만에 만나는 날에는 저 멀리서 손을 바짝 들고 이상한 춤을 추고 호탕하게 웃었다. 내가 그에게 다가가는 모든 순간에 산책 나가는 강아지처럼 제자리를 폴짝 뛰었다. 그런 촐랑거리는 면이 사랑스러운 사람이어서 가깝게 지낸 모든 이들은 그를 사랑하는 줄도 모를 만큼이나 사랑했다. 하지만 그를 사랑하는 줄도 모르는 그들의 마음을 한참이나 먼저 알아차리고 사랑한다며 습관처럼 말하는 그는 알고 보면 참으로 아픈 사람이었다.




 언젠가 나의 퇴근시간에 맞춰 잔잔한 전화를 울리며 건네는 그의 목소리가 유독 무거웠던 날. 수많은 이야기를 건네며 정말로, 진심으로 살아야겠다는 이유를 찾지 못 찾겠다는 말에 나는 바짝 놀라 처음으로 그에게 언성을 높였다. 


 “네가 왜 그런 일 때문에 그렇게까지 생각해야 하는 거야? 제발 너 인생만 생각하고 살아”


 조금 높아진 나의 목소리에 조금 더 밝은 목소리로 답을 건넸다.


 “다른 사람 때문은 아니지. 그냥 나 때문에 그런 거야. 그래도 난 살 거야. 아주 잘 살 거야. 그냥 잘 지나가겠지”



 으휴.으휴. 한숨을 뱉고 투닥이는 나의 말에 그는 나를  한참을 달랬다. 그때 내가 그 아이의 앞에서 울었다면, 그가 조금 더 살아갔을까? 그가 종종 자신은 거짓말을 잘하지만, 굳이 하지 않는다는 말의 뜻을 내가 일찍 알아차렸다면 그의 마음에 자리하던 눈물들을 모조리 바닥에 던져 버려줬을 수도 있을까? 결과적으로 그는 거짓말을 아주 잘하는 사람이었다. 그 거짓말들조차 다정했던 사람. 그래서 너무 화가 났다. 아무런 말로도 나를 찾지 않고 혼자서 어딘가 숨어서 울었을 그에게 그리고 그것을 몰랐던 나에게. 




 그가 없는 그의 방안에 찾아갔다. 그의 차가운 냄새가 남아있는 방안에는 모조리 그가 남아 있었다. 다시 화가 났다. 왜. 도대체 뭐가 불만이어서. 정말 알 수 없는 사람. 아주 멋대로인 사람. 그가 그의 시간에 머물기로 하고 나와의 시간을 떠나간 후에 그 흔한 장례식 따위도 치르지 않았다. 장례식을 하기 싫다는 그의 짧은 유서가 이유였다. 왜 그토록 사랑하는 사람들이 울음을 뱉어 낼 수 있을 장소를 마련해 주지 않았던 걸까. 나는 무슨 생각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그가 글을 쓰고 싶다며 읽었던 책들을 묶어 두었다. 그리고 얼마 없는 옷가지들을 들어 올렸고 그것을 쓰레기 마냥 비닐에 처박았다. 그의 물건들을 집어 드는 순간마다 그의 냄새가 진하게 올라왔다.

세상에.. 세상에나




 작은 휴지를 건네는 손이 눈앞에 비추었다 사라졌다. 작은 손. 적당히 노랗고 하얗던 말랑이던 손. 딱 봐도 그의 손. 만약 너라면 이 순간에도 울지 않아도 된다며 우는 나를 한참이나 바라보고, 울음이 멈추는 순간까지 나를 보고 있을 텐데 말이야. 자신이 살아가는 것조차 대단하다던 넌 무슨 생각이었을까.


 그 자리에 앉아서 차오르는 울음을 참았다. 금방 술병을 들고 짤랑거리며 술을 먹자며 흥이 난 네가 들어올 것만 같아서 울고 있을 수가 없었다. 오지 않을 그를 기다리며 가득 차있던 그를 정리했다. 이 모든 걸 다 태워버린다 했다. 그럴 수 있을까. 너의 주변 사람들 중에 이것들을 태워 버릴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너의 상처 위에 덮어두었던 반창고 따위에도 미련을 가지며 한참을 주머니 속에 두고 다니던 네가 그 마음을 가장 잘 알겠지. 우리들에게는 시간이 필요하다. 아주 많이도 필요하다. 네가 쓸모 없어진 반창고를 지니고 다녔던 시간보다도 훨씬 더. 너는 잊으라고 말했지만, 그러지 못하는 것은 모두 네 탓이다. 이게 다 너 때문이란 말이다. 




 결국 쓰레기봉투에 있던 모든 것들을 자리에 돌려두었다. 그리고 그의 책상에 앉아 그가 적어두었던 글들을 읽어보려고 그의 일기장을 집어 들었다.


 자신에게 못되게 굴었던 이들의 이야기를 적는다는 일기장에 ‘데스노트’라며 이름을 붙여주었다며, 적히고 싶지 않으면 잘하라고 했던 장난스러운 그의 말이 생각났다. 두꺼운 일기장의 표지를 넘겼을 때는 그 ’데스노트’라는 제목 대신 ‘유서 혹은 이야기’라고 적혀있었다.


모질지 못한 넌 능숙한 거짓말쟁이구나.



 한 장, 한 장, 그의 유서가 되어버린 이야기를 읽었다. 하나같이 슬픈 이야기들이 적혀있었고 그 글의 말미에 행복하다 말하고 괜찮다며 적혀있었다. 너는 슬펐던 걸까. 아님 행복했던 걸까. 조금 늦게 그를 알기 위해 일기장을 열었지만, 점점 더 너의 얼굴이 희미해졌다. 네가 세상에 존재했던 사실이 벌써 거짓말 같았다. 끝이 난 너의 일기장을 덮었다.




 그것이 너의 바람이었겠지. 그래 모든 게 너의 바람대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울던 이들은 밥을 먹고, 술을 먹고, 일을 하고 세상은 여전히 고요하게 시끄럽다. 너의 세상은 멈춰버렸는데. 속절없이 세상은 여전히 해가 지고 달이 뜬다. 나는 숨을 쉬고, 너는 숨을 담고 살아간다. 놓친 시간들을 다시 보러 간다는 너의 기나긴 여행에 내가 있겠지. 하지만 나의 세상에 이제는 네가 없다.

 아니 있다. 네가 내가 되어 있다. 그래서 이렇게 알 수 없이 속이 아픈가 보다. 네가 내가 되어 있어서 너의 그 아픔이 내게 담겨 있다.



 아플 때마다 너를 생각할게. 너의 말대로 나는 너를 생각하지 않도록 나의 세상을 살아갈게. 그렇게 잊혀질 수록 선명해진 너의 이름을 입에 올릴 수 있도록 내가 그럴게. 사랑한다. 알고 있을 테지만, 내가 한 번도 하지 않았던 말. 사랑한다.



-이전 이야기 :  https://brunch.co.kr/@anne209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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