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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토 Oct 23. 2022

난 절대 안 먹어! 미끄덩 꽁보리밥

세상에 절대는 없다. 맛을 보고 맛이 들고 맛을 붙였다.

나는 맛있는 음식과 맛있는 음식을 파는 곳 이야기를 하라면 몇 시간이고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원초적인 욕구에 충실한 인간이라는 것을 먹을 때마다 느끼는 평범한 보통사람이니까.

나는 가끔 끼니는 거르지만 ‘맛없는 음식은 먹고 싶지 않다’라는 생각을 강하게 하는 편이다.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에 관하여 말을 하다 보면 공통된 표정들이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맛있는 음식 이야기할 때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 보이고, 맛없는 음식 이야기를 할 때는 그와 다르다.


‘맛있다’라는 표현을 많이 쓰다 보니 궁금함이 일었다. ‘맛있다’의 사전적 의미는 뭘까?

찾아보니 ‘음식의 맛이 좋다.’라고 쓰여 있었다.

‘응? 이상한데? 이게 뭐야.’라는 생각을 하며 다시‘맛’이라는 단어로 찾아보았다.

‘맛’의 뜻은 음식 따위에 혀를 댈 적에 느끼는 감각이라고 적혀 있었다.

혀에서 느끼는 감각이라.

 

나는 스무 살 전에는 보리밥을 거의 먹지 않았다. 아니 먹지 않았다가 아니라 어릴 적 밥상에서 보지 못했다가 더 정확한 것 같다.

어릴 적 엄마는 당신 본인을 위해 보리밥을 간간이 했었다.

그때는 보리 품질이 떨어져 메밥을 하는 것보다 품이 더 많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거친 보리쌀을 깨끗이 씻은 후, 조리질로 돌과 겨를 걸러내 여러 시간 불리고, 한 번 삶아 익힌 다음 메밥을 할 때 삶은 보리를 섞어 밥을 했다.


이렇게 한 밥을 아버지는 단 한 번도 먹지 않았다. 절대로 아버지가 먹는 밥상에는 올리지 않았다.  

“맛대가리 없게 그런 걸 왜 먹어. 사람이 먹는 음식이 아녀!”

보리밥을 극도로 싫어했던 아버지는 보리밥에 대한 평가가 몹시 거칠고 혹독했다.

보리밥만 보면 오만상을 찌푸리던 아버지 때문에 엄마는 편하게 보리밥을 한 번 제대로 못 먹었다. 그런 아버지의 밥상머리 교육(밥상머리 교육이 맞나?) 때문에 나는 보리밥을 먹지 않았다.

어쩌다 먹게 되면 “윽”소리가 절로 나왔다.

보리밥의 거친 식감에 당황하고 혀에서 ‘또르륵’ 굴러 다녀 씹히지 않는 미끈 덩어리는 보리 밥알을 혀로 굴리다 결국엔 꿀떡하고 겨우 삼킨 기억이 있다.


‘그래, 아버지 말대로 보리밥은 맛없어.’


보리밥을 제대로 먹은 것은 스무 살 이후이다.

큰 오빠가 맛있는 것을 사주겠다며 양평 어느 식당으로 데려갔다. 보리밥과 청국장을 파는 유명한 식당이었다.


겨우 보리밥을 먹겠다고 서울에서 차를 타고 많은 사람들이 오는 것이 신기했고, 돈을 주고 보리밥을 사 먹는 것에 놀랐다.

그리고 오빠와 새언니가 아주 맛있게 보리비빔밥을 먹는 것을 보고 아버지가 떠올랐다. 오빠가 돈을 주고 보리밥을 사 먹는 것을 보고 뭐라고 할지 궁금해졌다.

그날 먹은 보리밥은 어릴 적 먹었던 것처럼 입안에서 미끈거리고 살짝 거칠었지만 식감이 좀 더 부드러워 먹을 만하다였다.

오빠 덕분에 보리밥의 맛을 보고 먹게 되었다.


그 후, 보리밥과 가까워지게 된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 어처구니없게도 결혼을 하고 남편이 좋아해서다.

남편은 더위에 지치는 여름날, 보리비빔밥을 먹고 싶다는 소리를 종종했다. 난 남편의 말에 보리밥을 가끔 하게 되었고 비빔밥을 해 먹었다.

“먹을 만 해?”

“응, 맛있어. 보리밥알이 톡톡 터지는 것이 맛있어. 그리고 씹을 때 잘 넘어가서 좋아.”

‘아! 혀 위에서 미끈덩하게 굴러다니는 것이 아니라 톡톡 터지는 느낌이구나!’

나는 그 말을 듣고 토도독 터지는 보리밥알의 식감을 느끼려 한 알 한 알 정성스럽게 먹어보았다.

혀 위에서 겉돌던 보리밥은 씹을수록 구수한 맛이 났다. 비빔양념장과 어우러진 보리밥은 말 그대로 술렁술렁 넘어갔다.

난 그렇게 천천히 보리밥의 맛을 알아갔고 지금은 그 맛을 제법 좋아한다.

나는 맛있는 음식 앞에서는 줏대 없는 인간이었다.

아버지가 싫어해 나에게도 당연히 맛없는 음식(강요된 편식이라고 변명을 해 본다)이었던 보리밥은 지금은 남편으로 인해 맛있는 음식이 되었다.

요즘은 보리쌀 품종이 좋아지고 다양해져 어렵지 않게 보리밥을 해 먹을 수 있고 밥맛도 아주 좋아졌다.

이렇게  편리한 세상이!

여름날, 입맛이 별로 없을 때 보리밥을 해 새콤하게 익은 열무김치와 상추를 손으로 뚝뚝 끊어 넣고 집고추장을 한 숟가락 푹 떠 그릇 모서리에 툭툭 쳐 넣고 참기름을 빙 두른 후 쓱쓱 비벼 먹으면 더할 나위 없는 한 끼 밥이 된다.






“엄마, 아버지는 왜 보리밥을 안 드셔?”

시간이 흐른 후 엄마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어릴 때 하도 먹어서 보기도 싫댜. 그때는 지금처럼 메밥하고 섞지도 않고 돌도 씹히고 겨도 씹히고 해서 먹기 나뻣써. 그리고 맨 꽁보리밥이었잖어. 니 아버지는 그거 먹고 탈도 잘 났댜. 그래서 꼴도 보기 싫댜."

 




“어릴 때 하도 먹어서 보기도 싫대. 그때는 지금처럼 메밥하고 섞지도 않고 돌도 씹히고 겨도 씹히고 해서 먹기 나뻣써. 그리고 완전 꽁보리밥이었잖어. 니 아버지는 그거 먹고 꼭 탈이 났댜. 그래서 꼴도 보기 싫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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