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 맛 내 맛도 아녀! 이걸 뭔 맛으로 먹어!
결혼을 하고 시어머니가 ‘간단하게 국수나 말아먹자’하면 심술이 났다.
내가 생각하는 국수는 간편하지도 쉽지도 않은 음식이었다. 너무 흔해져서 그런가? 사람들은 잔치국수 하면 라면 끓이는 것만큼 간단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밀가루가 너무 귀해 진가루라고 불리던 그 옛날 무병장수를 기원하고 결혼식, 환갑, 생일 등의 잔칫날 먹던 귀하고 특별한 음식이 잔치 국수다.
지금은 길가다 어느 분식집에서나 파는 값싼 음식이 되어 버려 아쉬움이 있다.
‘간단하게 국수나 말아먹자’라는 말은(누군가가 차려주는 밥상이 아닌 나 스스로 밥을 해 먹는 입장이 된 지금) 듣기 싫은 말 중에 하나가 되어 버렸다.
국수라는 음식이 그렇게 간단한가? 하면서 문득 엄마가 해 주던 국수 밥상이 생각났다.
세상에는 맛있는 국수와 맛없는 국수가 있다.
그중 맛있는 국수는 내가 해 먹는 국수이고 그다음이 새언니 잔치국수가 맛있고 그중에서도 가장 맛있는 국수는 국수 맛 집에 가서 돈 주고 먹는 국수다.
그리고 맛없는 국수는 엄마의 여름 국수이다.
어릴 적 더운 여름이 되면 엄마는 입맛이 없다며 국수를 자주 해 먹었다.
아버지와 나는 엄마가 해 주는 국수를 좋아하지 않았다. 특히 여름에 먹는 국수를 싫어했다.
이유는 맛이 없어서다.
엄마의 여름 국수는 삶은 소면을 시원한 맹물에 말아 청양고추 듬뿍 넣은 양념장을 쳐서 먹는 식이다.
점심상에 올라온 국수를 보고 아버지는 핀잔을 주기 일쑤였다.
“니 맛 내 맛도 아닌 이걸 먹으라고 준거여?”
“더운데 그냥 드셔.”
“윽, 엄마 너무 매워. 맛없어!”
“그냥 먹어.”
아버지와 나의 타박을 들은 엄마는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국수에 부었던 찬물을 따라내고 양념장을 걷어낸 국수 그릇을 다시 상 위에 올려놓고는 아버지 앞에 고추장과 참기름 아니면 들기름을 나에겐 간장과 설탕을 주었다.
그러면 아버지는 고추장과 참기름을 넣고 비비고,
나는 엄마가 간장과 들기름 설탕을 넣고 비벼주었다.
이렇게 세 사람은 제 각각 다른 종류의 퉁퉁 불은 국수를 먹었다.
화려한 고명도 맛깔나는 육수도 없이 맹물만을 부어 먹는 엄마의 국수는 소박하다 못해 덤덤하고 밍밍한 맛이었다.
어린 입맛에는 극한의 맛없음이었다.
엄마의 맛없는 국수 대신 맛있는 국수를 집에서 먹기 시작한 것은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였다.
오빠의 결혼으로 우리 집은 비로소 제대로 된 잔치국수를 먹기 시작했다.
형형색색의 고명이 올라가고 뜨끈한 육수가 들어간 국수를 먹게 된 것이다.
새 언니는 멸치 육수에 호박과 당근, 계란 지단 고명을 올린 잔치 국수를 해 주었다. 정갈한 모양새만큼 맛있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이 맛있는 잔치국수 한 그릇에 들어가는 노력과 정성을 보며 간단한 음식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언니가 해준 잔치국수로 인해 맛없는 국수에 대한 기억은 흐려지고 소면으로 만든 잔치국수를 좋아하게 되었다.
엄마는 더위를 많이 타고 비린 것을 먹지 않고 입이 짧다.
그런 엄마가 여름날 입맛이 없어해 먹던 맹물 국수를 아버지와 나는 온순하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어느 여름날, 엄마에게 갖가지 고명을 올리고 멸치 육수로 맛을 낸 국수를 해 준 적이 있었다.
“이런 것도 할 줄 알어? 이쁘게도 맹글었네.”
엄마는 내가 잔치국수를 한다는 것에 놀라고 국수의 담음새에 한 번 놀랐다.
“아이고, 맛있네. 별 걸 다 할 줄 아네.”
엄마는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말아준 국수 한 그릇을 맛나게 먹었다.
그 후로 나는 잔치국수를 맛있게 하게 됐다.
‘간단하게’ 소리만 하지 않는다면 나는 잔치국수를 기꺼이 해 가족들과 먹는다.
진하고 감칠맛 있게 멸치 육수를 내고, 가늘게 채친 호박에 새우젓 간을 심심하게 해 재빠르게 볶고,
소금과 다진 마늘로 간을 한 채친 당근 볶음, 다진 소고기에 진간장으로 양념을 해 고명을 만들고 곱게 채진 계란지단을 만들거나 계란 물을 만들어 놓는다.
마지막으로 바삭하게 구운 김을 부셔 김가루를 만든다.
잔치국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수를 삶는 것이다.
국수를 잘 삶지 못하면 아무리 맛있는 고명을 올려 먹어도 맛이 나질 않는다.
그만큼 국수 삶기는 중요하다.
국수만 잘 삶는다면 멸치육수를 부어도 비빔면을 해 먹어도 맛나게 먹을 수 있다.
냄비에 넉넉하게 물을 잡고, 팔팔 끓는 물에 국수가 엉기지 않게 넣은 다음, 물이 넘치지 않게 잘 지켜보다가 국수가 부르륵 끓어오르면 찬물을 두세 번 넣어 주기를 반복한다.
찬물을 중간에 넣어 줘야 면발이 쫄깃해진다.
눈으로 다 익은 것 같은 면을 한 두 가닥 꺼내어 먹어본다. 면발이 투명하고 손가락으로 눌렀을 때 뭉그러지지 않아야 잘 삶아진 것이다.
흐르는 찬물에 바락바락 잘 씻어내야 면발에 탄력이 생기고 밀가루의 텁텁함이 없어져 먹었을 때 깔끔한 맛이 난다.
잘 삶아진 국수를 돌돌 말아 그릇에 담고, 뜨끈한 육수에 토렴을 해주고, 만들어 놓은 고명을 올려 마지막으로 통깨를 살짝 뿌린다.
여름 호박의 달큰함과 소고기의 고소한 맛, 진한 멸치육수는 따로 양념장을 넣지 않아도 충분히 담백하고 맛있다.
이렇듯 국수 한 그릇 만들기의 과정은 간단하지 않다.
국수 한 그릇이라는 말처럼 하나의 그릇에 모든 것이 담기는 모양새가, 젓가락질 몇 번에 그릇을 비울 수 있어 간단하다고 말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가 해 주는 국수 한 그릇을 감사한 마음으로 먹을 수 있는 나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