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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로 떠나는 서해섬여행E4

(2020-06-03) 해제반도, 사옥도와 증도

by 이재형

본격적으로 신안 섬들로 가는 길에 구경삼아 <함평항>으로 갔다. 함평항은 항구라기보다는 방죽을 쌓은 해안에 그냥 배를 몇 척 대놓은 그런 느낌을 갖게 하는 항구이다. 항구로서의 시설은 거의 보이지 않고, 그저 방치된 지역에 배들이 몇 대 접안해 있는 듯하였다. 구경할 것도 없다. 대신 함평항에서 보면 저 멀리 바다를 가로지르는 큰 다리가 보인다. 영광군과 신안군 <해제반도>(海際半島)를 연결하는 <칠산대교>(七山大橋)이다.


<칠산대교>를 건너 <해제반도>로 들어갔다. <해제반도>는 얼핏 보면 섬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해제반도> 아래쪽이 무안군과 좁은 육지로 연결되어 있다. <신안군>은 전국의 기초지자체 가운데 특이하게 군 전체가 대부분 섬으로 이루어진 군이다. 신안군 가운데 유일하게 섬이 아닌 지역이 바로 <해제반도>이다. 해제반도에 들어가니 자동차 기름이 간당간당하여 집사람이 마침 주차장 근처에 있는 수협 지소에 들어가 혼자 근무하고 있는 직원에게 물었다.

"가까운 주유소로 가려면 섬 안으로 들어가야 하나요, 아니면 다시 섬 밖으로 나가야 하나요?"

"여긴 섬이 아녜요"

직원의 퉁명스러운 대답이 돌아왔다. 뭔가 좀 자존심이 상했다는 말투이다. 그렇지만 주유소 가는 길은 잘 가르쳐주었다.

칠산대교

해제반도로 들어가 계속 직진하면 <솔도>라는 작은 섬을 거치는 연육교인 <지도대교>가 나온다. 이 다리를 건너면 <사옥도>(沙玉島)이다. <사옥도>부터 본격적인 신안군의 섬이 계속된다. 그런데 서해의 섬, 특히 신안군의 섬들은 남해 쪽에 있는 섬들에 비해서는 섬이라는 느낌이 거의 들지 않는다. 남해의 섬이 바다 가운데 솟아 있고, 또 섬은 매우 가파르며 섬 중앙에 산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이곳 신안군의 섬들은 완만한 구릉에다 논, 밭이 연속되어 있으므로 육지와 구분이 잘 안 된다. 주민들의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한다고 한다.


또 남해안의 섬들은 주민들이 숙박업, 식당 등 서비스업을 제외하면 주로 어업에 종사하지만, 이곳 신안군의 섬사람들은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도로도 대부분 섬 가운데를 지나고 있어 주위에 바다가 보이지 않고, 산과 논밭 사이를 달리므로 이곳이 섬이라는 느낌을 거의 갖지 못한다. 섬 여행인데 이렇게 섬 기분이 안나다 보니 괜히 여행지를 신안군 섬으로 선택했다는 후회도 조금 든다.


사옥도를 거쳐 <증도>(曾島)로 갔다. 별로 볼거리가 없는 <해제반도>나 <사옥도>와 달리 증도는 비교적 볼 것, 체험할 곳이 많은 편이다. 증도는 또한 <신안해저유물>이 발견된 장소와 가깝다. <증도> 바로 앞바다에서 송나라 난파선이 발견된 것이었다. 14세기 중국 닝보에서 일본 교토로 향하던 중국 송나라 무역선이 이곳에서 침몰한 것으로 보이는데, 여기서 수많은 도자기 등 송대 유물이 발견되었다. 가히 보물선이라 하여도 좋을 것이다. 증도는 또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추어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슬로 시티>로 지정된 곳이기도 하다.


증도는 예로부터 물이 귀하여 물이 “밑 빠진 시루”처럼 스르르 새어 나가 버린다는 뜻으로 ‘시루섬’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한자로 시루 “증(甑)” 자를 써서 증도(甑島)라 하였는데, 세월이 지나다 보니 간단한 한자로 “증도(曾島)”로 변하게 되었다. 증도는 한자 뜻으로 풀이하면 “늘어나는 섬”이란 뜻이다. 증도 옆에는 <대조도>란 섬이 있었는데, 두 섬을 잇는 제방이 건설되고 또 그 사이에 대규모 염전이 개발되면서 대조도는 증도에 합병되어 버렸다. 이렇게 증도가 늘어나 버렸으니, 증도(曾島)란 선견지명을 가지고 만든 이름이라는 생각도 든다.


중도의 <짱뚱어 다리>로 갔다. <짱뚱어 다리>란 갯벌 위에 500미터 정도로 나무로 만들어져 놓인 다리를 말한다. 보통 서해안 갯벌에 가보면 수많은 게들이 바글바글하다. 그런데 이곳 갯벌에는 게는 거의 보이지 않는 대신 짱뚱어가 많이 서식하고 있다. <짱뚱어> 다리를 걸으며 갯벌 위를 보면 여기저기 많은 짱뚱어들이 기어 다니거나 펄쩍이고 있다. 햇빛은 쨍쨍 내리쬐지만 바닷바람은 서늘하다. 아주 좋은 곳이다. 걷기도 좋고, 공기도 좋고, 바다 풍경도 더없이 좋다. <짱뚱어 다리> 하나만으로도 신안군에 괜히 왔다는 후회가 금방 날아가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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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뚱어다리

우전 해수욕장이 좋다고 한다. 인가가 없는 조용한 해수욕장인데 백사장이 아주 길고, 모래도 곱다. 주위 경치도 아주 좋다. 백사장으로 내려가 걸어본다. 썰물 때라 물이 많이 빠졌지만, 이곳 증도의 다른 해변과 달리 갯벌은 보이지 않고, 바닷물까지 계속 백사장이 펼쳐져 있다. 모래가 아주 곱다. 동해안의 해수욕장의 경우 모래알이 굵어 한 여름에는 백사장 모래를 밟으면 뜨거운 돌을 밟는 듯이 발바닥이 매우 뜨겁다. 이곳 우전 해수욕장의 모래는 매우 고와서 그럴 염려는 없을 것 같다.


우전 해수욕장 한쪽 끝에는 <증도 엘도라도>라는 대형 리조트가 건설되어 있다. 증도 해수욕장이 대부분 백사장으로 이루어진데 비하여 <증도 엘도라도>가 들어서 있는 해변은 갯바위와 백사장이 어울려 있는 곳으로, 좋은 곳에 자리 잡았다는 생각이 든다. 황금향이라는 <엘도라도>, <증도 엘도라도>가 이름 그대로 사업으로 성공할지는 잘 모르겠다. 리조트의 자연조건은 매우 좋은데, 아무래도 증도라는 섬의 위치가 너무 외진 곳에 있어 리조트 이용객이 많을지는 모르겠다. 증도를 보고 나니까 비로소 신안군 지역 섬의 아름다움을 실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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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전해변

오늘 숙박은 무안읍에서 하기로 했다. 증도에서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가 해제반도로 가서, <칠산대교>를 건너지 않고 남쪽으로 길을 꺾으면 무안군과 연결된 길이 나온다. <해제반도>에서 무안으로 가는 길은 평탄하며 느긋하였고, 곳곳에 길옆으로 물 빠진 개펄이 보였다.


무안읍으로 오면서 숙소를 예약하려니, 예약 엡에 나오는 무안의 숙소가 거의 없다. 블로그 등을 이리저리 찾아보다 괜찮은 것 같은 모텔을 하나 찾았다. 전화를 하니 방 1개 남았다고 한다. 무안읍이라 해봤자 시골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무안읍에 들어가니 생각보다는 시가지가 제법 번화하다. 중심지에는 모텔이 여러 채 들어서 번쩍이고 있는데, 이런데도 방이 부족하다니 의아스럽다. 여기도 주택난인가?


무안의 특산품은 뭐니 뭐니 해도 낙지이다. 그것도 무안 갯벌에서 바로 잡힌 갯벌 낙지. 무안읍에는 <낙지골목>이 명소인데, 마침 예약한 숙소가 낙지골목 바로 근처이다. 짐을 풀고 <낙지골목>으로 갔다. 숙소에서 2-300미터 정도 떨어진 아주 가까운 곳이다. 길 양쪽으로 낙지 전문 식당이 거의 50개 정도가 들어서 있다. 어느 집이 좋을지 알 수가 없다. 메뉴 같은 것을 오래 보고 있으면 또 호객행위를 할까 봐 지나치면서 곁눈질로 대략 메뉴를 살펴보았다. 어느 곳이나 비슷한 것 같다. 그렇다면 아무 곳에나 들어가도 마찬가지.


한 식당에 들어가니 메뉴는 전부 낙지요리이다. 그런데 메뉴 판을 보니 값이 만만찮다. 대개가 한 접시에 5-8만 원 정도이다. 낙지 정식 같은 건 1인분에 5만 원이나 한다. 둘이라서 제일 값싼 5만 원짜리 낙지볶음을 시켰다. 요리가 나왔다. 양이 이 정도면 서울이나 세종시라면 기껏해야 2-3만 원 정도일 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주문한 것이니까 먹었다. 산낙지로 요리를 해서 그런지 식감이 아주 보들보들하다. 낙지 맛은 좋았지만, 볶음 양념 맛은 그저 그랬다. 잘한다고는 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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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안 낙지골목

반주를 걸쳐 낙지볶음으로 저녁을 마치니 배가 너무 부르다. 소화도 시킬 겸 근처를 산보하였다. 낙지골목에 처음 올 때는 몰랐는데 낙지골목 뒤편은 전통시장이다. 시장 안으로 들어가니 대부분 낙지 판매점 혹은 낙지 전문식당이었다. 이곳 전통시장 뒷골목에 있는 낙지식당들이 요리도 훨씬 낫고, 값도 쌀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만약 무안읍에 들릴 기회가 있는 분들이라면, 큰길 옆의 낙지식당들보다 그 뒷 편의 전통시장 안에 있는 낙지식당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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