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04) 영해도와 압태도, 그리고 천사대교
아침에 일어나 별로 입맛도 없어 아침밥은 가는 도중에 적당한 곳이 보이면 먹기로 하고 숙소를 나왔다. 오늘은 하루 종일 신안의 섬을 돌아다닌다.
신안군(新安郡)을 <천사의 섬>이라고 한다. 신안군은 독특한 지역으로 어제 다녀왔던 <해제반도>를 제외하고는 모두 섬으로만 이루어진 군이다. 신안군은 1,004개의 섬으로 구성되었다고 하여 <천사의 섬>이라 한다. 한반도에는 3,153개의 섬이 있고, 그 가운데 1,965개가 전남지역에 있으며, 또 그 가운데 1,004개가 신안군에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실제로 신안군에 속한 섬의 전체 숫자는 유인도 111개, 무인도 719개로 모두 830개라고 한다. 그런데 뭐 그런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신안군이 스스로 1,004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천사의 섬>이라 주장하니 그렇게 받아들이도록 하자.
무안군에서 신안군의 섬으로 이동하면서 집사람이 내게 "신안군"이라면 제일 먼저 무엇이 연상되는지 묻는다. 제일 먼저 "신안 해저 보물"이 떠오르고 그다음으로는 “섬”, "김대중 대통령", “이세돌” 등이라고 대답했다. 집사람은 "신안 소금"과 몇 년 전에 있었던 "여교사 집단 성폭행 사건"이라고 한다. 한 지역에 대해 나쁜 이미지가 한번 머리에 박히게 되면 그것을 회복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다.
신안군은 대부분 섬으로 이루어진 지역이다 보니 전국에서 아파트의 비율이 가장 낮은 지역이라 한다. 신안군은 과거에는 꽤 번성했던 것 같다. 1966년에 인구가 피크를 이루어 전체 주민수가 175,000명에 이르렀다는데, 지금은 43,000명 정도라 한다. 이러한 인구감소는 신안군뿐만 아니라 다른 군 지역도 마찬가지겠지만...
무안에서 출발하여 신안에서 첫 번째 만나는 섬이 <영해도>(永海島)이다. 그런데 영해도는 섬 같은 느낌이 전혀 나지 않는다. 바다를 건너온 기억도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영해도는 오래전에 이미 간척사업으로 육지와 연결되어 버린 것이다. 따라서 이름만 섬이지 무안군과 바로 육지로 넓게 인접해있다. <영해도>는 전혀 섬 같은 느낌이 들지 않고, 육지 다른 지역과 풍경도 비슷하고, 또 특별히 기록할 만한 특징도 없는 지역이다.
본격적인 섬 기분은 압해도(押海島)부터 나기 시작한다. <영해도>에서 남쪽 위 바다 위로 건설되어 있는 연도교인 <김대중 대교>를 건너면 압해도가 나온다. 압해도는 면적이 약 50평방 킬로미터에다 주민도 6,000명이 넘는 꽤 큰 섬이다. 압해도에서는 <천사섬 분재공원>이 볼만하다. 처음에는 분재공원이라길래 이런 섬 구석에 무슨 대단한 공원이 있을라구 라고 생각했고, 또 사진을 봤더니 조그만 공원에 분재를 몇 개 가져다 놓은 것 같았다. 별로 가볼 생각도 없었지만, <압해도>을 그냥 지나치기도 어쩐지 그렇고 해서 한번 가 보기로 하였다.
<분재공원>으로 가는 도중에 한옥단지를 짓는 것이 보였다. 아마 주택업자가 한옥을 지어 분양할 모양인데, 20여 채는 되어 보였다. 이렇게 외진 곳까지 누가 와서 비싼 한옥 집에서 살랴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건 모르는 일이다. 한옥단지가 건설되는 터는 얕은 언덕에 멀리 바다를 내려다보는 좋은 자리에 자리 잡고 있었다.
분재공원 입장료는 성인 3,000원인데, 65세 이상인 사람에게는 일단 3,000원을 받은 후 대신 3,000원짜리 <신안군 상품권>을 준다고 한다. 즉 입장료는 무료이지만, 그 대신 그만큼 신안군에서 소비하고 가라는 의미이다. 괜찮은 아이디어인 것 같다.
분재공원으로 들어갔다. 분재공원은 언덕에 조성되어 있어 입구로 들어가면 완만한 언덕길이 나온다. 길 양쪽으로 큰 수국 화분이 줄지어 있다. 푸른색과 주황색이 조화를 이루는 수국인데 잘 가꾸어놓았다. 예쁜 수국 길을 걷자니 내가 좋아하는 일본 가요 <당신은 수국 같은 유부녀>(あなたアジサイ人の妻)라는 노래가 생각난다. 수국 뒤편으로는 여러 종류의 좋은 나무들을 잘 가꾸어 놓았다. <분재공원>은 아직 완성되지 않고, 계속 건설 중인 것으로 보이는데, 건설이 거의 마무리 단계인 것으로 보인다.
조금 올라가니 이 공원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폭포정원>이 나온다. 인공 폭포를 만들고, 그 폭포 물길 사이사이에 여러 종류의 분재를 심었는데, 내 눈에는 아주 좋아 보인다. 폭포공원 뒷 쪽으로는 테마 별로 다양한 분재와 수석 등이 전시되어 있고, 윗 편에는 작은 미술관도 보인다. 그 외에도 울타리 나무를 경계로 여러 종류의 꽃밭들을 마련해두고 있다. 분재원, 온실, 습지보호구역, 초화원, 야생화원, 장미원, 작약원, 생태연못, 습지생태원 등 다양한 코스가 마련되어 있다.
공원이 생각보다 무척 크다. 이런 오지에 이 정도의 정원을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 놀랍다. 개인이 운영하는 곳인지, 아니면 지자체가 운영하는 곳인지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잘 운영되었으면 좋겠다. 이 방면으로 관광을 올 기회가 있는 분이라면 꼭 한번 둘러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렇게 지방을 돌아다니다 보면 문화, 관광시설들이란 것이 실망할 경우가 많지만 이렇게 생각 외로 좋은 곳도 종종 발견하게 된다.
압해도 다음에 있는 섬이 <암태도>(岩泰島)인데 유명한 <천사대교>로 연결된다. <천사대교>는 작년에 완공되었는데, 아마 인천 공항으로 가는 <영종대교>를 제외한다면 우리나라에서 제일 긴 연육교가 아닐까 생각한다. 길이가 무려 10.8킬로미터나 된다. <천사대교> 입구에 천사대교 전망대가 건설되어 있다. 여기에 들러 보니 저 멀리 까마득히 보이는 암태도까지 걸쳐있는 <천사대교>가 푸른 바다와 어울려 일품이다. 누구인지 잘 생각은 나지 않지만 옛 그리스 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 "자연은 인공과 어울릴 때 비로소 아름답다"와 비슷한 말을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천사대교>를 보자면 정말 수긍이 가는 말이다.
<천사대교>를 자동차로 건너는 데만 10분 이상 걸린다. 구간 속도단속을 하기 때문에 과속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암태도로 들어서자마자 오른쪽으로 <오도 선착장>이 나온다. 다리가 놓이기 전에는 선착장으로 이용되었던 곳인 것 같은데, 지금도 유람선 비슷한 배가 한 척 접안해 있다. <오도 선착장>은 이제 선착장으로서보다는 <천사대교>의 경치를 감상하는 곳으로 활용되는 듯하다. 선착장에는 관광객들이 편히 휴식할 수 있도록 여러 시설을 마련해두고 있으며, 선착장에서 보면 <천사대교>가 저 높은 하늘에 저쪽 섬에서 이쪽 섬으로 걸쳐져 있다. 오늘 벌써 분재공원에서 꽤 걸었으므로 다리도 쉴 겸 해서 선착장에 앉아 천사대교의 풍경을 감상한다. 오랫동안 지켜봐도 질리지 않는 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