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02) 암태도, 자은도, 안좌도, 자라도를 거쳐 목포로
암태도(岩泰島)는 <농민운동>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일제 강점기 시절인 1923년, 이곳 지주인 문재철이라는 사람이 소작농들에게 수확의 70-80%를 소작료로 걷어 들여 주민들의 생활은 파탄에 빠졌다. 마침내 소작농들이 참지 못하고 항의운동을 전개하였으며, 농민들은 항의를 진압하러 온 일제 경찰에 강력히 항거하였다. 재판소 앞에서 단식을 하기도 하였다. 그 결과 소작농이 승리를 하여 소작료를 40%로 낮출 수 있었다. 우리나라 농민운동의 효시로 알려진 사건으로서, 이후 농민운동의 출발점이 된다.
<에로스 서각박물관(書刻博物館)>으로 갔다. 박물관 이름을 봐서는 아마 성(性)을 소재로 한 박물관인 것 같다. 입장료가 3,000원인데, 이 역시 65세 이상인 관람객에게는 신안상품권으로 되돌려준다. 이곳은 과거 초등학교 자리인데, 주민의 감소로 학교가 폐교되면서 이 자리에 박물관을 지었다고 한다. 그래서 박물관 모습에 어딘가 학교의 모습이 남아있다.
입구부터가 심상치 않다. 남성기(男性器)를 묘사한 큰 장승이 입구 양쪽을 지키고 있다. 건물 앞 정원에는 여러 동물들의 석상이 만들어져 있고, 교미를 하는 큰 돼지 석상이 정원 한편에 놓여 있다. 아마 이 박물관을 상징하는 석상인 것 같다. 전시관은 2개가 있는데, 폭은 둘 다 10미터쯤 되어 보이고, 길이는 제1전시관은 50미터, 제2전시관은 30미터쯤 되어 보이는 길쭉한 모양의 단층 건물이다. 아마 옛 교실 건물이라 그런 모양이다.
제1 전시관에는 서예작품을 나무로 조각한 작품을 전시해놓고 있다. 여러 서예가들의 글씨를 양각으로 조각한 작품으로 글씨의 내용은 특별한 것이 없다. 옛 고전에 나오는 글이나, 성경의 글귀들, 그리고 시 등을 각자의 필체대로 쓰고, 이것을 나무판에 양각으로 깎아 채색한 작품들이다.
제2 전시관은 본격적인 에로스 박물관이다. 대부분의 전시품이 글씨와 그림을 양각으로 조각한 작품이거나 목제 조각 작품들인데, 그 내용은 모두 성과 관련된 것이다. 서각 작품뿐만 아니라 나무 조각 작품도 상당히 많다. 우리나라에는 옛날부터 성을 소재로 한 그림이나 글씨, 그리고 조형물이 그리 많지 않은 편이었다. 그래서 전시물의 대부분을 다른 나라로부터 수입한 것으로 채우지 않았을까 짐작했는데, 그렇지 않다. 모두 최근에 우리나라 작가들이 새로이 만든 작품들로서, 외국의 작품들은 찾아볼 수 없다.
20여 년 전 독일 베를린에 있는 <섹스 박물관>에 가본 적이 있다. 그때 먼저 그 규모에 놀랐다. 박물관은 3층으로 되어 있었는데, 한 층이 족히 몇 백 평은 될 것 같았다. 그 넓은 박물관에 동서양은 물론 아프리카, 남미, 남태평양의 섬들 등 전 세계에서 수집한 수천, 수만 종류의 성 관련 그림, 글씨, 조각, 영상물 등을 전시해두고 있었다. 특히 동양의 전시물로는 일본에서 만든 것들이 가장 많은 것으로 보였으며, 그다음이 중국, 인도, 동남아 순이었던 것 같다. 우리나라의 작품은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동양의 전시물은 춘화(春畫)가 압도적으로 많았으며, 중남미, 아프리카, 남태평양 등의 것으로는 돌이나 나무로 만든 크고 작은 다양한 모양의 남근상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발견한 재미있는 사실 하나. 에디슨이 활동사진을 처음으로 발명한 이후 불과 9개월 후에 세계 최초의 <포르노 영화>가 제작되었으며, 박물관에서는 그 작품을 상영하고 있었다. 인터넷이 빠른 시간에 그렇게 급속도로 세계적으로 확산된 것은 <포르노> 때문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성과 문화, 그리고 인류 기술발전과의 관계를 시사하는 재미있는 사례이다.
다시 <에로스 서각박물관>으로 돌아오면, 제2 전시관의 작품들은 재미 삼아 한번쯤은 볼 만하다. 대부분의 작품이 그리 퇴폐적이지도 음란하지도 않게 표현되어 있다. 여하튼 이런 외진 섬에, 그리고 그 속에서도 이런 외진 장소에 성 관련 박물관을 만들었다는 것도 창의성이라 할지 뜬금없다고 할지.... 평일이라 그런지 관람객은 나밖에 없었다.
암태도에서 11시 방향으로 자은도(慈恩島)가 있는데, 이 역시 암태도와 연도교로 연결되어 있다. 자은도에는 <무한(無限)의 다리>와 <분계해변>이 유명하다. <무한의 다리>로 가는 길은 좋지 않다. 가다가 몇 번 길을 잘못 들어 좁은 길로 들어가 고생을 하였다. 별 것도 없을 것 같은데 돌아갈까라고 생각도 했지만 이왕 왔으니 끝까지 가보자고 했다.
<무한의 다리>는 자은도 해변에서 저 건너편에 있는 작은 섬 <할미섬>까지 바다 위로 놓여진 해상 산책 보도이다. 바다 저 멀리 섬까지 산책 보도가 까마득히 연결되어 있다. 중간에 아주 조그만 섬이 하나 있는데 산책 보도는 이 섬을 거친 후 꼭 부메랑 모습과 같은 약간 굽어진 형태로 할미섬과 연결되어 있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어 땡볕이 내리쬔다. 그런데 해상 산책 보도를 걷자니 시원한 바닷바람이 불어와 거의 더위를 느낄 수 없다. 다리의 길이는 1,004미터라 한다. 나무로 평평하게 만들어져 걷기가 아주 편하다. 할미섬까지 가는데 15분이면 충분한 것 같았다. 땅 위에서 걷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걸을 수 있다. 이 시간이면 신안군 바다 주위는 썰물로 갯벌이 드러나 있어야 하는데, <무한의 다리>는 푸른 바다 위에 걸려 있다. 밀물 때라 그런지, 아니면 항상 바닷물이 차있는 지역인지는 잘 모르겠다.
집 주위에 이런 곳이 있으면 정말 하루에 몇 번씩은 산책을 즐기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까지 와서 이런 숨은 보물을 발견할 줄 몰랐다.
<분계해변>으로 갔다. 분계해변은 아주 넓은 백사장을 가지고 있다. 백사장의 길이가 길 뿐만 아니라 폭도 상당히 넓다. 모래는 더없이 곱다. 맨발로 걸으면 아주 좋을 것 같다. 분계해변은 다른 해변과 분위기가 아주 다르다. 햇빛이 내리쬐는 초여름 날인데도 불구하고, 바다 위에는 옅은 물안개가 서려있다.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산봉우리에도 옅은 안개 띠가 둘러져 있다. 어떻게 여기서만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지 궁금하다. 잔잔한 물보라가 항상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공기 중에 흩어져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해변을 따라 조성되어 있는 해송(海松) 숲에는 해안을 따라 산책로가 나있다. 고운 모래를 밟으며 백사장 저 끝까지 갔다가, 다시 해송 숲 산책길로 되돌아왔다. 물안개가 가져다준 서늘한 공기가 더없이 상쾌하다.
<팔금도>(八禽島)를 지나 <안좌도>(安佐島)로 이동하였다. 원래 여기는 <안장도>와 <가좌도>라는 두 개의 섬이었는데, 간척공사로 두 섬이 합쳐지게 되어 각각의 이름에서 한 자씩 가져와 이름을 <안좌도>라 지었다고 한다. 안좌도에는 <퍼플 다리>가 유명하다. 큰길을 달리다가 퍼플 다리 표시가 있는 오른쪽으로 빠져나가 한참 차를 달리니 갑자기 보라색 지붕을 얹은 작은 마을이 나온다. <퍼플 다리>라니 이 동네의 테마(theme)가 “보라색”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한참을 더 들어가니 바닷가가 나오고, 좀 더 큰 마을이 나온다. 모두가 보라색이다. 마을 지붕은 모두 보라색이며, 공공시설은 벽까지 보라색이 칠해져 있다. 심지어는 바닷가에 놓여진 리어카도 보라색으로 칠해져 있다.
<퍼플 다리>는 이전에 보았던 <짱뚱어 다리>나 <무한의 다리>처럼 바다 위에 만든 해상 산책로이다. 자은도 해변 저쪽에 <박지도>와 <반월도>란 작은 섬이 있는데, <퍼플 다리>는 자은도와 이들 두 섬을 연결한 해상 산책로이다. 다리는 온통 보라색으로 칠해져 있다. 다리의 길이는 앞의 두 다리보다 훨씬 더 긴 것 같다. <퍼플 다리>를 처음 봤으면 큰 감동을 느꼈을 것인데, 이미 <짱뚱어 다리>와 <무한의 다리>를 다녀왔기 때문에 감동은 덜하다. 그렇지만 비교하자면 앞의 두 다리보다 더 나은 것 같다. 다리 중간 정도까지 걸어 나갔다. 주위는 모두 갯벌이다.
오늘은 목포에서 숙박할 예정이다. 어둡기 전에 목포에 도착하려면 서둘러야 한다. 오늘 여행 코스에서 자동차로 갈 수 있는 마지막 섬은 안좌도 다음에 있는 <자라도>(者羅島)이다. 원래 이곳에는 자라도, 증산도, 휴암도 등 3개의 섬이 있었는데, 간척 사업으로 하나로 합쳐져 자라도가 되었다고 한다. 특별히 볼 것은 없었지만, 자동차로 갈 수 있는 끝까지 가본다는 마음에서 자라도 선착장까지 갔다. 자라도에서도 제일 끝자락에 있는 곳이다. 별로 볼 것은 없었다.
이제 목포로 가야 한다. 지금까지 왔던 길을 돌아간다. 천사 대교를 건너 압해도까지 가서 4시 방향으로 나있는 <압해대교>를 건너면 바로 목포가 나온다. 압해대교 이쪽의 압해도는 전형적인 시골 풍경이다. 그런데 길이 3.5킬로미터의 압해대교를 건너면 풍경은 일변하여 바로 수많은 산업시설이 뻭뻭히 입지 해 있는 목포 해안이 나온다. 마치 한 순간 과거에서 현재로 시간이동을 한 느낌이다.
숙박지는 목포 상동이라는 곳이다. 아마 목포시의 신도시인 것 같다. 바다에 연한 지역인데, 아파트, 상가 빌딩, 그리고 모텔들이 빽빽이 서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좋은 숙소인데, 값은 가장 싸다. 트윈 룸을 예약했는데 숙박비는 불과 4만 원으로, 이 정도였으면 법성포나 영광 같은 곳에서는 아마 7만 원 정도는 달라고 했을 거다. 그런데 투숙객은 거의 없어 보여, 우리가 숙박한 층은 우리가 유일한 손님인 것 같다.
목포에 왔으니 홍어를 먹어야 한다. 주위에 온통 식당과 술집인데, 신도시라 그런지 목포의 전통적인 식당은 보이지 않는다. 서울 강남이나 세종시나 내가 오래 살았던 일산의 번화가에 가더라도 젊은이들이 즐기는 현대식 식당 및 주점과 함께 푸근한 느낌의 좀 전통스러운 식당도 있기 마련인데, 여기선 도무지 그런 게 잘 눈에 뜨이지 않는다. 홍어가 아니면 남도식 정식도 좋은데 그런 건 없고 죄다 프랜차이즈 고깃집, 이자카야, 맥주집 등뿐이다.
한참 찾다 보니 큰 일식집이 하나 보이는데, 메뉴 가운데 삼합이 있다. 달리 선택할 곳도 없고 해서 들어가서 삼합을 주문하여 먹었는데, 맛은 그저 그랬다. 역시 전통 홍어집에 가야 제대로 된 맛을 보나 보다. 홍어 삼합에 막걸리 한 병으로 저녁을 대신했다. 이전에 일산에 살 때 집 뒤편에 <흑산홍어집>이라는 홍어 전문 식당이 있었는데, 그 집은 푹 삭힌 홍어회와 홍어찜이 일품이었다. 그 집에 비한다면 어림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