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1 국경을 넘어 베트남의 고도(古都) 후에로
이곳 사바나켓은 라오스 중남부 지역의 큰 도시로서 인구가 7만명이 조금 넘는 정도이며 제조업도 발달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이곳으로 오는 도중 큰 공장을 몇 개 본 기억이 난다. 그리고 가까운 볼라벤 고원은 커피의 주요 산지여서 이곳 사람들의 소득은 꽤 높다고 한다. 그리고 이 도시는 교통의 요지이다. 공항이 건설되어 있고, 라오스의 중부와 남부를 연결하는 거점이다. 그뿐만 아니리 베트남과 태국과의 버스 노선도 개설되어 있어, 국제 교통의 요충지이기도 하다.
사바나켓은 나와 특별한 인연이 있다. 얼마전 사바나켓은 도시 이름을 이 지역 출신의 정치인인 "카이손 폼비한"으로 변경하였다. 왕정을 종식시키고 초대 수상을 역임하여 라오스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지만, 나한테는 매일 수십번의 욕을 먹고 있는 바로 그 문제의 화폐 속의 인물이다. 라오스에 온지 벌써 보름이 넘었건만, 아직도 돈을 사용할 때는 앞으로 옆으로 뒤로 몇번이나 뒤집어서 금액을 확인한다. 오늘도 그는 벌써 내게 대여섯번은 직싸게 욕을 먹었다.
이곳 사바나켓에서 하루 정도 관광을 하고 떠나려 했으나 베트남으로 가는 버스가 아침 일찍 출발한다. 숙소가 많이 몰려있는 메콩강변으로 갔다가, 내일 아침 다시 이곳 터미널로 오는 것도 번거롭다. 메콩강은 이미 싫도록 봤으니까 그냥 베트남으로 가도록 하자. 1월26일 금요일 새벽에 다낭에서 인천으로 가는 비행기를 예약하였다.
다낭보다는 후에로 가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후에에서 이틀간 보내다가 목요일 저녁에 다낭 공항으로 바로 가면 된다. 세 시간이면 충분하다. 버스는 오전 8시에 출발한다. 요금은 35만낍, 주머니에 있는 돈을 모두 꺼내보니 33만 낍이다. 귀찮게 되었다. 새벽에 돈을 찾아야 한다. 근처에 ATM 기계가 보이지 않아, 아침 5시에 숙소를 나와 한 시간 반을 헤맨 끝에 겨우 10만 낍을 찾았다.
오전 8시, 후에 행 버스가 출발하였다. 후에까지는 약 450킬로. 그런데 국경으로 가는 길이 아주 좋다. 4시간에 250킬로 이상을 달려 12시 경에 출입국 사무소에 도착하였다. 국경을 통과하는데 2시간 정도가 걸렸다. 국경사무소마다 통과 방식이 달라 벌써 육로로 국경을 몇번이나 통과해 보았지만 여전히 혼란스럽다.
라오스로 들어올 때는 짐을 버스에 실은 채 몸만 국경사무소를 통과하였지만, 여긴 짐을 모두 들고 나와 통관을 하라고 한다. 내가 타고온 버스에는 외국 관광객이라고는 나와 서양인 청년 한 명 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현지 사람들이었다. 버스에서 짐을 꺼낸다고 꾸물거리다 보니 출국 수속이 제일 늦어졌다. 라오스 출국 수속과 베트남 입국 수속을 하고 나오니 함께 버스에 탔던 현지 주민들은 보이지 않고, 서양인 청년 만이 어찌하면 좋을지 몰라 당황해 하고 있다.
그는 버스가 통과해 나오는 곳에서 우리가 탔던 버스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그에게 비한다면 이젠 베트남 국경 통과에는 관록이 붙었다. 이곳이 아니라 출입국 사무소 밖에서 기다려야 한다고 알려주었지만, 그는 불안한지 계속 그곳에서 기다리겠다고 한다. 출입국 사무소 구역을 빠져나왔지만, 어디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어야 할지 알 수 없다. 이런 정보를 전혀 가르쳐주지 않으니 답답하기 짝이 없다. 한 시간 정도를 더 기다려 통관절차를 끝내고 나오는 버스를 탈 수 있었다.
후에로 향해 가는 도중에 휴대폰에 메시지가 뜬다. 지난 12월초 일본어능력시험(JLPT)을 쳤는데, 그 결과에 대한 통보이다. N1(구 1급)에 응시하였는데, 아주 좋은 성적으로 합격하였다고 한다. N1 전체 합격자 가운데 상위 5%에 해당한다고 한다. 당연히 합격하리라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시험인만큼 혹시나 하는 걱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40년 전에 운전면허증을 딴 이래 두 번째 갖게되는 자격증이다.
이번 일본어능력시험 응시자 중 내가 제일 고령자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나이 70이 되어 시험에 응시하는 사람은 없을테니까. 내가 이 시험에 응시한 것은 특별히 필요가 있어서가 아니다. 일본 대학에 유학중인 아들이 작년 여름에 JLPT N2(2급)에 간당간당한 점수로 붙었다길래 아들에게 좀더 분발하라는 의미에서 시범을 보이기 위해 그냥 한번 쳐본 시험이었다. 그래서 자격증은 받았지만, 쓸 일은 없을 것 같다.
국경을 통과한 버스는 신나게 후에를 향해 달린다. 그렇지만 차 가득히 실은 화물을 중간중간 내려주느라 시간은 한정없이 걸린다. 3시간이면 될 거리를 5시간이 걸렸다. 무슨 조화인지 후에에 도착하니 비가 내린다. 이번이 세번째 후에 방문이다. 그런데 세 번 모두 비다. 나가사키도 아니면서 어째 올 때마다 비가오나 ㅠㅠ. 나가사키는 네 번 가봤지만 한 번도 비가 오지 않았다.
숙소를 예약하지 않았으나 비 때문에 숙소를 구한다고 돌아다닐 수가 없다. 오토바이 택시를 타고 가다 적당한 호텔이 보이길래 내려서 바로 투숙하였다. 그런데 숙소 이름도 호텔인데다 외관도 그럴듯해 보이는 건물인데 방 내부는 좀 실망이다. 그래도 비를 맞으며 숙소를 찾아다니는 것보단 낫다.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 KIKOCHI 란 일본식 상호의 고깃집이 보인다. 들어가 보니 한국식 고기집이다. 그래, 오랜만에 허리띠 풀어놓고 고기 한 번 거하게 먹어보자. 삼겹살 일인분을 시켰다. 쇠고기와 값이 비슷했지만, 이곳 소는 방목하여 풀만 먹은 거라 맛이 없다. 삼겹살 1인분에 10만동(5,500원), 김치에, 야채에, 수북한 상추까지 나오며 숮불이 들어온다. 미안할 지경이다.
약간 부족한 느낌도 있어 삼겹살 버섯말이 일인분을 또 시켰다. 그러나 결국 1/3도 못 먹고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남은 것을 포장해 달라고 해서 서빙한 직원에게 주었다. 맥주까지 포함해 12,000원 정도 나왔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비싼 식사였다.
일기예보를 보니 앞으로 일주일간 하루종일 비다. 내일은 어쩌나. 호텔에 들어오니 침대가 눅눅하다. 비오는 날 눅눅한 침대에서 자는 것만큼 괴로운 일도 없다. 그러나 내겐 비장의 무기가 있다. 바로 전기 매트. 침대에 깔고 온도를 높이면 눅눅한 느낌이 상당히 제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