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오래되었지만, 당시 겪었던 여러 타입의 교사들에 대한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존경하는 선생님도 많지만, 두 번 다시 생각하기도 싫은 형편없는 교사도 적지 않았다. 그 가운데 최악의 교사라면 단연 중학교 시절 교장 선생이었던 이x경이라는 사람이다.
이 사람은 아마 일본 군국주의에 강한 향수를 가졌던 것 같다. 매일 아침 수업시작 전에 운동장에서 조회를 했다. 그럴 때마다 교장은 단상에 올라와 오와 열이 맞지 않는다고 아이들을 향해 호통을 쳤다. 1,500명에 가까운 전교생이 정말 바둑판처럼 오와 열을 맞추었지만, 교장이라는 그 인간은 그래도 만족하지 못했다. 나중에는 교사들에게 양쪽에서 긴 줄을 당기게 하여, 아이들이 그 줄에 맞춰 정말 단 1센티의 오차도 없이 열과 오를 맞추게 했다.
6~7월 더운 날에도 이러한 아침 조회는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되었다. 거의 30분 이상에 걸쳐 정말 바둑판처럼 줄을 맞추게 하고는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교장의 훈시가 주절주절 계속되었다. 아이들이 이렇게 땡볕에서 한 시간 가까이 꼼짝없이 서있다 보니 빈혈로 쓰러지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특히 몸이 약했던 나는 30분 정도만 지나면 하늘이 노랗게 변하고 속이 울렁거려 견딜 수가 없었다. 몇 번 쓰러지기도 했다. 그래도 넘어지면 교실에 들어갈 수 있어서 오히려 그게 좋았다.
이렇게 긴 조회가 끝나면 열병식이 시작되었다. 열병식은 그래도 몸을 움직일 수 있어 그나마 좋았다. 이 열병식도 한 번에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걸음폭은 물론 흔드는 팔모습까지 정확히 맞추어야 했으므로 제대로 될 때까지 몇 번이고 반복되었다. 그러다 보니 매일매일 조회와 열병식을 끝내고 교실로 들어오면 오전 10시가 넘곤 했다. 오전 8시 좀 넘어서부터 조회가 시작되었으니 거의 1시간 반 동안이나 겪는 지옥과 같은 고통이었다.
이렇게 매일을 보냈으니, 그때 중학생이었던 우리가 보여준 열병식의 수준은 요즘 보여주는 국군의 날 열병식은 물론 중국과 북한의 열병식에도 뒤지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교장이라는 인간은 단상 위에서 기계와 같이 행진하는 아이들을 내려다보면서 흐뭇한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지금도 분을 참을 수 없다.
트럼프가 자신의 생일이자 미군창설 250주년 기념일에 백악관 앞에서 대규모 열병식을 가졌다. 자유분방한 미군으로서는 매우 드문 일이라고 한다. 그러나 트럼프는 시진핑과 김정은 앞에서 행해졌던 그런 칼 같은 열병식을 기대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날의 열병식은 올림픽 선수단 입장이나 독립기념일 시민 퍼레이드 수준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트럼프의 표정도 썩 만족한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https://youtu.be/nVRyQosP93Y?si=jKWokeSdxG01SISR
열병식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항상 정신무장을 강조한다. 칼 같은 질서 속에 군인 정신이 함양되고 사기가 오른다는 것이나. 그래서 그들은 (획일적인 질서=정신무장=전력극대화)라는 망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태평양 전쟁 때 미군은 "야마토 타마시이"(大和魂)를 외치며 달려드는 일본군을 상대하기가 제일 쉬웠다고 한다. 제 발로 죽으려고 총구로 뛰어들어 왔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본영은 정신무장을 강조하며 젊은 병사들을 죽음으로 밀어 넣었다.
지난 백악관 열병식에서 그렇게 엉성한 열병식을 보여주었던 미군은 지구 최강의 군대이다. 열도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설렁설렁 행진하는 그들이 세계 어느 나라의 군대도 따라갈 수 없는 최상의 전투력을 갖추고 있다. 절도 있는 열병을 통해 정신무장을 고취하고, 이것이 전투력 향상에 연결된다는 주장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 잘 보여주는 좋은 증거라 할 것이다.
요즘 유튜브에서 미국의 열병식과 북한, 중국의 그것을 대비시켜 보여주는 동영상을 많이 볼 수 있다. 그 의도는 대부분 자유분방한 미국과는 대조적인 중국과 북한의 획일적인 열병식을 조롱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중국과 북한을 조롱하면서도, 왜 우리의 국군의 날 열병식에 대해서는 눈 감는지 모르겠다. 작년에 보여주었던 우리의 국군의 날 열병식 행사가 중국과 북한의 그것과 무엇이 다른가?
이번 트럼프의 열병식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우리도 이젠 그만 전체주의적인 획일적인 칼 열병식을 그만 두자. 젊은이들을 쓸데없는 일로 생고생시키지 말았으면 좋겠다. 열병식이 꼭 필요한 때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까짓 오와 열 좀 안 맞으면 어떤가? 그런 쓸데없는 훈련 시간에 병사들에게 자기 계발을 할 기회를 주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