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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Oct 30. 2021

평창 가리왕산 자연휴양림 여행(1)

(2021-10-13 a) 영월 - 단종의 발자취를 따라

10월 중순이면 강원도에는 단풍이 들기 시작한다. 단풍을 예상하고 강원도 평창에 있는 가리왕산 자연휴양림을 예약해 두었으나, 우리 집 근처에는 단풍의 낌새도 보이지 않는다. 강원도는 여기보다 낫으려나 하는 마음에서 출발하였다. 이곳 세종시에서 강원도 영월과 정선 방면으로 가는 길은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중부고속도로와 평택-제천 고속도로를 이용해서 가는 길이며, 다른 하나는 국도인 충청대로를 통해서 가는 길이다. 그동안 여러 차례 강원도로 가면서 충청대로을 지나치면서 들릴 수 있는 명승지는 대략 둘러보았으므로, 이번에는 영월 쪽의 명승지를 중점적으로 보기 위해 빠른 길인 고속도로를 이용하기로 하였다. 


10월 중순에 들어 해가 무척 짧아졌다. 오후 5시 정도만 되면 벌써 어두워지려 한다. 서둘지 않으면 계획한 곳을 제대로 둘러볼 수 없다. 오늘은 평소보다 아침에 좀 서둘러 오전 9시가 되기 전에 집을 출발하였다. 역시 고속도로는 편하다. 국도로 달리면 수시로 변하는 속도제한 때문에 여간 신경 쓰이지 않는데, 고속도로는 그런 게 없어서 좋다. 


1. 단종의 유배지 청령포(淸泠浦)


남제천 IC를 빠져나와 내비게이터가 인도하는 대로 몇십 분 정도를 달리니 영월 청령포가 나온다. 청령포는 단종이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넘겨준 후 성삼문, 박팽년 등 사육신(死六臣)에 대한 단종 복위 운동이 발각되자, 세조는 단종에게 그 죄를 물어 단종을 유배시킨 곳이다. 


청령포는 남한강의 지류인 서강(西江)이 휘돌아 흘러 삼면이 강이며, 그 뒤 쪽으로는 절벽으로 되어 있어 왕래가 매우 어려운 마치 섬과 같은 곳이다. 단종이 이곳에 온 시기는 늦은 봄이었는데, 그해 여름 홍수로 서강이 범람하여 청령포가 물에 잠겨 단종은 영월부의 객사로 거처를 옮겼으므로, 여기서는 두 달 정도 산 셈이다. 이곳의 지세가 워낙 험하고 강으로 둘러싸여 단종은 이곳을 “육지에 있는 외딴섬”(陸地孤島)이라 한탄했다고 한다. 


청령포 주차장에서 내려 조금 걸어가면 서강(西江) 강변에 청령포로 건너가는 배를 타는 조그만 나루터가 있다. 강폭은 100미터 남짓 되어 보이는데, 배를 타면 금방 건너편인 청령포에 닿는다. 배를 내려 풀밭 사이로 난 자갈길을 조금 걸어 들어가다 보면 넓은 솔밭이 나온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있다. 여기에 있는 소나무들은 모두 이름표를 달고 있다. 정부가 이들 소나무를 직접 관리하기 위해 관리번호와 관련 사항들을 적어 놓은 표시이다. 

솔밭 속에는 초가집 한 채와 기와집 한 채가 서 있다. 이들 집들이 실제로 단종이 유배를 와 살았던 곳인지 궁금하였으나 그에 대한 설명은 특별히 나와있지 않다. 기와집의 방 안에는 단종과 신하인 듯한 사람의 상이 만들여져 있다. 단종이 이곳으로 유배를 왔던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약 550년 전이므로 그때의 집이 지금까지 남아있을 리는 없고 아마 당시에 있었던 집터에 최근 다시 집을 지은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본다. 단종이 폐위되어 이곳에 유배를 온 때는 17살의 나이였으니까 지금으로 치면 고등학교 1, 2학년 정도의 나이다. 궁중생활 외에는 아무런 세상 경험이 없었던 그가 이곳 외딴곳으로 보내져 얼마나 무서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기와집 근처에는 ‘관음송’(觀音松)이란 이름의 큰 소나무가 우뚝 서있다. 나이는 600년이 넘었을 것으로 추정되어 단종이 이곳에 유배되어 왔을 때부터 이미 이 자리를 지켰던 소나무이다. 보통 소나무와는 달리 아래 큰 줄기 부분부터 줄기가 두 갈래로 갈라져 뻗어있는데, 위로 올라가면 큰 가지들이 서로 엉켜 붙어 있어 가지가 마치 용트림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나무가 키도 크거니와 이렇게 모습도 독특하여 뭔가 범상치 않은 느낌을 주는 소나무이다. 


솔밭 뒤 쪽에는 작은 언덕이 있고, 이를 오르면 마치 전망대 같은 곳이 있다. 여기서는 이곳 청령포를 둘러싸고 있는 서강의 전경과 저 멀리 영월 시가지가 보인다. 단종이 유배를 와서 이곳에 올라 떠나온 서울을 그리워하였다고 하여 이곳을 ‘노산대’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 노산대로 오르는 계단길 옆에는 높이가 50센티 정도 되어 보이는 작은 돌탑이 있다. 단종이 한양에 남겨진 아내 정순왕후를 생각하며 쌓은 돌탑이라고 하는데, 아마 후세에 지어낸 이야기인 것 같다. 

우리가 학교에 다닐 때 국사 시간에 조선왕조의 임금을 외울 때, 태정태세문단세예성연중인명선....이라는 식으로 외웠다. 그러면 조선 중기쯤에 만약 학생들이 역대의 임금을 외웠으면 어떻게 했을까? “태정태세문단세...”? 아니다. 그때는 단종이란 이름이 없었다. 세종이나 단종 등과 같은 왕의 이름을 시호(諡號)라고 하는데, 이는 죽은 뒤에 붙여지는 이름이다. 세조는 단종을 노산군으로 강등시키고, 이후 다시 서인(庶人)으로 강등시켰으니 시호가 있을 리가 없었다. ‘단종’이란 시호는 나중에 숙종 때 단종이 다시 왕으로 복권 뒤에 붙여진 시호이다. 그래서 조선 중기 때 정도라면 지금도 우리가 ‘연산군’, ‘광해군’으로 부르듯이 단종을 ‘노산군’으로 불렀거나 아니면 그의 이름인 ‘이홍휘’라 불렀을지 모른다. 


단종이 왕위에 올라 영월에 와서 죽기까지는 5년의 세월밖에 흐르지 않았다. 그동안 내내 무서운 숙부에 억눌려 겁먹으며 지내다가 마침내 죽음에 이른 어린 왕이 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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