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 모텔에서 자면 아침 식사를 해결하기가 귀찮다. 휴양림이라면 직접 지은 밥으로 간단히 아침을 해결할 수 있는데, 여기서는 식당을 찾아야 한다. 근처에 있는 콩나물 국밥 집에서 대충 아침을 때웠다. 오늘은 여수 엑스포와 돌산도 및 태화도를 둘러본 후 집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16. 여수 엑스포(EXPO)
여수 엑스포는 2012년에 개최되었다. 대전 엑스포가 1993년에 개최되었으니, 대전 엑스포 이후 거의 20년 만에 우리나라에서 개최된 엑스포이다. 나는 엑스포와는 특별한 인연이 있다.
대전 엑스포가 개최되면서 엑스포 조직위원회는 KDI에 <대전 엑스포와 한국의 미래>라는 아주 큰 연구과제를 의뢰하였다. 대학 교수, 전문 연구자 들 약 30명이 참여한 이 연구에서 나는 연구 총괄을 담당하였다. 그래서 엑스포와 관련한 연구를 수행하는 한편, 자료 수집을 위하여 캐나다의 밴쿠버, 스페인의 세비야, 일본 오사카 등 엑스포를 개최하였던 도시를 방문하여 엑스포와 관련한 여러 시설들을 참관할 수 있었다. 여행 스케줄이 일본-미국-캐나다-스페인으로 이루어졌으니 마치 세계일주 여행 같았다.
엑스포는 세계적인 이벤트이다. 세계적 이벤트로 대표적인 것을 꼽으라면 아마 올림픽, 월드컵, 엑스포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때의 엑스포 연구가 인연이 되어 월드컵, 대구 유니버시아드, 평창 동계올림픽 등과 관련한 굵직한 국제행사에 관한 연구의 연구책임을 맡았으니 전공인 경쟁정책 외에 이벤트 연구는 나의 부전공쯤 되는 셈이다.
엑스포, 그러니까 만국박람회는 국제박람회위원회(BIE)가 승인을 한다. 엑스포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등록박람회이며 다른 하나는 인정박람회이다. 과거에는 종합박람회와 전문 박람회로 구분하였으나, 이후 종합박람회는 등록박람회로 전문 박람회는 인정박람회로 바꾼 것 같다. 등록 박람회는 규모가 아주 크다. 주제도 제한이 없으며, 3개 이상의 주제를 내 걸 수 있고, 박람회 기간도 최장 6개월까지 가능하다. 이에 비해 인정박람회는 주제를 한정된 분야에 3개 이내로 해야 하며, 박람회 기간도 3개월까지만 가능하다. 알기 쉽게 말하면 등록박람회는 메이저 박람회이며, 인정박람회는 마이너 박람회라 이해하면 될 것이다.
등록박람회는 이전에는 10년마다 한번 개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으나, 최근에는 5년으로 그 기간이 단축된 것 같다. 인정박람회는 개최 주기에 제한이 없다. 대전엑스포나 여수엑스포 모두 등록박람회를 목표로 추진하였으나 실패하고 결국은 인정박람회로 하였다. 그래서 대전엑스포에서는 비록 인정박람회이지만 등록박람회와 같은 규모를 지향한다고 하였다. 여하튼 대전엑스포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대전 엑스포의 가장 큰 성과가 무엇인가 묻는다면, 나는 “질서 의식”이라고 생각한다. 대전 엑스포를 기점으로 우리 국민의 질서 의식에 획기적인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공공장소에서의 줄 서기는 아마 이때 정착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행사를 도우는 여성들을 “도우미”라고 하는 것도 이때 생긴 말이다.
쓸데없는 말이 너무 길었다. 엑스포 지하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엑스포장으로 들어섰다. 엑스포 시설을 모두 보전하고 있는지, 아니면 많은 건물들을 철거하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대전 엑스포와 비교한다면 전시관들이 엄청나게 크고 화려하다. 대전 엑스포 이후 20년 뒤에 건설한 시설들이다 보니 그동안 우리나라의 경제력과 기술 수준이 그만큼 높아졌으니 당연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크고 웅장한 건물들과는 달리 현재 운영되고 있는 콘텐츠는 거의 없는 것 같다. 코로나 때문에 그런지 아니면 당초의 계획이 잘못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영업을 하는 일부 음식점과 아파트 분양 광고를 하는 시설 일부를 제외한다면 대부분은 텅 비어 있고 전시관들은 아예 문을 걸어 잠그고 있다.
에스컬레이트도 운행을 중지한 곳이 많으며, 관리를 제대로 못한 듯 여기저기 낡은 흔적이 보인다. 넓은 터에 웅장하게 들어선 건물들 가운데서 현재 활용되고 있는 곳은 20-30% 정도에 불과한 것 같다. 이전에 전시관으로 사용되었던 건물을 오르락내리락해보지만 대부분 문이 걸려 잠겼고 별로 볼 것이 없다. 이러다 보니 전체적으로 휑한 느낌이 든다.
다니다 보니 ‘아이 뮤지엄’이라는 곳이 보인다.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이거라도 보고 가자. 그런데 입장권이 1인당 만 오천 원이라 한다. 나는 경로 할인, 집사람은 백신 접종 할인을 받아 만 오천 원으로 두 사람이 들어갔다. 이 뮤지엄은 그다지 넓지 않은 3개의 전시실로 이루어져 있는데, 모두 빛을 쏘아 여러 형상들을 보여주는 것이다. 뭐 약간 신기한 맛도 있지만, 1인당 1, 2천 원이면 딱 맞을 수준이다.
이렇게 많은 돈을 들여 잘 지은 시설들이 속절없이 낡아가는 것을 보니 안타깝다. 대형 이벤트를 개최할 때는 행사를 잘 치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은 시설들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가 매우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국가나 지자체에 두고두고 큰 부담이 된다. 이벤트 관련 연구를 할 때마다 느낀 점은 시설의 사후 활용에 관한 계획이 너무나 부실하다는 점이다. 준비위원회에 참여하는 공무원들은 그 일이 자신의 임시적인 업무에 불과하고, 행사가 끝나면 자신은 그 자리를 뜬다고 생각하고 사후 운영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다. 계획 단계에서는 그저 예산을 많이 확보할 생각으로 현실성 없는 장밋빛의 허황된 사후 계획을 마련하기 일수다.
우리나라만큼 대형 국제 이벤트에 집착하는 나라도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큼직한 것만 보더라도 88 하계올림픽, 대전 엑스포, 월드컵, 여수엑스포, 평창 동계올림픽 등이다. 짧은 기간 동안 이렇게 많은 대형 국제 이벤트를 개최한 국가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이 뿐만 아니다. 그 사이사이에 유니버시아드, 아시안 게임 등 중형 규모의 이벤트도 적지 않았고, 이보다 더 적은 규모의 국제적 이벤트는 수없이 많다. 국제적 이벤트는 일종의 잔치이다. 나라가 발전할수록 국제적 이벤트를 개최하는 것은 국제사회에 대한 기여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사람이 맨날 잔치만 하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평창 동계올림픽의 경우도 세 번씩이나 개최 신청을 했어야 하는 일인지 의문이다.
이렇게 우리나라에서 대형 이벤트가 잦은 것은 이를 제어할 사회적 메커니즘이 거의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자체는 지역발전이라는 핑계로 일단 저지르고 보자는 식이다. 일단 저지르고 나면 정부가 국가의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도와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행사를 유치할 때는 자신들이 다 할 것 같이 나서지만, 막상 행사를 유치하고 나면 그야말로 BJR(배째라)이다. 정치가들은 선거철이 되면 표를 얻기 위해서라도 지자체가 추진하는 국제 이벤트의 유치를 적극 지원하며, 또 유치 후에는 적극 지원할 것을 약속한다. 막판까지 천덕꾸러기가 되었던 <평창 동계올림픽>의 경우도 중간에 적절한 선에서 제어하는 메커니즘은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그나마 북한이 평창 동계올림픽을 살렸다.
외국의 경우는 국제적 이벤트를 유치한 지자체가 많은 책임을 지고 있다. 그래서 올림픽이나 월드컵 등 대형 이벤트가 끝난 후 몇십 년 동안 빚에 허덕이는 지자체도 적지 않다. 우리도 앞으로는 대형 이벤트 유치에 있어서 행사의 책임소재에 따른 분명한 원칙을 정립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